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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14장 15-24절,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by Message.K 2022. 3. 17.

*누가복음 14:15-24의 본문을 가지고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심이 심한 세 형제가 돈을 벌려고 집을 떠났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 상당한 성공을 이룸, 어느날 세 형제가 모여 연로한 어머니에게 얼마 전에 주었던 선물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첫째, “난 엄마에게 큰 집을 지어드렸지.”
둘째, “난 엄마에게 벤츠를 사드리고 운전기사까지 고용했어.”
셋째, “난 형님들보다 훨씬 좋은 선물을 했어. 엄마가 성경 읽는 걸 좋아하는데 눈이 좋지 않잖아. 그래서 성경을 통째로 외우는 밤색 앵무새를 엄마한테 보내드렸지. 스무 명의 수도자가 12년이나 그 앵무새를 가르쳤어. 그들이 앵무새를 훈련시키는 걸 도우려고 10년 동안 매년 10만 달러는 그 수도원에 기부했고,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어. 이제 엄마가 몇 장 몇 절이라 말만 하면 앵무새가 그 구절을 읽어줄 테니까.”

 

 

그 후 세 형제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첫째에게

 

“밀턴, 네가 지어준 집이 너무 크구나. 방은 하나밖에 사용하지 않는데 큰 집을 청소하려니 힘들구나.”

 

라고 썼다.

 둘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마티 나는 너무 늙어 갈 데가 별로 없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 벤츠를 지금껏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게다가 운전기사가 너무 막돼먹었어!”

 

라고 썼다.

 

 셋째에게 보낸 편지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사랑하는 멜빈,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유일한 아들이구나, 새고기는 맛있었다!”

  

 

 

 선물을 준 사람의 의도, 아들의 의도는 전혀 생각지 못한 어머니의 불상사!

 직장에서는 상사가 직원에게 무언가를 일을 부탁하거나 시킬 때, 학교에서는 교수님이, 집에서는 부모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맡길 때 그 일의 의도와 의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새고기를 맛있게 먹어버린 할머니, 어머니 꼴이 난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로 선물을 준 사람, 일을 맡긴 사람의 의도 즉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치 못한 종교지도자(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의 불상사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 본문은 마태복음 22:1-14에 비슷한 내용이다.

 1절: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의인들의 부활 이후 메시야 왕국이 지상에 건설되면 오랫동안 큰 잔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바리새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과 마찬가지로 그와 모든 존경받을만한 유대인들은 그 메시야 왕국의 잔치에 참여할 것을 당연지사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놓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신 것이다.

 

 

 

   누가복음의 비유는 베레아에서 하신 것이다. 그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게 되면, 사람들에게 미리 한번 청하는 말을 전하고, 잔치가 임박하면 다시 초대를 분명히 하는 것이 그들의 풍습이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는 심지어 자기가 세 번 청함을 받지 않으면 안 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때로는 그네들의 습관이다. 여기서 한번 초대장을 내면 가든지 안 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대답해야 하는데, 그때 그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저희 집에서 잔치를 하겠으니 미리 생각을 해 두십시오’하고서는 사람을 미리 보내 통고를 해준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잔치를 참석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미리 생각하게 해 놓았다. 그 후에 다시 ‘이제 잔치를 몇 시에, 어디서 열겠습니다. 그러니 꼭 와 주십시오’하면, 그 때는 자기가 가든지 안 가는지를 결정해서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오늘 본문 17절에서처럼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의 문장이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누가복음의 비유에서는 어떤 사람이 잔치를 크게 열고 사람들을 미리 많이 청해 두고, 잔치 시간이 임박해서 다시 잔치를 참석해 주기를 통고한 객들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미리 전에 청함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했느냐하면, 다 일치해서 사양을 했다. 한 사람은...밭을 샀다(보통 땅을 먼저 사고 그 후에 그 땅이 어떠한지 보러 가는 법은 없다!),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1)를 샀다, 시험을 해 봐야겠다(소를 이미 사고 난 후에 그것을 시험하러 가는 것은 소용이 없다!-매매가 끝났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나는 장가들었으니 오늘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 다 저마다 핑계를 댔다.(신 24:5에 보면 결혼생활 첫 해에는 군대나 어떤 공적인 직무에서 면제시켜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잔치에 참석할 권리를 박탈당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모두 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이생의 쾌락 때문에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고 있다.

  이 비유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선지자들이 첫 번째 초대를 했다: 예수는 초대받은 자들으 부르신다; 그들은 거절한다; 이스라엘 안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들과 이방인들이 초대되었다.

