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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13절, 용서는 없다?

by Message.K 202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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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대학.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용서해 본적이 있는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한 적이 있는가?

   용서는 결코 쉽지 않다. 요근래 딸을 성폭행한 아들을 아버지가 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행위이다. 용서가 안 되는 범죄에 아버지가 심판을 해버린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여류 작가는 어릴 때 의붓 오빠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서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았다. 정신분열증으로 시달렸다. 그런 그녀를 사랑한 남편, 레너드 울프는 아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활동을 돕는 한편, 부부관계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방적인 요구도 들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정신질환과 인기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모두 남편 레너드에게 퍼부었다. 결혼 생활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과 불행이 남편에게 전이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내가 미쳐간다는 것을 확실히 느낍니다.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제게 가능한 가장 큰 행복을 선사했지요. 당신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어요.”

 

 

 

  과거의 상처를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용서를 하였다면 그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텐데. 아니 자신이 그 과거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을, 남편에게 고통이 되고 짐이 되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고통받고 상처받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용서하였음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했다. 그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결국 버지니아 울프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드는 궁극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와는 반대로,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과 사람을 용서한 한 사람이 있다.

 

 

 

   1979년 9월 15일 미국에서 승용차와 40톤 트럭과의 사고가 있었어요. 그 사고로 차에 타고 있던 아기가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었어요. 50번의 수술을 받은 끝에 아기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그 아기가 바로 조엘이예요. 조엘은 화상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에게 괴물 취급을 받아야 했어요.

 

“언니, 조엘이에요!”

 

 

  고모가 얼굴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타버린 게 나라는 걸 겨우 알아봤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자세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이 애가 조엘 맞아요?”

 

 

  내 얼굴은 검은 숯덩어리 그 자체였다. 머리카락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정수리는 허연 두개골이 드러나 있었고,불에 탄 눈꺼풀은 감긴 채 흉하게 부풀어 올랐으며 코는 완전히 쭈그러져 있었다.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안돼! 조엘! 조엘!”

 

 

  엄마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중화상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죽어야만 고통이 끝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고통 당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천국에서 하나님의 손을 잡고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는 형체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진 내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동차에서 아기를 꺼내온 그 낯선 젊은이들을 향해 원망 섞인 절규를 했다.

 

“이 애는 고통스럽게 죽을 거예요. 왜 우리 아기를 구한 거예요?”

 

 

  그러면서도 엄마는 특유의 모성애를 발휘했다.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인지를 찾았다. 엄마는 검게 그으른 내 입에 입술을 대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덕분에 호흡을 되찾은 나는 괴롭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응급 구조요원 한 사람은 그 비명을 평생 잊을 수 없다면서 다시는 그런 비명을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응급 구조요원이 아직 열기로 뜨끈뜨끈한 내 몸에 차가운 물을 들이부었다. 차가운 물이 내 몸에 닿자 ‘칙’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솟아올라 엄마를 더욱 두려움에 질리게 했다. 나는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구조요원은 내 입과 코에 산소호흡기를 연결하려고 애썼지만 얼굴 전체가 심한 화상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일그러져 소용이 없었다.

엑스터 병원의 의료진은 내가 살아날 가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급실 의사들은 치명적인 화상으로 위독한 어린아이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라 의학서적을 뒤지는 등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부인, 아기를 최대한 빨리 보스턴으로 이송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는 지갑을 자동차에 놓아뒀기 때문에 수중에 한푼도 없었다.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아빠와 고모부는 화상을 치료 받기 위해 엑스터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보스턴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막막했다. 그런 와중에 30대 중반의 금발 부인이 고모와 제이미를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하는 등 도움을 줬다.

 

 

  아빠도 응급실에서 이 상황을 전해 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잠시 후 아빠가 “여보, 기도합시다”라고 말한 뒤 응급실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저희 부부에게 조엘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조엘은 저희 부부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저희 부부에게 조엘을 키우게 해주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 이제 조엘의 생명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을 끔찍한 사고에서 구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1)

 

 

 

    생후 20개월 때 교통사고로 전신 85퍼센트에 3도 중화상 입어 발가락, 손가락이 없음, 약 50여차례 수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 때 전교 학생회장 역임, 다섯 살 때부터 TV 프로 게스트로 출연, 산악자전거와 클레이 사격의 고수로 불려지고 있다.

