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느헤미야 1장을 가지고 <느헤미야, 기도하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설교한 내용입니다. 느헤미야의 중심에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살펴보면서 영적인 유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 ☉느헤미야의 배경
- ☉느헤미야의 소명 V.1-3
- ☉느헤미야의 기도 V.4-11
- ☉느헤미야의 배경
느헤미야는 에스라의 속편이다.
사실상, 최초의 히브리 사본에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한 권의 책으로 다루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빗대어 보자면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 생활을 36년간 하였다. 그 가운데서 많은 친일인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친일파들은 자신의 안녕과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일했다. 잃어버린 조국의 주권과 민중의 아픔은 도외시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대의 역사에 등장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우리의 이러한 우울한 친일파 역사의 비극과는 다른 신선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더 나아가 에스더까지, 이들은 비록 자신들의 이방인의 나라의 중요한 관직에 올라있었지만 자신의 삶과 미래에만 집착한 친일파들과는 달리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였던 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아름다운 대목이다.
느헤미야는 에스라, 느헤미야서에는 3명의 동명이인의 등장한다.
- ① 본서의 주인공, 느헤미야,
- ② 538년 첫 번째 귀환 공동체의 일원으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국했던 12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며(스 2:2; 느 7:7),
- ③ 벳술 반쪽 구역의 책임자로서 성곽 재건 사업의 일부를 담당했던 느헤미야이다(느 3:16).
(16)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에스라가 스룹바벨 아래에서 성전을 재건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면, 느헤미야(에스라와 동시대 인물)는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이야기를 한다. 그의 이야기는 B.C 445년 바사의 수산궁에서 시작된다.
(1)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 기슬르월: 양력 11-12월에 해당. 그렇다면 주전 446년 겨울이엇을 것이다.
--->수산궁은 ‘백합화 궁’이란 뜻. 바사의 3대 수도 중 한 곳. 바사 왕들의 겨울궁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다니엘이 환상을 보았고(단 8:2),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살았다.
(단 8:2)내가 이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도 수산성에 있었고 내가 이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니라
원래 다리오Darius 1세가 오늘날 페르시아만 북쪽 240km지역에 위치해 있던 수산에 행정수도를 삼고 왕궁을 건축한 이후 페르시아 왕들의 겨울 궁전으로 사용했던 곳이다(참고로, 스 6:2의 악메다 궁은 여름 궁전이었다). 수산궁은 아닥사스다 1세 때 화재로 유실되었지만 아닥사스다 2세에 의해 재건되었다.
(스 6:2)메대Media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느헤미야서의 배경은 ‘국가의 재건 사건’이다. 기원전 587년에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남왕조 유다를 탈취하여 그 백성들을 끌고 갔다. 그러나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한 후, 기원전 538년에 고레스Cyrus왕이 바벨론의 정책을 바꾸어 일부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했다. 이들 유대인들의 첫 번째 행위는 제단을 쌓고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이 일에 대해서는 에스라서의 첫 여섯 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의 관심사는 성의 방위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445년에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는 바로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중동 지역의 성들은 B.C 3000년부터 돌로 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반면에, 보초를 세운 성문은 성을 출입하려는 모든 자들을 살피는 파수꾼 역할을 하였다. 이 성벽 꼭대기에서 파수꾼들은 아주 먼 곳까지 망을 보며, 성에 가까이 오는 사람들이 방문객인지 침략자인지 모두 알아볼 수 있었다.
성의 어르신들은 성문에 모여 사업상의 업무를 처리하고 시정문제들을 재판하기도 했다. 성벽 상태의 문제는 자부심이나 수치심의 문제였다.
☉느헤미야의 소명(Motive) V.1-3
[느 1:2-느 1:3]
(2)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3)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하나니: 느헤미야의 남동생으로서 훗날 귀환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귀국해서 예루살렘 경비를 책임졌던 인물이다(7:2...내 아우 하나니).
느헤미야는 국가의 재건의 역경 속에서 고난받고 있던 유다 백성 전체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처참했다.
