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정말 가관이었다. 가난뱅이, 술주정뱅이, 앉은뱅이? 거름뱅이, 골초 등. 사회적으로 구제불능인 자들이 많았다. 초대 신자들은 술과 담배를 다 하였다. 서양인들의 주도는 잔도 작은 잔에 1/4만 따르고 몇 시간씩 그것을 마시면서 향기를 느끼면서 대화하는 형태였다. 에스프레소같은 것은 입안이 향기가 남기 때문에 마신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술도 그렇게 마신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주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시면 세수대야에다 막걸리를 부어 절제 없이 마시는 형태였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말씀을 잘 듣고 집에 가서는 예전의 습관처럼 술을 기분 좋게 취하도록 마시고는 주일 아침이 되면 일어나질 못해 예배를 빠지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이렇게 해선 신앙의 성장이 없겠다 싶어 규칙을 정했다고 한다.
1907년 장로교공의회에서 7가지 신앙생활지침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1예배 출석 잘 할 것,
2주일성수할 것,
3부모에게 효도할 것,
4일부일처할 것,
5인가귀도할 것,-나와 내 집안 식구 모두를 하나님의 신앙으로 이끄는 것
6근면성실할 것,
7금연 금주할 것
이었다.
이렇게 했지만 이런 문제가 잘 근절되지 않자,
1914년에 흡연을 하는 사람은 절대 장로로 세우지 않는다고 원칙을 세웠다. 이것이 지금까지 교회의 전통이 되어 왔던 것이다. 흡연과 음주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이면서도 문화이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건덕상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전통이 예전에 그러했기 때문에, 지금은 해도 된다는 율법해체주의자의 발언은 잘못된 것이다.
음식의 문제, 먹고 마시는 문제로 인해 당시에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끼리의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주로 믿는 신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신앙생활하기 전에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나 세계관, 가치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부딪힌 것이었다.
이슈는 고기를 먹는 것, 포도주를 마시는 것, 유대교의 날들을 지키는 것(14:2, 5-6, 21)이다.
1-4절에서는 먹는 음식문제로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당시의 고기음식(목이 맨 고기, 피채 먹는 것이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은 유대인들)은 거의 다 우상제물(우상제물이라서 오히려 이교도들은 오히려 돈을 더 주고 구매하기도 했다)이나 어떤 제사용품으로 나온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것을 먹는 것을 거부하고1) 채소만을 먹었다. 설사 제사용품에 쓰인 고기가 아니더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은 신념에 따라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고기를 자유롭게 먹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이방인과 유대인들 사이에 비판과 비난과 비방이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들도 그럴 수 있다.
...주 1) 율법에 근거한 정결한 고기 ‘kosher' meat를 이방땅에서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가 어릴 때는 주일날 상거래를 하는 것도 금지되었고, 운동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근데 대학1년때 선교단체수련회를 갔는데 주일날 족구도 하고, 목욕탕도 간 것이다. 진짜 놀랬고 충격이었다! 전도사시절에 장로님과 성도들끼리 주일학교 애 심방을 가는데 장로님이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주일날 예배마치고 회식을 하는 것이었다. 문화충격이었다. 요즈음은 덜 하지만, 그 당시에는 주일에 그런 행위는 정말 내겐 충격이었다. 로마교회 안에서는 더 그러한 풍경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이런 그들을 향해 세우시는 권능이 주인에게 있다고 말한다. 하인이 무슨 힘과 능이 있는가? 주인에게 모든 권세가 있는 것이다.
5절부터는 ‘날’의 문제가 나온다. 어떤 이는 이 날을, 어떤 이는 저 날을 중히 여기는 습관이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외에도 유대인의 절기들을 소중히 여겨 지켰지만, 이방인들은 모든 날을 특별한 날로 지켰다. 이런 날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도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여러분, 일주일 중에 무슨 날이 제일 중요한가? 주일이 제일 중요한가? 월-토요일 가운데 어느 날이 제일 중요한가? 그렇다. 모든 날이 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주일날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일은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 기독교인이 주일성수가 안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유럽처럼, 미국처럼 그렇게 주일날 예배당이 휑하게 비는 것이다. 사람들이 CCM ‘맛잃은 소금’의 가사처럼 '오 주님 이번주는 해변으로 임하소서'라고 하면서 비치beach에다 이동식 예배당을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리는 식이 될 것이다. 날씨가 너무나 좋으니 사람들이 주일날 예배를 수시로 빠진다. 왜? 날이 너무나 좋은데 이렇게 주일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것이 쉽겠는가? 그러나, 기억하자!