  그러니 주인의 속이 어떻겠는가? 잔치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두었는데, 잔치시간이 다 임박했는데, 펑크를 내니 주인은 화가 끓어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에게 명령한다.

 

 

 

  특권이 없는자(1차 초청에 거절한 사람들)들, 즉, 가난한 사람들, 불구자, 소경, 절름발이들을 다 오게 하라!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별로 볼품없는 사람들, 세상에서 잘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잔치 자리로 불러들인 것이다. 종들이 그 주인의 명령대로 했지만 여전히 빈자리가 있었다.

 

‘주인님, 그래도 빈자리가 있습니다. 어쩌지요?’

 

그 때 주님은 말씀하신다.

 

“길과 산 울타리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하여: 외적인 폭력이 아닌 절박한 말로 초대하여 데려오라!

그러면서, 그 전에 청함을 받았던 그 사람들은 절대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24절: 작은 단어 ‘왜냐하면’이 번역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원인을 나타내는 접속사가 실제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의미는? 내가 내 집을 채우기를 원하는데, 처음에 청함을 받은 자들 중 아무도 내 잔치의 맛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큰 길과 산울가에 있는 사람들이 모아져야 한다.

 

 

  이 말씀의 대상은 2인칭의 ‘너희’인데, 14장에 시작할 때 사건의 출연인물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적대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혈통적 유대인이고, 율법의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특권은 특권일 뿐, 구원을 얻는데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청함을 받긴 받았으나 택함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스도를 거부했다! 예수님의 비유의 목적은 대부분 2가지, 이중적이었다. 은폐와 계시였다! 마음이 닫힌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감춰진 진리이고, 마음이 열린 자들에겐 열려진 진리, 계시된 진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 또한 참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율법의 특권만을 내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순종하는,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처럼 존경받을만 하지 못한, 이방인들이며, 잘 나지 못한 이방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열린 마음으로 말씀에 반응하였기에 그들이 잔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비유의 중심 교훈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에 응하라! 지금 당장 응하라!는 말씀이다. 6.2 행복나눔축제 “Present”는 전도축제이다. 이 잔치에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 먼저 믿었던 특권을 가진 여러분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참석하지 않는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는 제2의 ‘너희’(들)이 되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그렇다고 천국에 못 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분이 이 초청에 응하고 먼저 주도적으로 잔치에 주최자가 되고 참여자가 되라! 인제 한 주 남았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하나님의 집을 채우라! 100명이 넘는 예배자가 모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보자는 것이다. 대심방을 하면서 구석구석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할 청년.대학부를 만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또래, 우리 세대의 지체들을 우리에게 붙여주시도록 기도하자!

 

 

 

 사랑하는 청년.대학부 여러분! 성경에서 ‘잔치’는 늘 하나님 나라, 천국의 잔치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오늘의 본문이나 마태복음의 본문이나 둘 다 주제는 ‘택함을 받은 자는 복되다’는 것을 말해준다. 청함(초대)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이야기!

 

 

 

 

유정옥 사모의 전도 에피소드이다. 

 

저녁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초조해 진다.

분명히 전도 결과 보고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한 기대가 클 것이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내가 한 명도 전도를 못하고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할텐데...이를 어쩌면 좋담!

방학 중 며칠동안 집중적인 전도 훈련을 받고 밖으로 실제 전도를 나온 것이다.

사람은 수 없이 많이 만났지만, 단 한 명도 예수님을 영접하겠다는 결신을 하지 않는다.

 

 

 

내 손에는 밖으로 나올 때 나누어 받은 결신자 카드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대로 백지 상태였다. 학생들이 전도 훈련 받을 때 수칙 중 하나가 되도록 동성에게 전도하게 되어있다.

혹시 이성에게 전도하다가 난감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 일 것이다.

여학생에게 계속 거절을 당한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몇 시간째 거절만 당했더니 이젠 목소리까지 힘이 없다.

겨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저는 ccc 전도 훈련을 받고 전도 대회 나왔어요. 여러 사람을 만나서 전도 했지만 아무도 결신을 안하네요. 저는 단 한사람이라도 결신자 카드에 이름을 받아 가지고 들어가야해요. 그러니까 거절하지 말고 이 카드에 이름, 주소, 학교등을 써 주세요."

 

 

애원에 가까운 나의 부탁에 그 학생은 결신서를 받아 쓰기 시작했다.

