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교 포스팅은 누가복음 23:46을 가지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주제로 한 설교입니다.
Prologue...퀴블로스 퀴블러의 ‘인생수업’중에서 Seek!
주님은 마지막으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기도하고 숨을 거두십니다. 마치 주님의 영혼이 주님의 손에 있다가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진다는 뜻 같습니다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혼이 언제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었던가요? 체포되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토록 고뇌하며 기도하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그 온전한 연합을 지키려 하신 것 아닌가요?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계신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주님께 있던 무엇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전 존재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불신자들은 종종 비아냥거립니다. “천국이 그렇게 좋으면 자결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죽는게 그렇게 좋으면 빨리 죽으면 되지, 왜 살아 있냐?” 그들은 모릅니다. 참되게 산 사람만 참되게 죽을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아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그렇게 할 때, 마침내 저희의 때가 왔을 때,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기도하며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고귀한 마지막을 저희에게 허락하소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기도드릴 때, 주님은 완전히 비워지셨고 가장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셨습니다. 주님은 형틀에 묶인 시체를 불과했습니다. 누가 무슨 폭력을 가해도 다 받고 참아야 하는, 무력하고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아무것도 해 볼 수 없는 철저한 무력 상태, 그것이 십자가가 상징하는 바입니다.
바로 그 순간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가 반대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신학자의 표현대로 주님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기 위해 몸으로 막다가 그 바퀴에 말려 들어가 죽으셨습니다. 그 바퀴는 주님의 살점과 피로 범벅이 되어 서서히 멈추었고 마침내 반대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두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달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셨을 때,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가장 약해지셨을 때 가장 위대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약함의 비밀을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은 저희를 강하게 하여 일을 시키기도 하시지만, 약하게 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기도 하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저희가 진실로 강해질 때는 저희의 힘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울 때임을 알게 하소서.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닫고, 약해질 때 오히려 더 기뻐하고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 17:10)
십자가의 주님은 죽음으로 생을 마무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 후에도 주님의 사역은 계속됩니다. 주님의 죽음은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역을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의 아침을 사모해 보십시오. 기대와 함께 감격의 순간을 말입니다.
*똑같은 본문과 주제를 가지고 설교한 내용이지만, 내용이나 결이 다른 설교문은 아래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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