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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도행전

사도행전 15장 36-41절, 선교 팀의 분열

by Message.K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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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은 유대인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의 하나됨으로 마무리되고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시작의 대목입니다. 바울은 홀로 복음을 가지고 외롭게 여행하는 전도자가 아니고 많은 복음선교사역자들 중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전도사역이 진전됨에 따라 동역자의 수가 증가합니다. 바울과 함께 일하지는 않지만, 같은 선교사역을 위해 종사하는 다른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바울만이 초대교회의 유일한 선교사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저 누가가 바울의 사역만을 강조하고 다른 사도들의 사역은 기술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바울은 베드로, 바나바, 다른 사도들 그리고 주의 형제들을 언급하고, 그들이 유명한 복음전도자인 것을 말했습니다(고전 9:5,6).

 

 

 

  초대교회에는 바울 외에도 수많은 사역자들이 헌신하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돋보이거나 특별하다 하더라도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나라를 확장을 위해 헌신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는동안에도 무수한 일꾼들이 열정적으로 복음을 위해 섬기고 있었음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2차 전도여행은 바울이 1차 선교여행지를 다시 돌아보자는 바울의 제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도 안디옥 교회의 혼란과 논쟁을 경험하였기에 다른 교회들도 그런 어려움을 우려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바나바에게 그들이 지난번 소아시아와 구브로 여행 때 세운 여러 교회들을 2차로 방문하자고 제안하였을 때, 바나바는 이 제안에 동의하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다시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여행에서 마가가 버가에서 떠난 행동을 들면서 바울은 마가와 함께 하기를 거절합니다. 바울은 마가가 복음 사역에서 부적합한 성격적 결함이 있다고 유추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의 강직한 카리스마와 마가의 성격이 맞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바나바는 자기 조카이기도 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사촌 마가 요한의 자질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바울의 보살핌보다는 자신의 보살핌 아래에서 충분히 계발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바나바는 조카 마가를 곁에 두고 복음사역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의 판단대로, 결국 마가의 숨은 자질은 권위자란 이름의 바나바의 후원과 케어 속에서 충분히 계발되었습니다. 또한, 적당한 시기에 바울까지도 마가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참조, 골 4:10; 몬24; 딤후 4:11).

 

 

골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빌레몬서 24절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디모데후서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하지만 1차 선교팀이 2차 전도여행에서는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분쟁으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불화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분쟁과 불화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선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전도단이 이제는 두 개의 전도단으로 늘어났던 것입니다. 마치 세포가 분열하는 것처럼 증식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동역자들이 추가되면서 합류하게 됩니다. 바울은 최근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실라를 다시 불러왔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 후 실라가 안디옥을 방문하였을 때, 그의 자질을 충분히 알고 평가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실라는 적합한 동역자가 되리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을 동역자로 택한 것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라도 바울처럼 로마 시민이었다는 사실이 빌립보에서 당한 사건의 이야기에서 나타나 있습니다(16:37이하). 만약 바울이 자신을 위하여 로마 시민의 특권이나 면책권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그의 동역자는 이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바울의 입장이 아주 곤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차 전도여행의 분열은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이 오히려 바울에게도, 바나바에게도 더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술한 누가는 우리에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 위대한 영적 거인들에게도 분열과 갈등이 있었다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직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문제는 없을 수 없는 것이고, 갈등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나 롬 8:28의 말씀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결점이 많은 인생들의 관계에서는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콤비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초점만 분명할 때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갈등과 분열과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과 초점이 하나님을 향한다면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가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갈등도, 영원한 분열도, 영원한 아픔도 없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계실 때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고 합력하는 선한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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