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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장 1-24절, 사탄의 저항에 맞서라

by Message.K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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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에베소서 6:1-24의 본문을 가지고 <사탄의 저항에 맞서라>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에베소서를 보는 가운데 가정준칙(5:22-6:9)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가족구성원끼리 서로 사랑하며 복종하라는 권면의 메시지에 감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근데 그 다음맥락에서는 갑자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면서 영적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앞에서는 윤리적인 메시지를 주고, 후에는 영적 전쟁 메시지를 한다는 것이 좀 부적절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부분을 에베소서의 전체 흐름과 맞지 않으니, 부적절한 부록정도로 취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4:1에서 시작된 윤리적인 권면을 오늘 이 대목에서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신 전체의 결론을 제시하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서 '끝으로(마지막으로)'라는 표현은 본 단락이 윤리적 권면의 결론부분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앤드루 링컨이란 신학자는 아주 두꺼운 '에베소서 주석'을 하나 썼습니다. 그는 이 본문을 분석하면서 마치 이 대목은 영적 싸움을 위해 전신갑주를 취할 것을, 전투를 하기 전에 군사들을 모아놓고 호령하면서 명령하는 장군의 연설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는 글을 통해 전달하는 서신이기 때문에 앤드루 링컨이 적용하는 듯한 웅변이나 연설같은 형식으로 적용하는 것을 옳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본문은 독자들에게 무언가 행동을 촉구하는 면이 다분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스카 쿨만이란 신학자는 이러한 이야기로 오늘 본문을 접근했는데, 그 접근이 아주 명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영적 존재들과의 싸움은 마치 제2차 세계 대전의 그림과도 흡사합니다.

 

 

 

1944년 6월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던 날(D-Day)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이미 확실하게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날(VE Day:유럽 전승 기념일Victory in Europe Day)은 그때부터 거의 일년이 지난 1945년 5월 8일이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연합군은 수많은 전투를 해야 했고, 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연합군의 진격을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의 승리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지만 전투는 개별적으로 계속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망권세를 정복하시고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미 거두셨습니다(골2:15). 하지만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 중에 오시면 최종적인 승리가 선포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사탄과 악한 영들은 여전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면서 성도 개인과 교회를 공격할 것입니다. 전투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위험한 시대이며 계속해서 악한 영들과 전투를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일단 10-20절은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개요

10-13절: 영적 싸움과 그 대상

10절: 주 안에서 강해져라

11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12절: 영적 싸움의 대상

13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14-17절: 영적 싸움을 위한 하나님의 전신갑주

14a절: 견고하게 서라

14b-17절: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요소들

1)진리의 허리띠(14b)

2)의의 가슴막이(14c)

3)평화의 복음의 준비(15)

4)믿음의 방패(16)

5)구원의 투구(17a)

6)성령의 검(17b)

18-20절: 영적 싸움을 위한 기도

18절: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19-20절: 사도를 위해 기도하라

 

 

오늘은 하나님의 전신갑주까지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영적싸움과 그 대상

10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은혜 가운데 강하게 되어라'는 말은 바울이 딤후2:1에서도 동일하게 권면한 메시지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개인적인 훈련과 마인드 컨트롤이나 신비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강해져야합니다. 야구선수가운데 정현욱이란 친구는 군대병역문제로 인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야구인생을 완전히 접어야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감옥에서 하루에 팔굽혀펴기 1000개를 하면서 자신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훈련해서 강해지는 것은 영적인 차원에서 바르지 않습니다. 우리 혼자서 무언가를 강력하게 성취하고 이룬 것도 중요하지만, 성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일을 은혜가운데 성취하고 은혜가운데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건해지는 두 가지 범주를 10절에서는

 

