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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22장 1-13절, 배신자를 품는 사랑

by Message.K 2022.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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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십자가 처형, 죽음, 부활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남, 승천에 관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의 시간적인 배경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기 12:1-2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무교병은 유월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은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무교절은 무교병을 먹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고난을 기억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니산월 15-21일(오늘 우리 달력으론 4월 첫 주간)에 치러집니다.

 

 

 

  이 역사적인 기념일에 죽음을 기다리는 두 부류의 사람,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한 무리는 가룟유다와 제사장들, 서기관들(종교지도자)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죽음의 사람은, 바로 한 사람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기를 간절히 기다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단순한 교통사고처럼, 사건사고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과 절차로 처리하기 위해서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권모술수를 다 동원하여서 예수님을 처단하기 위해 안달입니다. 그들은 1절에 '백성들을,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사람을 돈으로 매수했습니다. 그 매수당한 자가 바로 사탄이 들어간 가룟유다였습니다. 이른바 '예수님 죽이기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눈 앞에 보이는 기득권과 이익에 눈이 멀어서 예수님을 공격적으로 죽이고자 모의합니다. 그들도 둘째 아담인 예수님의 죽음을 아주 간절히 기다리고 있긴 있나 봅니다.

 

 

 

 또 한 무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룹이 아니고 개인입니다.

이 사람도 한 사람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고, 바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의 종교지도자들과 가룟 유다는 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살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미션에 의해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담담히 나아가고 계십니다. 이것은 어떤 강력한 하나님의 후원과 계획 가운데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명절인 유월절, 조상들은 출애굽의 해방과 자유를 기념하기 위해 환호했다면, 이제 신약시대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온 인류의 구속을 목적으로 화목제물이 되시는 미션을 향해 달려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담담히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8절입니다.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예수님은 유월절을 맞아든 예루살렘의 방문객들로 인해 숙소나 방이 없다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미 방을 예약하여 두신 것처럼, 10절에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텐데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면 큰 다락방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시에 물동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여자들이 하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남자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금요일 이전에 유월절 식사를 그 밤에 예루살렘에서 하기 위한 준비를 다 해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 십자가의 구원사역이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속된 말로 '잘 죽기 위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 목적이었습니다. 그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기는 합니다만은 부활은 십자가가,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에는 자신을 배신한 가룟유다를 비롯해서 자기를 십자가사건이후 떠나갈 제자들에 대한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겨냥한 죽음이었습니다. 하늘보좌에서도 충분한 영광을 누리셨지만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자리, 십자가의 자리를 나아가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죽음이전에 자신이 그토록 감당했던 제자훈련의 사역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지만 다들 목적은 다릅니다. 오늘 두 부류의 사람들처럼, 한 부류는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과 이익과 더 나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사람들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선, 자신의 부귀와 안녕을 위해서 예수님도, 예수님의 죽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는 마키아벨리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입니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이용하진 않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한 부류는 예수님처럼 자기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공동체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전자의 사람들처럼 이들도 예수님을 기다리지만, 목적은 다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배신자를 품은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쫓아 우리도 거룩한 헌신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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