예루살렘 성벽은 바벨론 침략 때 파괴되었다. 성벽과 성문들은 폐허로 남아있었고, 새로 돌아온 포로들에게는 비난거리였다. 느헤미야는 비록 술관원으로 아닥사스다왕을 섬기느라 그곳으로부터-예루살렘과 수산궁- 960km이상이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의 상태로 인하여 애통하였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사랑하는 성과 백성을 결코 잊지 않았다.
느헤미야가 고국의 최근 상황에 대해서 전해들은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즉 사람들은 환난과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졌고 성문들은 불에 탔다는 소식이었다.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환난’이라는 용어는 성서의 다른 곳에서 ‘곤란’, ‘고난’으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말 다른 역본에는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표준개), 혹은 ‘몹시 고생하며 수모를 받고 있습니다’(공역).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마지막으로 침탈당한 지 141년이 지난 뒤였다. 자신들의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 그리고 언약의 파기를 뉘우치지 않고 또 뉘우치려고도 않던 유대인들, 북방의 열 개 지파에게 임했던 끔찍한 운명을 보고서도 깨닫지 못하던 유대인들 그리고 예레미야의 예언적 메시지를 비웃던 유대인들이, 마침내 엄청난 대가를 치렀던 것이다. 성은 파괴되었고, 유대 왕은 그 가족이 처단된 후 눈을 빼어 감옥에 던져졌으며, 많은 유대인이 사슬에 묶인 채 북방으로 끌려가 낯선 나라에서 포로와 이방인이 되었다. 느헤미야는 포로된 유대인들의 후손이었다.
모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느헤미야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예루살렘이었다. 비록 포로로 끌려와서 지내긴 했지만 자신의 안녕과 삶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지냈던 것이다. 에스라의 주도하에 성전이 B.C 516(515)년에 완공되었다(스 6:15-18). 하지만 성벽에 대한 소식,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은 느헤미야의 마음을 찢어놓고 말았다. 그러면서 느헤미야는 4-11절에서 기도가 터져나오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울한 시기를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 형통한 날이 있기도 하고 곤고한 날이 있기도 한다고 전도서기자는 말했다.
(14)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지금 곤고한 날을 지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놓여져 있는가? 느헤미야는 자신의 삶에 깊은 애착을 보이기보다 먼저 잃어버린 조국, 황폐한 된 예루살렘, 무너진 성벽을 보면서 가슴이 터질 듯 보인다. 우리에게도 느헤미야와 같은 심장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모든 것이 어수선한 상황과 환경이지만 그래도 느헤미야처럼 아린 가슴을 안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기를 소망한다.
☉느헤미야의 기도 V.4-11
(4)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하나님 중심의 믿음...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v.5
(5)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나님에 대한 거대한 관, 시각으로 기도는 시작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조금은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시대상황을 짐작해보면 이해가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주권 없는 나라로,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 다니며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런 우울한 나라의 삶의 알기에 어쩌면 느헤미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에게 발견한 두 가지 속성이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CAN 있다. "언약을 지키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이라도 해주실WILL 것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의 자비하심을 의심치 않았다. 그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하나님을 해주시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능력을 믿는데 있어 별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들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나를 위해 일해 주실 수 있을지 간혹 의심하곤 한다. 그러면서 내가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라는 것이다.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약점과 우리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며 좌절한다.
느헤미야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나라는 주권을 잃어버렸고, 한 도시의 중심,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성벽은 훼파되었다. 자기 나라 대통령도 아니고, 왕도 아닌 아닥사스다 왕이 자기의 말을 들어줄지 의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된 것도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갈등과 투기와 대립이 있었다. 포로로 있다가 고국땅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세력도 많았고, 의견차도 좁혀지지 않았다.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기도했다. 인간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두었다. 그의 기도는 자기가 다가가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사실 그의 신앙이 불붙고 마음이 담대해진 것은 그가 술관원이 되었다는 소식이나 통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마음속에 떠올림으로써 이루어졌다.
