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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마서

로마서 1장 24-32절, Let it Be

by Message.K 2021. 10. 7.

로마서 1장 24-32절, Let it be 설교의 썸네일입니다
Let it be

 

 

 

*이 글은 기독교 교회에서 행해진 설교원고임을 밝힙니다. 혹시나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자신과 반대된다고 하시면 곤란합니다. 기독교는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과 다른, 성경에 기초한 방식과 질서를 지향하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과 배치된다면 이 글을 읽지 마시길 바라며, 읽으시더라도 이에 대해 의견을 교류하는 것은 가하나, 다른 고소나 신고를 통한 글의 게재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개요-하나님의 심판과 이방인(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이방인)


이방인이 하나님의 거절한 결과들
24: 하나님의 내버려두심①: 마음의 정욕대로-몸을 서로 욕되게 함
25: 이런 작태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는 행위
26: 하나님의 내버려두심②: 부끄러운 욕심대로-성을 순리대로 쓰는 것을 포기
27: 이미 심판을 받았다!
28: 하나님의 내버려두심③: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
29: ①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인간의 내면적인 성품과 관련된 죄악
30: ②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범죄
31: ③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한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12개 항목의 범죄: 가정, 사회, 공동체 생활에서 일어나는 범죄
32: 이같은 죄는 사형에 해당하지만, 그걸 알고도 계속 범죄하는 인간들!

 




  밀레니엄 2000년 되면서 지난 세기 가운데 가장 최고의 앨범 top100을 뽑아서 라디오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영예의 최고의 1위는 단연 누구? 바로 Beatles이다. 
그 비틀즈의 유명한 곡 중에서 이 노래를 아는가? Let it be! 

 

 


   Let it be의 뜻은 냅둬 냅두라고! 그런 의미이다. 팝송으로는 이게 ‘순리대로 내버려두면 된다 내버려두라’(놔두면 자기가 잘 알아서 하겠지! 그 사람에게도 시행착오와 훈련의 경험이 필요해!) 뭐 이런 긍정적인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한편으로 이 말은 ‘그냥 놔둬라!’(그 친구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는 놈이니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끼어들지 말고 개입하지 말라!) 의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

 

 


  let it be 저는 오늘 이 본문에서 내버려두라는 의미의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자 해서 제목을 택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반역죄를 저지르니, 하나님께선 그런 인간을 두 손을 들고 우리가 흔히 정말 너무 어의가 없거나 감당이 안 될 때, “내버려둬라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식의 말을 한다. 하나님도 인간이 너무 거침없이 죄를 지으니깐 내버려두는, Let it be의 자세를 택하신 것이다.

 

 

 


1:18-2:16까지, 바울은 인류전체를 고발한다. 인류는 마음 중심이 부패했고, 그 때문에 최종적인 파멸로 치닫고 있다(1:32;2:5;2:16). 

 

 


보통 시골 마을 입구에 가면 고목나무가 마을 어귀에 종종 있는 것을 본다. 200년, 100년이 넘는 나무가 있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그 나무들이 때로는 속이 썩어서, 뿌리가 썩어서 큰 바람이 불면 대형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곧 베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죄성의 오염은 이처럼 심각하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은 부패한 것이 꼭 인간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이다. 겉은 화려한 옷과 명품으로 치장하고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해서 보기가 그럴듯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썩어 뭉개져가고 있다.

 

 

 


암세포가 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치면, 다리까지 올라왔다.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온 몸에 퍼진다. 그때는 다리를 절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잃고 만다.

 

 


  하나님은 인류가 너무나 썩어서 조치가 필요한데, 오히려 인간은 기고만장하여 22절에 스스로 지혜있다 하고 어리석게 된 모양새이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오늘 본문에선 하나님의 무관심, 즉 내버려두심이 3번 등장하고 반복되고 있다(24, 26, 28절). 그중에 24, 26절의 내용은 비슷한 이야기이다. 

 

 


 
 먼저는,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심(24절)이다. 

이것은 또한, 두 번째 내버려두심인 부끄러운 욕심대로 내버려두심(26절)과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한다고 했다. 이것은 두 번째의 부끄러운 욕심대로 내버려두심과 연관이 있다. 이 말들은 인간이 짐승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특별히 성적 탈선을 말하는 데, 그것의 특수한 형태로 1:26b-27절에서는 동성애가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동성애를 용인하고 심지어 높이 기리기까지 하던 당시의 그리스-로마의 망령된 문화를 배격하고 있다. 간음도 비참한 것이지만, 동성연애는 더욱더 비참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 때 정하신, 성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혼돈과 무질서에 넘어져 자신을 무참하게 더럽히고 있다. 

 

 


  예전에 동성연애는 금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금기가 무너졌다. 대중문화 곳곳에 동성애가 판을 치고 있다. 동성애 코드는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부터, 번지점프를 하다(2000), 왕의 남자(2005), 쌍화점(2008),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꾸준하게 동성애 코드가 소재로 등장했다. 2010년의 SBS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 커플이 등장하기도 했다. 응답하라 1997(2012), 오로라공주(2013)에서도, 응답하라 1994에서도 성 정체성에 혼동이 있는 친구의 이야기도 있다. 동성애 코드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마케팅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문화가 동성애 코드에 대해 관대적이고 허용적이다 보니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동성애 결혼을 허용하는 유럽 꼴이 나지 않을까 싶다.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여자끼리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은 딱 잘라서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지금은 이 원고를 작성했을 때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다. 