 

18년이 지난 후, 조엘을 다치게 한 트럭 운전기사가 잡혔어요.

 

  여러분이 조엘이라면 그 아저씨에게 어떻게 했을까요?

  하지만 조엘은 용서했어요. 조엘의 말을 들어보세요.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엘은 자신의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받아야 할 여러 가지 어려움들과 괴물취급 당하는 수모조차도 그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 견뎌냈어요. 그리고서 많은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멋진 친구가 되었답니다. 그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그 찬양의 가사처럼, 자신이 비록 얼굴은 화상을 입어 이상하고 손도, 발도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것을 알았답니다. 조엘 대신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그는 믿었고 그로 인해 교통사고 운전자 아저씨를 용서할 수 있었던 거죠.

 

 

 

  영화 “용서는 없다”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바로 용서하는 겁니다.”.....용서하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런데, 성경은 오늘 무어라고 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나요? 버니니아 울프의 비극도, 조엘의 비극도 정말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고 환경인데, 그것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요?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골로새서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성경에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셨다고 하셨다. 용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인데, 조엘처럼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 사람, 18년 동안 안 잡힌 그 사람을 향하여 용서할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을 바로 ‘예수님의 용서’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용서하셨는가? 예수님은 용서할 수 없는 누굴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가? 바로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향해 용서를 베푸신 것이다. 인류? 인간? 우리가 예수님과 사이에서 무슨 일을 했다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우리 인간과 굉장히 끈끈한 관계였다. 하지만 인간은 죄를 지었고,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형무소에 들어가거나 심지어는 사형까지 받으면서 자신의 죄 값을 치루어야 한다. 죄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죄는 용서가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르면 그 범죄에 대한 댓가를 벌금형, 구류형, 감옥형, 사형 등으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을 지불하지 않으면 죄는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심판을 받아야 용서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댓가 지불없이는 양심에 가책과 죄책감으로 평생 마음의 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여러분이 상처를 주었거나 상처받은 모든 것은, 사람의 죄 때문에 출발한 것이고, 그 죄는 욕심이 잉태하여 나온 결과이다. 사람마다 욕심이 있어서 그 욕심이 다른 이의 욕심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서 작게는 부부싸움부터 시작해서 전쟁과 내란과 반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에겐 욕심이 있고, 그 욕심은 죄가 되고, 그 죄는 후에 죽음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죽는 것은 병에 걸려서나, 교통사고의 운이 없거나, 자연사가 원인이 아니다. 사람의 죽음의 이유는 바로 ‘죄’ 때문이다. 그 죄로 인한 죽음, 그것으로 끝이 나면 좋은데, 죽음이후에 또 다른 생애가 펼쳐진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사람의 일생은 3가지 일생으로 구분된다.

  먼저, 어머니의 탯속에서 10개월의 삶, 두 번째, 출생하여 사는 100년 안 되는 인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인생이 있다. 불교에서는 전생이 있고, 내세가 있다고 믿는다. 전생에 잘 못 살면, 현세에 고생하면서 살게 되고, 너무 죄가 많았던 전생이 있으면, 그 사람은 사람으로도 환생하지 못하고, 동물이나 기타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게 믿겨지면 그것을 믿으라! 아무도 당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순 없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태세, 현세, 내세의 삶을 이야기한다. 탯 속에서의 삶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현재의 삶이 후에 영원한 일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태교가 아이의 일생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처럼, 현재의 삶에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의 영원한 삶은 지옥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여러분, 그런데 더 중요한 소식!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런 연약하고 욕심 많은 삶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인류가 지옥 가는 것을 참지 못하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죄값을 지시겠다고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셨다. 2000년 전에 오셔서 33년의 생애를 사시고 죽으셨는데, 그 죽으심이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누명을 쓴 채 억울하게 죽은 죽음이지만, 그 죽음의 의미는 우리 인류의 모든 사람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나만 믿어! 나만 믿으면 내가 다 해결할게. 넌 나만 믿어!’