1 주안에서와, 2 그 힘의 능력으로, 으로 구분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자기 오른편에 앉히시고 그에게 자기 권세와 능력을 위임하셨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힘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소유하신 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참, 엡 3: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으로, 은혜가운데 강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갈 때 은혜의 하나님께서 더 큰 힘을 공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11절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3절에서도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같은 명령을 반복합니다. 전신갑주라는 말을 11,13절에 하는데, 그 중간의 12절에서 전신갑주를 입고 대적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라는 헬라어 명사 '파노플리아'는 신약성경에 세 번 등장하는 용어입니다(눅 11:22; 엡6:11,13). 헬라 문헌들에서는 이 용어는 중무장한 보병이 갖춘 전투 장비 일체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전신갑주를 이야기하면서 로마 군대가 갖춘 전신갑주 뿐만 아니라 특별히 이사야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마음에 두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갑옷을 입고 대적자들과 싸우는 전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 59: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여기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의의 호심경, 구원의 투구, 보복의 속옷, 열심의 겉옷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본문에서 등장한 종류와 정확히 일치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의의 호심경(가슴막이)와 구원의 투구가 일치하는 것은 두 본문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입으시는 전신갑주가 아니라 악한 영들을 대적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방어와 공격을 위한 일체의 영적 전투 장비를 지칭합니다.

 

 

 

우리가 왜 이러한 장비를 구축해야 합니까? 그것은 11절에 나옵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였고,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이며,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이며 사탄입니다. 마귀는 광명한 천사로 때로 화려하게 가장해서 성도들을 미혹하기도 하며,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 사탄이 부리는 작전은 페어플레이한, 공정한 작전이 아니라 '궤계'라고 말합니다. 속이려는 의도가 다분한, 교활하게 꾸민 음모를 가리킵니다. 광명한 천사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것이 사탄의 작전인지 모르고 성도들은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악과가 벌레가 먹어 썩어빠진 과일이었다면 두 사람은 그 열매를 쳐다보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그들에 눈에 들어온 선악과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열매'였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탄의 정직하게 다가온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겠지만, 궤계scheme[ski:m] 음모/ 로 공격해 오기 때문에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기존 교회에 들어와서 공격하는 이야기들을 간혹 듣습니다. 새가족으로 들어와서 몇 년 동안 교회의 충성된 일꾼으로 잘 봉사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교회의 목회자와 중직자들과 성도들의 하나됨을 파괴시키는 작전을 쓰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교활하고도 교묘한 궤계를 능히 대항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영적 싸움의 대상

12절에서는 우리가 싸워야 할 마귀, 대적해야 할 상대가 어떤 친구인지를 정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복싱시합을 할 때 서로의 성적표와 프로필을 대조하면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를 향해 도전해오는 마귀는 어떤 놈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의 성격은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이 싸움을 '씨름'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팔레'라는 단어는 유일하게 이곳에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레슬링경기를 말할 때 가리키는데, 싸움이나 전투 등 일반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 인간이 아닙니다(아니모니다!).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영적 실체, 영적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이라고 말합니다. 정사들, 권세들, 이것들은 영적 존재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바보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 더 간교하기 때문에 궤계를 사용할 줄 아는 영적 실재입니다.

우리가 성도된 입장에서 성도를 미워합니까? 그것은 사람을 미워하기 이전에 성도와 성도 간에, 하나님과 사람 간에 관계에 사탄이 궤계를 부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탄은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 공동체, 교회의 구성원들의 관계를 흔들기도 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지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영역에 속한 초자연적 존재입니다. 이들은 특별히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며, 강력한 힘을 가지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합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한다. 정말 불순종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역사하시지만, 불순종하면 사탄의 노리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자신의 부하로 부리면서 사탄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강력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런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항하지 못하며, 단지 무기력하게 종노릇만 할 뿐입니다(엡 2:2; 고후 4:4).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13절에서는 한 번 더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명령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13절 후반절에 이는...에서 그 이유와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한" 목적인 것입니다. '악한 날'이란 성도들이 악한 영들의 공격에 직면하는 매일매일의 순간을 말합니다. 동시에 악한 영들이 더욱 강한 힘으로 공격을 감행하는 특별한 시험과 박해의 때를 가리킵니다. 악한 영들의 공격은 주님이 오시는 그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이 구절은 우리가 마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다 끝내고 의의 면류관을 받으러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싸움의 마지막, 싸움의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서다'라는 동사 '카테르가조마이'는 이기다, 정복하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단지 행하다, 이루다, 성취하다의 뜻만 있기 때문에 싸움의 결과 보다는 싸움의 준비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해'라는 구절은 악한 영들과 싸울 준비를 마치고 굳게 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정확합니다.

