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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마서

로마서 강해⑱ 7장 1-13절, 율법에서의 해방

by Message.K 2021. 10. 22.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2가지였다. 

 

하나는 이방인들이 어떤 조건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는 문제였고, 

또 하나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사느냐는 것이었다. 

 

전자는 신분의 문제이고, 후자는 사람의 삶에 관한 문제였다. 

 


  행 15:1에 나오는 예루살렘회의에서 결정하기를 인종과 신분과 성의 차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바울의 주장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아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회의에서는 전자의 문제는 율법의 구원의 기능이 없음을 선포했지만, 다음에 제기될 가능성인 즉 율법은 크리스챤의 삶의 원리인가에 대해서 충분하게 나누지 못했다.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는 이 문제가 별스럽진 않았지만,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는 이것인 큰 화두로 다가왔다. 로마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로마서의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단호하고도 강력하게 주장한다.
불신 유대인이든, 크리스천 유대인이든, 크리스천 이방인이든, 비크리스천 이방인이든, 율법은 결단코 크리스천의 삶의 원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이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요 삶의 원리로 모세에게 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인류에게 종국적인 구원의 능력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죄를 예방하거나 극복할 능력도 없기에 율법이 신자의 삶의 원리가 되어선 아니된다는 논리이다. 

 

 

 


  바울은 7장에서 율법을, 8장에서 성령을 집중적으로 다루는가? 

바울은 7:7-24에서 왜 율법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하고, 8장에선 왜 성령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로마서의 본론 1:18-5장까지는 주로 사람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후손, 하나님의 백성, 구원받는 자가 될 수 있는가 묻고,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그 해답임을 밝힌다. 그후 로마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6-8장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하나님의 백성, 구원받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묻고, 율법이 아닌 성령이 그 해답이라고 밝힌다. 율법의 ‘노모스’를 모두 74회 사용했는데, 그중에 23회를 7장에서, 그리고 성령을 지칭하는 ‘프뉴마’를 33회 사용했는데, 그 중에 21회를 8장에서 사용하는 점에서 확인된다.

 


로마서 7장의 주제는 율법. 이번 7장의 다루는 주제

 


1신자가 율법에서 해방된 사실(1-6절): 율법에서의 해방
2율법의 목적과 기능(7-13절): 율법을 변호
3율법의 한계와 연약함(14-25절): 율법의 한계-율법은 죄를 깨닫게하는 역할은 하지만, 죄를 짓지 못하게 해주는 능력은 없다는 점에서 연약하다. 

 



1절: 율법의 일반적인 원리-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주관한다.
2-3절: 결혼비유-바울은 율법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구속력이 있다는 법의 일반적인 원리를 결혼관계에 적용한다.
    a. 결혼을 통해 아내는 남편의 권위 아래 들어간다.
    b. 결혼 관계는 죽음으로써만 끝이 난다.
    c. 부부 중 한쪽이 사망했을 때 다른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d. 결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결혼의 열매 곧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다.
4절: 결혼 비유의 신자에 대한 적용- 이 결혼 관계를 신자와 율법, 신자와 예수님의 관계에 적용시킨다.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율법과 결혼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율법을 통해서는 결코 거룩함이라는 아들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율법과의 관계를 청산할 수 있을까요?

 

 답은 ‘율법이나 인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율법과 결혼한 아내가 죽습니다. 그래야 율법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됩니다. 그런 다음 아내인 신자들은 예수님과 결혼합니다. 신자와 예수님이 결혼한 목적은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인 거룩함을 맺기 위한 것입니다. 즉 신자들은 율법을 통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더 이상 율법의 통치와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의 의미를 알기 위해 로마서 7:4을 로마서 6장과 비교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신자들은 원래 율법과 결혼한 자들이었지만, 이제 예수그리스도와 결혼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이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이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결혼 관계를 통해 연합으로 신자에게는 많은 특권이 따른다. 
-예수님의 이름은 신자의 이름이 된다.
-예수님이 서 있는 위치에 함께 동참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은바 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천사들의 섬김을 받았다.
-만물을 상속받았다. 

 



5-6절: 율법 아래의 신자와 율법에서 해방된 신자의 대조
육신의 원어 ‘사륵스’는 우리말 성경에 ‘육신, 살, 육체’등의 말로 번역되었다. 그 의미는 ‘살, 온몸, 인류전체, 인간의 죄악된 본성’등을 의미한다. 
 육신? 7,8장에 열 번 이상 나오는 이 말은 성령 안에 있는 사람과 반대되는 말로 사용된다. ‘우리가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 있을 때’라는 말이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7:5)=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
이 말은, 적극적으로 율법 아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불신자의 상태에 있을때를 지칭한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안에 역사한다? 
죄성의 무서운 성질을 보여준다.-브레이크 없는 벤츠!

 



첫째, 신자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율법의 형벌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둘째, 신자는 이제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율법이 무엇인가? 율법에 대한 재해석 필요!
적용점강화!