 

 

정말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신적 스토리가 성경에서 벌어진 것이다. 여러분의 빗나간 욕심으로 벌어진 수많은 죄의 댓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다 감당하시고 죽으셨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용서할 수 없는 모든 죄:

 

 

롬 1: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우리가 지은 어떤 죄도 예수님의 희생보다 클 순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되어 친히 십자가에 죽으신 것 만큼 더 큰 겸손도 없고, 더 큰 희생도 없고, 더 큰 댓가도 없다.

 

 

 

 여러분이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께 여러분의 죄를 맡기고 그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음식물쓰레기를 새벽에 밖에 내다 놓으면 새벽에 우리가 자는 사이에 아저씨들이 그것을 처리해놓고 가신다.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다 내어놓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요일 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랑하는 청년.대학부 여러분!

  용서는 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를 압도한다. 그 용서의 맛을 본 자는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다. 여러분도 용서의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용납할 수 없는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 선생님들, 친척들, 선후배들...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와 용납으로 품으라! 또한 여러분 자신의 허물과 죄를 스스로 인정하라! 자신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의 죄를 용서할 수가 없다. 여러분의 마음을 열라! 여러분 자신, 또한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죄의 사슬에서, 죄책감의 틀 가운데서 용서받을 수 있다. 오직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죄짐을 대신지시고, 후에 용서받는 인생이 되시길 바란다. 버지니아 울프도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그렇게 자살하진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다른 버전의 설교문(미완성):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이치이다. 창조질서이다. 지금까지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슈퍼맨도, 성경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 969세를 살았던 영화 ‘노아’의 마법사할아버지도 죽었다. 사람이 왜 죽는가? 죽지 않는다면 이별의 눈물도, 슬픔도, 아픔도 없을텐데. 사람에게 죄가 있는 한, 이 죽음의 역사는 인류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계속된다. 어느 시점에 죽음이 뚝 끊어지고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아무리 좋은 약을 개발하고, 백신을 개발한다고 해도 죽음을 막는 백신은 없다. 몇해 전인가 미국의 엘코어란 회사에서 불치병환자를 냉동시켜주는 상품을 내놓았다.

 

 

  실제로 미국 애리조나의 앨코어생명연장재단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사망한 회원 100여구 이상의 냉동 시신을 보존하고 있다. 김 위원은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도 그중 하나"라며 "가입 회비는 1만2,000달러, 뇌만 보존하면 5만 달러, 전신 보존은 12만 달러에 이를 만큼 비싸다"고 소개했다.

 

 

  죽음에 대한 아무런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 죽음? 왜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가? 영원토록 살지 못하고 죽는가? 그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기를 ‘죄’때문이라고, ‘죄의 삯’이라고 말한다. 여러분,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 갓난아기도 죄가 있다. 왜? 인간은 원래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DNA가 그렇다. 우리 아들 지호에겐 은근히 내 피가 흐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죄의 DNA가 존재한다. 인간은 그래서 도저히 죽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죽으면 다 끝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야한다.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 가운데 어디를 가기를 원하는가? 중요한 것은 이 천국과 지옥을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가 있으면 지옥이고, 죄가 없으면 천국이다.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옥이란 것이다. 여러분은 죄의 문제를 해결했는가? 시간이 약인가? 죄를 지어도 걸리지 않다가 20년, 30년 지나면 공소시효가 끝나 죄가 다 삭제되는가?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인생에 있어 죄는 절대 끊을래 끊을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죄 때문에 분노하셔서 ‘노아’에서처럼 대홍수를 준비하셔서 세상을 쓸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제 구약시대의 대홍수 말고, 신약시대인 지금 또 다른 심판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그 심판은 불심판이다. 왜 심판하시는가? 너무나 싫기 때문이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너무 싫으시다고? NO~바로 우리의 죄가 너무나 싫은 것이다. 그 죄가 너무나 참혹해서 용서가 안되는 것이다. 용서는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용서의 방법을 허락하셨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하실 분을 보내신 것이다.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8.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사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롬 5:8에 보면, 우리가 아직 , 그게 용서란 단어를 입밖에 내기가 힘든 현실


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195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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