 

 

 

영적 전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서야 할 자리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마귀와 악한 영들을 이기신 '주 예수 안'입니다. 마귀와 악한 영들은 강력하지만 결코 전능하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주 예수 안에 굳게 서기만 한다면 능히 마귀와 악한 영들을 대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런즉'이란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성도들이 취해야 할 전신갑주의 여섯 가지들, 즉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가슴막이), 평화의 복음의 준비,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에 관한 설명입니다.

 

 

 

①진리의 허리띠

헬라어에는 '허리띠'란 단어가 없습니다. 바울은 허리를 졸라매다라는 분사(페리조사메노이)를 허리란 단어와 함께 사용해서 '진리로 여러분의 허리를 동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허리를 졸라매는 장비는 아마도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허벅지를 보호하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입었던, 짧은 바지처럼 생긴 앞치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성도들이 허리를 졸라매야 할 영적 장비는 마음과 행동의 진실성을 가리킬 것입니다. 칼빈도 진리의 허리띠를 성도들의 거짓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해석합니다.

 

이 진리는 진실에 가까운 진리인데, 또 다른 한편으로 허리띠에 사용된 진리는 바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복음의 진리로 허리를 동이라는 것은 말씀의 진리를 굳게 의지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마귀는 온갖 술책과 전략과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려고 유혹하고 미혹하기 위해 안달입니다. 그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다른 모든 것을 붙들어 매고 제자리에 있게 하는 허리띠와도 같은 복음의 순전한 진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가 졸라매야하는 것은 진리,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아무리 탁월하고 휘황찬란한 역사와 부흥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없다면,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로 우리를 동여 맵시다. 이단이 득세하는 작금의 시절에 진리로 우리의 허리를 동여맵시다.

 

 

 

 

 

②의의 호심경(의의 가슴막이)

'또락스'로 표현된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이 장비는 가슴, 폐,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군인들의 가슴 부위에 붙이던, 놋쇠로 만든 방어용 장비입니다. 호심경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명사 '쉬르얀'(사59:17)은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을 가리킵니다. 또락스는 흉배가 아니라 '흉갑'이나 '가슴막이'로 번역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는 하나님을 따라 창조된 새 사람의 특성이며, 빛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맺어야 하는 삶의 열매, 즉 의로운 성품이나 행동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인간의 윤리적인 어떤 의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권적으로 선언하신 의의 판결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는 것,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것, 이것이야말로 마귀와 악한 영들의 정면 공격에서 성도들을 보호해주는 굳건한 가슴막이인 것입니다. ->로마서의 화려한, 탁월한 선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부여하신 의와 성도의 윤리적 의가 낱줄과 씨줄처럼 함께 엮여서 뚫을 수 없는 의의 가슴막이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롭다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가슴막이입니다. 호심경입니다. 사단의 공격에도 우리는 당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의의 가슴막이 때문입니다.

 

 

 

 

③평화의 복음의 준비

세 번째 영적 장비는 신발이다. 로마구인들은 칼리가라는 반장화를 신었습니다. 하지만 15절에서 사도는 군화나 신발을 직접 언급하진 않습니다. 단지 평화의 복음의 준비를 발에 신으라고만 합니다. '평화의 복음의 준비'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발인 셈입니다.

 

 

이 말은 두가지 해석이 가능: 목적격적 속격(복음을)으로 해석하면, 성도들이 영적 싸움을 할 때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귀와 악한 영들을 대적하는 것에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 또한 포함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로 번역.

 

 

주격적 속격(복음이)로 해석하자면, 즉 복음의 준비란, 튼튼한 군화가 그것을 신은 군인에게 견고하게 설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복음이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주는 견고성이나 확고부동함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복음의 준비를 발에 신는다는 것은 적의 공격에 대항하려고 견고하게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체 단락의 강조점도 적의 공격에 대항하여 '서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후자의 해석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로마 군인들은 바닥에 정이 박힌 튼튼한 군화를 신음으로 견고하게 적들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평화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복음 안에 굳게 서서 악한 영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그리고 성도들과 평화를 누리는 것은 악한 영들과 싸울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신발, 곧 견고한 발판인 셈입니다. 평화의 복음의 준비를 발판으로 견고하게 서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④믿음의 방패

다같이 16절을 읽겠습니다.