우리의 기도도 또한 느헤미야의 기도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기도여야 할 것이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의 힘은 강하다
나를 보호하시는
주님 곁에 가까이 가리라
세상 풍파 험하나
주님 날 위로하네
나의 능력되시는
주님곁에 가까이 가리라
주님 곁에 가까이
더 가까이 가리라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곁에 가까이 가리라"
Ⓑ동일시 원리...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V.6
(6)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고백은 지금 남왕조 유다의 수백 년 동안에 걸친 불순종과 관계가 있다. 그는 자기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차갑고 이기적이며 타락된 오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느헤미야에게는 오늘날 모래알처럼 개인중심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경향과는 반대되는 ‘공동체적인 책임감’이 있었다. 우리는 교회에 속한 개개인의 회원일 뿐이다. 우리는 교회의 잘못을 우리의 잘못이라고 고백하는가? 느헤미야는 ‘저희들을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수치스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범죄자의 죄를 대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느헤미야의 단순히 ‘조상 탓’을 하지 않고 조상들의, 선조들의 죄를 껴안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의 죄악, 유다 나라의 죄악과 자신의 죄악을 동일시했다. 사회의 죄악, 민족과 문화와 국가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동일시하며 기도하고 있다. 우리 예수님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우리와 동일시하시며 몸소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의 삶 자체가 바로 동일시하는 삶이었다.
우리들의 기도는 어떠한가? 느헤미야와 같은 동일시의 기도, 중보기도를 드리는가? 우리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민족과 나라의 모든 죄악을 내것으로 껴안고 동일시하면서 기도하는 느헤미야, 21세기의 느헤미야가 되기를 바란다.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v.11
(11)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굉장히 거창하게 시작된 느헤미야의 기도였다. 민족을 운운하고 나라를 운운하고 성벽을 운운하면서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 그 기도의 마무리는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즉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자신의 성공과 영달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이런 기도를 한 사람을 왜 성경에 기록했을까?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미약한 이런 기도의 주인공이 느헤미야였던가?
그런데 1:11의 ‘오늘날’이란 것은 그가 금식과 기도를 시작한 지 넉 달이 지난 뒤의 어느 한 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1)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2:1)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현대달력의 3~4월에 해당되는 바벨론의 달력으로 1월달을 말하며 유대 종교력으로 아빕월에 해당되며 유월절이 지켜지는 달이다 ...
느헤미야는 그가 “주야로”(1:6), “수일동안”(1:4)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열심히 기도한 결과가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이란 말인가? 그러나 느헤미야는 2장부터의 사건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자신의 영달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기도한 후에 술관원이 되었다면 그는 이방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엘리트로서 자신의 권력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관심을 접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 기도는 단순히 느헤미야의 성공적인 개인의 삶과 이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우리의 생각들이 변화되는 것을 때때로 느낀다. 그것은 내가 기도하기 전에 가졌던 생각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가운데 생각의 변화, 마음의 변화가 오는 것을 감지한다. 느헤미야도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성벽의 황무한 상태를 듣고는 애통해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사용하실 수도 있었지만 느헤미야의 ‘애통해하는 마음’을 사용하시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기도를 통해 그를 술관원으로 부르신다. 그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의 성벽재건을 위한 지도자로 부르신 것이다.
나폴레옹은 자기와 가까운 장군들과 함께 높은 고지에 올라가 전투 상황을 관망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의 분석적인 두뇌는 곧 그에게 승리의 열쇠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곤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곁에 있던 네이Ney 장군에게 몸을 돌려
“저기 강 윗편 약간 언덕진 곳에 있는 농장이 보이나? 가서 저것을 점령한 뒤 꼭 지키게. 이를 위해 어떤 손실이 생겨도 나는 상관하지 않겠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저 농장을 차지하고 끝까지 사수하게!”
느헤미야는 장군들이 나폴레옹 곁에서 대기하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도 그러해야 한다. 나폴레옹 곁에 서 있던 장군들이 나폴레옹의 명령을 받드는 것처럼, 느헤미야가 하나님 곁에서 대기하여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주축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2영도교회의 회복의 주인공으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느헤미야 1장을 가지고 설교한 <느헤미야 1장, 느헤미야-기도하다>란 주제로 포스팅입니다. 느헤미야가 기도로 수개월동안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준비했던 그의 소명과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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