 

 

"이 카드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겠다는 서약서 예요. 순서로 말하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후에 이 결신서를 써야 하는 거예요."

 

 

내가 내민 결신서에 잘 쓰는 글씨로 척척 빈칸을 메워 가던 그 학생은

 

 

"그럼 더 이상 쓸 수 없어요! 내가 이것을 써 주어야 학생이 좋을 것 같아서 써 주었을 뿐이예요"

 

 

하고는 결신서를 쓰다가 말고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할 수 없이 난감한 얼굴로 뒤돌아 서는데 그 학생이 자기가 쓰던 결신서를 다시 달라고 하더니 나머지 빈칸도 말없이 다 써 주는 것이다. 이 결신서는 주소, 이름만 물으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묻는 것이 많은지...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가 취조하느냐고 반발하며 몇 마디 대답하다가 가버리고 만다.

 

 

"학생! 내가 결신서 선불해 준거예요. 나중에 진짜 나에게 전도하러 와야 할 거 아녜요?"

 

"주소랑 이름을 알았으니까 꼭 다음에 찾아갈께요. 이 결신서는 서약서니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신 거예요. 선불로!"

 

 

훈련 장소에 뿔뿔히 흩어졌던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 명도 전도 못한 사람이 태반이 넘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들어올 것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결신자 카드를 받아 온 사람들은 신나서 전도한 간증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오히려 의기양양한 얼굴로 지금까지 전도내용을 간증한 다른 사람들에게 질세라 멋지게 전도한 것으로 말하였고 결신서는 그 학생이 자진하여 쓴 것으로 거짓말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럴줄 알았어! 우리들은 어린이 전도 밖에 못했는데 저 학생은 역시 건장한 청년에게 전도를 해내다니..."

 

 

다른 사람들이 칭찬 할수록 내 가슴에는 거짓 결신서에 대한 찔림으로 아팠다.

 

 

 

그 날 우리는 결신서에 적어 낸 그 이름들이 하나님의 생명책에도 진하게 기록되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 시간을 가졌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나의 부탁에 서슴없이 결신서를 써 준 그 고마운 학생이 꼭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달라고 땀을 흘리며 기도했다. 아니 내가 한 일이 너무 부끄러워서 조금이라도 만회 할 생각으로 기도라도 열심히 해야만 했다. 전도 팀장은 오늘 결신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도 한 달간은 기도해 주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다짐을 시켰다. 내 인생에 전도 라는 소리만 나오면 그 기억은 마음을 무겁게 했고 찌르는 가시가 되었다.

 

"너는 그 학생에게 한 마디 전도도 안했잖아 그에게 결신 기도도 안시켰잖아. 네가 한 일이 무엇이 있었는데 전도 했다고 거짓말로 잘난체 한 것이지?."

 

 

한 동안 이런 참소가 나의 귀에 쟁쟁했다. 그 학생에게 약속해 놓았지만 그 후에 그를 다시 찾아 가 전도도 안했다.

 

 

 

 

오히려 나는 그 학생을 까맣게 잊었다. 그렇게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날 버스 정류장에서 나에게 예수님 영접 결신서를 미리 써 준 그 학생이 우연히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어느 교회의 홈페이지 속에서! 너무나 훌륭한 목사님이 된 모습으로! 

 

그가 쓴 신앙 간증문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나는 그 날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여학생의 전도를 받았습니다. 이 학생은 나에게 다가와 다른 사람처럼 노련하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서 있더니 오늘 열 명도 더 만났는데 아무에게도 결신서를 받지 못했다고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까지 거절할 수 없어 결신서를 써 주었는데 옆에서 쉬지 않고 종알대는 말이이것은 예수님 믿겠다는 서약서예요. 이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다는 서약서예요. 나는 그 자리에서 그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학생의 작은 목소리가 매일 귀에 쟁쟁하여 나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 날 내가 써 준 서약서대로 진실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주님을 위해서
내 인생을 다 드리기로 결심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여러분의 씨를 뿌리라! 여러분의 입을 벌여 복음을 말하라!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보라!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여러분의 자리에서 순종을 하나님께 드려보라! 정말 얼떨결에 억지스런 순종을 드러낸 그 CCC학생의 전도가 한 사람을 목사로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전도하고 기도할 뿐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나는 씨를 뿌리는 것만 하면 된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 자라게 하시는 분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기억하라!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본질적인 요점: 하나님의 초청이 없이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과 자기 자신의 고의적인 선택이 아닌 한 아무도 하늘나라 밖에서 머물러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1) 겨리:[명사]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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