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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느헤미야 1장, 기도하며 행동하는 사람-느헤미야

by Message.K 2022. 3. 5.

구약성경 느헤미야 1장을 가지고 <기도하며 행동하는 사람-느헤미야>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나라가 패망하였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가 주전 587년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아직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절망 그 자체였다.

 

 


[대하 36:15-대하 36:23]

(15)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16)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17)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18)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19)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20)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21)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22)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23)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이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하고 유대인들의 귀환이 허용되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휘 아래 1차 귀환이 있었고(주전 536-538년) 성전이 재건되었으며, 에스라는 2차 귀환(주전 458년)을 주도한 후에 백성들의 정결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1, 2차 포로 귀환 이야기는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는 세 번째 귀환을 주도하였는데(주전 445년) 그의 힘있는 리더십 아래서 성벽 재건이 시작된다.

 

 

 

  페르시아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느헤미야는 비록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한시도 마음의 고향이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그 곳을 잊지 못했다.1) 따라서 그의 형제로부터 예루살렘의 비보를 접했을 때 그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넉달 동안 슬퍼하며 기도했다.

 

 

 

   원래 다리오Darius 1세가 오늘날 페르시아만 북쪽 240km지역에 위치해 있던 수산에 행정수도를 삼고 왕궁을 건축한 이후 페르시아 왕들의 겨울 궁전으로 사용했던 곳이다(참고로, 스 6:2의 악메다 궁은 여름 궁전이었다). 수산궁은 아닥사스다 1세 때 화재로 유실되었지만 아닥사스다 2세에 의해 재건되었다.

 

 

 

  1:1에 수산 궁에 있었던 느헤미야는 당시에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그의 출신은 포로민에 불과했고 신분은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그는 페르시아 왕국의 관리로서 다소 편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험가로 변신하고 있다. 4개월 동안의 기도의 삶을 통하여 그는 1:11에서는 술관원의 엄청난 관리로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신분상승은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나라인 이스라엘의 부흥의 열쇠인 ‘성벽 재건’의 사업을 위해 느헤미야를 사용하고자 하신 처사이다. 4개월 동안 그가 어떻게 기도하였는지는 4-10절에 잘 나타나 있다.

 

(4)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우리는 느헤미야의 삶을 통해 우리가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음 한다. 느헤미야는 기도하기 전에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고국의 회복과 부흥과 성벽 재건을 위해 상황을 묻는 대목이 3절에 나온다.

 

(3)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사태가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느헤미야에겐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과 부흥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4절에서 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절박한 나머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포기하지는 않았다. 포기하기에는 자신이 믿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 너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금식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4개월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기에 이르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상황과 형편이 어쩌면 느헤미야의 절박한 환경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숨과 탄식만이 나오는 상황은 아닌가? 3절의 말씀이 우리의 현실은 아닌가?

 

“남은 자가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교회에 그래도 남아 있고자 하는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경험하고 있다. 담임목사님 부재, 지도자의 부재로 인한 공백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과 같은 우리의 믿음의 터였던 성전은 훼파되었고 성문이었던 교회의 건물은 평지가 되어 동네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위 사람들도 우리 교회를 향해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일하고 싶은 의욕이 일지 않는 시간들이다. 시간아, 어떻게 좀 빨리 지나서 이런 어두운 상황이 종료되고 빛의 시간들이 왔음 좋겠다. 그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 말과 혀와 전략과 술수로써 이 상황을 타계하는 것이 아니라 느헤미야처럼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일할 분위기 날 때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어린 아이들은 밥맛이 없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쓴다. 하지만 어른들은 밥맛이 없어도 몸을 위해 한 술 뜰 수 있는 연륜과 지혜가 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상황은 밥맛이 없을 때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다. 느헤미야는 포기하고 싶을 때, 밥맛이 없을 때 그는 한 술 떴다. 그는 기도의 한 술을 뜬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터널이 많다. 그 터널이 끝이 없다면 아무도 그 터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터널의 끝이 있고 그 끝에는 달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터널을 통과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터널은 끝이 있다. 우리 교회의 터널도 분명히 끝이 있을 것이다. 느헤미야에게는 고국의 황폐한 현실이 터널로 볼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도의 불화살을 준비한 것이고 금식의 불화살을 당긴 것이다.

 

 

 

  밥 맛을 없을 때 밥 한 술 더 뜰 줄 아는 성숙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란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교회의 느헤미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한다.

 


1) 예루살렘 성벽은 바벨론 침략 때 파괴되었다. 성벽과 성문들은 폐허로 남아있었고, 새로 돌아온 포로들에게는 비난거리였다. 느헤미야는 비록 술관원으로 아닥사스다왕을 섬기느라 그곳으로부터-예루살렘과 수산궁- 960km이상이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의 상태로 인하여 애통하였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사랑하는 성과 백성을 결코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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