 

 


바이올린을 켜는 것은 ‘활’이다. 그런데, 식칼이나 야구방망이로 연주한다면 연주가 되겠는가 이다. 동성애 코드도 그렇다(혹여나 이 글을 읽는 이가 반론을 펼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교회에서 행해지는 설교의 형식이고, 메시지이며, 텍스트는 성경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을 거절하는 이가 이 소릴 들으면 분명히 안색이 변할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된 바른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에 거부감이 든다면 읽지 마시길 바란다). 시대가 이에 대한 오픈 마인드라고 하더라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이 부분에 대해선 명백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바울이 편지 쓸 당시에 로마의 네로 황제가 온갖 형태의 성적인 변태 행위를 통하여 동성애 행위에도 빠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울이 단순히 로마제국의 성적 탈선을 꼬집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고대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주로 신전 매춘 혹은 연장자가 어린 사람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소아성애자가 문제였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한 답이 아니다. 고대 헬라-로마 문화는 동성애를 비난하거나 죄악시하지 않았고, 때로는 조장하거나 미화하기까지 했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결혼이란 제도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동성애자를 최근에는 ‘게이’, ‘레즈비언’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동성애관행은 인간 세계 전체가 고장 났음을 말해주는 표지이다. 한 남자와 여러 여자가 결혼하는 중동지방의 관습, 일부다처제, 부끄러운 성관계를 맺는 동성애도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의 이유이다. 물론 악트마이어란 학자는 동성연애의 행위에 대해 정죄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동성연애가 지닌 파괴성만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악의와 험담과 비난도 똑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적 상황에서 동성애는 아직 미미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거의 드러난 수준이라서 이런 발언을 하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동성연애자는 정말 이방인취급 당하고 동네 개 쳐다보듯이 쳐다봤는데,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로 봐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상한 가수, 레이디 가가가 게이클럽에 가서 공연까지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제는 교회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이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본다.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25절에 드러나 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고매한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 거짓된 것은 앞에 나오는 마음이 정욕으로 인해 더러워지고, 그 더러워진 마음은 육신을 상하게 하고, 육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육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지만, 그들의 정욕과 사악한 욕망으로 인해 욕보여진 것이다. 이방인들은 바로 이러한 ‘거짓된 것’에 미혹되어졌다. 더 나아가 23절의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의 우상을 지칭할 수도 있다. 인간의 타락하고 우매한 모든 것이 ‘거짓된 것’을 자초했던 것이다. 그러한 행동들은 결국 파행을 초래한다. 결국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되버린’ 셈이다. 


 여기서 ‘라트류오’는 섬기다는 뜻인데, 고용되어 섬기다는 뜻도 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인간이 욕망에 의해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피조물에게 고용된 성직자가 되어 버린 셈이다. 물론 이들이 그 피조물을 공개적으로 예배하진 않는다고 발뺌할지 모르지만, 정작 그들의 행위는 심적으로 그들을 예배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타락한 이방인 사회의 성적인 부도덕과 도덕적인 타락은 26절에 상세하게 드러난다. 로마가 몰락한 이유는 직접적인 문화, 경제, 군사, 정치 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로마가 무너진 이유는 ‘성도덕의 붕괴’ 때문이었다. 성도덕의 붕괴 그 배후에는 바로 사람이 누구를 예배하고 있느냐?는 영적 예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되어질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쉽게 단정짓고 매몰차게 거절할 대목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서 예배하는 예배자라면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  창조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셋째는,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심이다(28절).


‘상실한 마음’이란 올바른 도덕적 결정을 내리기에 부적격한 마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여러 가지 죄악들과 인간의 결점 목록들을 보면서 ‘내가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고, 신문에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고, 티비에서 많이 봐 왔으며, 때로는 거리에서 만나며, 이제 막 그런 사람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사실이 있었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내가 그런 사람을 길거리에서가 아니라 거울 속에 내 모습 속에서 발견하곤 한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29: ①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인간의 내면적인 성품과 관련된 죄악
30: ②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범죄
31: ③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한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12개 항목의 범죄: 가정, 사회, 공동체 생활에서 일어나는 범죄


C.S 루이스는 ‘지옥’을 일컬어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곳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하나님을 칼리굴라 황제로 보지 말기를!
  칼리쿨라 황제는 새로운 법을 깨알같은 글씨로 써서 높은 벽에 붙여 두곤 했으므로,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법을 어겼다며 사람들에게 벌을 주곤했다고 한다. 우리가 절대 어찌 할 수 없는 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창조 구조에 내장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이 제목도 비틀즈의 노래제목에서 따왔다!)의 제목처럼 현대는 상실의 시대가 되었다. 자아, 자존감, 정서적 만족감, 도덕적 감수성, 영적 감각, 이런 모든 것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상실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언젠가 우리의 회개치 아니하나는 교만한 마음과 우리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죄악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내버려두심은 끝이 분명하다. 

 

 


 20대, 30대를 자신의 욕망이 신이 되어 살아가는 저 세상의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보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청년이 아닌가? 그 젊음을 하나님께 드려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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