 

'이 모든 것과 함께 믿음의 방패를 가지십시오. 이것으로 여러분은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들을 끌 수 있습니다.'이 본문에서 사용된 '뛰레오스'는 고대 로마 군인들이 전신을 보호하는데 사용하던 직사각형 모양의 큰 방패로서, 길이가 대략 120센티미터, 폭이 75센티미터, 두께가 손바닥 넓이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믿음을 방패와 연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취해야 할 방패는 바로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의심이 생기고 낙담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되며, 유혹을 당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이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은 복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의지하면 그분이 영적 전투에서 보호해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에서 '소멸한다, 불을 끄다, 진화하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로마 군인들은 전투를 시작하기전에 방패의 겉면에 씌운 송아지 가죽을 물에 적십니다. 이렇게 하면 적의 불화살을 끌 수 있었고 방패에 불이 붙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들이란 마귀와 악한 영들의 모든 궤계와 공격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마귀는 모든 방법으 동원하여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공격합니다. 모든 종류의 죄의 유혹과 시험과 의심, 절망, 이단적인 가르침 등! 하지만 이러한 모든 불화살들은 믿음의 방패를 가진 성도들이 소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믿음의 방패를 굳게 들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⑤구원의 투구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장비 가운데 마지막 방어용 장비, 구원의 투구입니다. 이것은 청동으로 만든 로마 군인들의 투구를 가리킵니다. 로마군인들 뿐만 아니라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투구 또한 승리의 전사로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대적을 물리치실 때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셨습니다(사 59:17).

 

 

데살로니가전서 5:8에서 사도는 '투구'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말합니다. 이 본문에서는 구원은 성도들이 장차 얻게 될 미래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에베소서의 본문에서는 구원은 성도들이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현재적인 것입니다. 영적 전투에 임하는 우리들은 자신들이 이미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으며, 심지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을 악한 자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그들이 확신과 기쁨으로 머리를 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야말로 영적 싸움에서 성도들의 머리를 보호해주는 견고한 투구인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로 인해 늘 감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⑥성령의 검

마지막 장비는 '성령의 검'입니다. 17절을 읽습니다. '검'은 여섯가지 종류의 장비들 가운데 유일하게 공격과 방어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검이라는 '마카이라'는 로마 군인들이 적과 맞붙어 싸울 때 사용하던 길이 60CM, 폭 5CM 정도의 비교적 짧고 예리한 칼을 가리킵니다. 로마 군인들은 왼손으로 방패를 들고, 오른손으로 이 칼을 들고 적과 싸웠습니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또 성령을 통해 예리한 검과 같은 효력을 발휘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성도들 안에서 역하사며 성도들에게 말씀의 검을 들려 주고 그것을 사용하게 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검의 이미지를 연관 지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오늘도 하나님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말씀으로 자기 백성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을 영적으로 각성케 하십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성령을 통해 자기 백성들에게 주셔서 그것을 사용해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의 메시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검은 방어용 무기로 사용하여 악한 영들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수 있는 동시에 공격용 무기로 사용하여 적극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여섯 가지 장비로 무장할 것을 명령한 다음, 18절에 이렇게 권고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은 영적 전투에 대한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메시지를 다하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이렇게라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에베소서를 대하면서 늘 떠나지 않았던 것은 교회론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무장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할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또한 전신갑주를 취하여 영적전투에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간절함을 담아 우리 찬양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있네"

 

 

 

 

*.클린트 아놀드는 본문이 영적 전투에 관한 교훈이 에베소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과거에 이방인 성도들은 아데미 여신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마술과 점성술 따위에 몰입하여 악한 영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도 여전히 과거에 섬기던 악한 영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본 단락은 저자가 독자들의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악한 영들의 강력한 영향들을 물리치기 위한 방안을 독자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대로, 본 서신 어디에도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아데미 여신이나 악한 영들을 두려워했다는 암시나 언급이 없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6:21-24 서신의 결말

개요

21-22절: 두기고의 파송

21절: 두기고가 할 일- 사도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 주는 것

22절: 두기고가 보내는 사도의 목적

1)사도의 형편을 알리기 위함

2)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

23-24절: 평화의 간구와 은혜의 축도

23절: 평화와 사랑의 간구

24절: 은혜의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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