사람이 편의주의에 빠지면 주일성수도 무너지는 것이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은 목숨 지키는 것처럼 지키는 것이 건덕상 좋고, 신앙유익에도 좋다. 주일이 무너지면 우리 인생이 무너지고 우리 삶이 무너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렇다고 우리의 날 중에서 주일날만 중요한가? 아니다. 우리가 일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일상인, 일주일-월~토요일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예배가 공적예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예배도 중요한 것이다. 그처럼 요일도 주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일도 중요한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모든 날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
1.2부 예배: 참석하자-신앙의 뼈대, 신앙의 척추와도 같은 예배이다.
담임목사님 설교를 가까이 해야 한다. 중고등부 사역자시절에, 저는 설교는 안하고 지휘만 했다. 왜? 담임목사님께서 1부예배시가 중고등부 학생들과 같이 예배드리기 때문에 함께 설교를 하셨던 것이다.
이런 음식문제, 날 문제로 인해 그리스도인끼리 서로 갈등과 불화가 있었던 것이다.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중요한 것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원칙과 자유의 관념이 아니라 그 자유가 누구를 위해서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간하배교수의 일화를 기억하는가?
원래 간하배교수가 시가피우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국선교사로 오면서 선교사역을 위해 시가를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다.
바로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주를 위하여 먹는’ 원칙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아디아포라2)의 문제이다.
주 2) 헬라어로 '아디아포로스'('대수롭지 않은, 중요하지 않은'이란 뜻)로서,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도 그렇다고 금지하시지도 않은 행동들을 가리킨다. 즉, 그것은
① 실행해도 그만, 행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서,
② 본질적으로 선악과 관련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③ 구원의 문제와도 직결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④ 성도 각 개인의 경건한 사색에 의한 판단과 양심의 자유에 맡겨야 할 내용들이다.
아디아포라의 대상은, 주로 의식이나 행위에 관련된 문제이다. 특히 율법을 문자적으로 시행할 뿐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행동 규범을 정하고 사람을 종교적으로 옭아매었던 유대 사회 앞에서 예수께서 보여 주신 가르침과 행동에서 많은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생명을 위하고 내적인 성결을 이룬다면 외적인 의식을 준수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셨다(막3:4). 사도 바울 역시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별로 상관없는 것들에서 적극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친다(롬14:17; 고전6:12; 8:8; 갈5:6; 골2:20).
[네이버 지식백과] 아디아포라 [adiaphora] (교회용어사전 : 교리 및 신앙, 2013.9.16, 생명의말씀사)
로마제국이 흥왕케되었던 이유는 그들의 관용정책에 있었다. 그들은 정복한 나라, 식민지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고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많이 용인해주었다. 억압적으로 강제하지 않았다. 식민지에 대해서도 폐쇄적이지 않고 관용적, 개방적이었다. 그래서 식민지에서도 왕을 선출할 정도로 굉장한 포용정책, 그것이 로마제국의 흥왕 요소였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밝혔다.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것이다. 세계만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로 주로 시인하고 그분 앞에 무릎꿇는 천국에 가면 온갖 사람들이 올 것이다. 야만인도, 식인종들도, 흑인들도, 미국인들도, 인도인들도, 중동인들도...그들이 풍습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이시다. 그 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임을 기억하자.
주님은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받으셨고, 다른 사람들 또한 그들을 받으셨던 예수님이시기에 우리가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가 아님을 기억하자.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은 다를 뿐이지, 차이일 뿐이지 틀림, 오답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서로 비판하지 말라!
1)하나님은 강한 자와 연약한 자 모두를 차별없이 받으셨다.(14:3c)
2)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종으로서, 서로의 입장이 다를지라도, 모두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14:6-9).
3)우리 모두는 각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가 행한 일을 직접 아뢸 것이다(14:10c-12).
찬양: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주 보혈 날 정결케하고
셀나눔Sheet -로마서 14:1-13
1우리가 교회에서 생활할 때 주로 비난하기 좋은 이슈는 어떤 것이 있는가? 나는 언제 자주 그런 이야기를 쏟아내는가?(예>주일날 활동, 음식문제, 아디아포라, 음주, 흡연?)
2내가 자주 비난하고 비판했던 형제들이나 자매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혹여나 그 친구에게 가서 솔직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진정한 화해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솔직해지자.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살게 되어진 것처럼, 내가 비난하는 그들도 동일한 은혜의 주인공임을 기억하고 다가가서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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