 

 

 


 영화의 효과
  영화 ‘수상한 그녀’를 노인대학에서 상영했다. 할머니들이 그 영화를 보고 과연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그 생각을 해 봤다. ‘꽃잎’이란 OST를 들으면 눈물이 절로 나던데 말이다. 젊은 시절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이 청춘으로 돌아가고픈 향수와 추억과 그리움이 그 영화를 통해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는 사람에게 공감과 감동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느끼고만 있어도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이다.

 

 

 


율법의 효과
  율법은 말 그대로 standard를 제시한다. 소위 말하는 법없이 사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정말 청렴결백하고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흔히 그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없어도 될 때도 있지만,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 법이 있어야 구부러진 행동과 어긋난 행동을 비추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7:1-6에서 바울이 율법과 결혼한 나는 죽었다, 율법과의 관계는 죽었다고 하니깐 마치 바울이 율법폐기론자처럼 발언하는 것으로 들릴 것을 예상하고 바울은 지금 다시 율법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7절부터 이야기한다. 

 


먼저 첫 번째 질문으로 7절의 ‘율법이 죄인가?’(율법의 죄의 원인인가)
둘째 질문, 13절의 율법(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는가? (율법의 사망의 원인인가)

-대답: 그럴 수 없다(7,13절)
 율법은 오히려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다고 변호(12절).

 먼저 첫 번째 질문으로 7절의 ‘율법이 죄인가?’(율법의 죄의 원인인가)
바울은 먼저 율법의 역할을 설명한다. 

 


1)율법은 죄가 뭔지 가르쳐 준다. 


영화는 때론 사랑이 무엇인지(수상한 그녀), 전쟁이 무엇인지(태극기를 휘날리며), 분노가 무엇인지, 복수가 무엇인지를 어느정도 엿볼 수 있다. 근데 율법은 가장 큰 기능이 바로?
-죄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께 반역이다 -죄는 사망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율법을 통해 알았다고 말한다.



7절: 율법이 아니었다면 죄가 죄인지도 몰랐고, 탐심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지금 사도바울이 예를 들고 있는 율법의 내용은 십계명 중에서 열째 계명이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인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1-9계명: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죄
10계명: 마음속으로 짓는 죄


죄의 뿌리는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야고보도 약 1:15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즉 율법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행동으로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죄를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행동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한다. 세상의 제도와 법은 외적인 죄행위만을 다룬다. 마음은 ‘취급불가’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기준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원보다 높다. 행동의 차원만이 아니라 마음의 차원에서 행한 것도 죄로 간주한다. 십계명의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바로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된 것도 예수님도 산상 설교를 통해 십계명을 내적 차원에서 적용해 설명하셨다.

살인하지 말라(6계명): 마음의 살인 차원으로 해석(마 5:21-22)
간음하지 말라(7계명): 마음의 간음 차원으로 해석(마 5:27-28)

이처럼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언인지를 바르게 가르쳐준다. 

 


둘째, 율법은 죄의 발판으로 이용된다. 


8절: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11절: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 말씀은 죄가 율법을 악용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한다는 말씀.
유명한 판도라 상자의 이야기를 알 것이다. 
  열어보지 말라고 한 것은 사람들은 꼭 호기심을 열어본다. 열어보지 말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별로 상자에 관심이 없던 것인데, 열어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율법이 우리에게 ‘하지 말라, 먹지 말라, 만지지 말라’고 하면 사람들은 반발심이 생겨서 더 많이 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죄가 율법을 이용해서 더 많은 죄를 짓게 만든다. 이것이 죄가 율법을 기회로 삼아 우리 안에 온갖 탐심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율법이 오기 전의 상황
율법이 오고 난 후의 상황
율법이 없으면(8절)
계명이 이르매(9절)
죄는 죽고(8절하)
죄는 살아나고(9절)
나는 살았더니(9절)
나는 죽었도다(9절)


둘째 질문, 율법이 내게 사망이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13절)
율법이 내게 사망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으로 율법이 사망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가? 율법이 사망의 원인인가? 바울은 율법이 절대로 사망의 원인이나 책임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3절 상).
그러면 율법과 사망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13절하: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죄가 죄로 드러나며, 죄로 심히 죄 되게하는 역할을 할 뿐 사망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사망의 원인은 율법이 아니라 죄이다. 
죄의 죄 됨은 죄가 율법을 악용한다는 것이다. 죄는 율법을 발판으로 사용해 더 많은 죄를 짓도록 하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율법은 죄의 원인도, 사망의 원인도 아니다. 바울은 율법이 선함을 옹호한다. 


12절: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첫째, 율법은 거룩하다. 율법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율법에는 하나님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준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만큼 율법도 거룩하다’

둘째, 율법은 의롭다. 율법이 의로운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의롭기 때문이다. 의롭다는 것은 공평하다, 공정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공정하거나 불공평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러므로 율법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셋째, 율법은 선하다. 율법이 선한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선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선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선함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율법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가볍게 여기는지 무엇을 목숨을 다해 먼저 해야 하고, 나중에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영생을 얻는 길인지 가르쳐 준다. 율법은 아주 좋은 것이다. 그 요약판이 바로 십계명이다. 하나님만 예배하고, 우상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고,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십계명을 둘로 요약하면,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좋은 것이 어디에 있는가?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착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7:14-25 율법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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