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누가복음

눅 9장 1-6절, 제자도-잘 떠나기 위해 잘 비워야 합니다

by Message.K 2022. 3. 5.
반응형

*.신약성경 누가복음 9장1-6절의 본문을 가지고 <제자도: 잘 떠나기 위해 잘 비워야 합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들머리: 주님의 맘을 몰라주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

어떤 사람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원숭이를 키웠다. 이 원숭이를 훈련시킨 주인은 원숭이와 대화도 나누고 심부름도 시켰다. 이 원숭이는 주인의 자랑거리였다.

어느 더운 여름날 주인은 대청마루에 누워서 낮잠을 청했다. 날이 무더워 땀이 흐르자 주인은 원숭이에게 부채질을 하라고 명령했다. 원숭이가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파리가 주인 얼굴에 달라붙어 주인을 귀찮게 하고 있었다. 주인은 자다 말고 일어나 원숭이에게 파리도 같이 쫓으라고 시켰다. 원숭이는 부채질을 하면서 파리도 열심히 쫓았다. 잠시 후 계속해서 주인 얼굴로 달려드는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원숭이는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파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원숭이는 문득 마당에 있는 바윗돌을 보았다.

“옳거니!” 하면서 원숭이는 그 바위를 가지고 마루로 올라왔다. 마침 파리가 주인의 코로 날아와 달라붙었다. 이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원숭이는 파리를 향해 바위를 힘껏 던졌다...


과연 이 원숭이가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는가?

원숭이는 충성하려고 했지만 자기 방식대로 충성하려고 했다. 원숭이에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주인이 내린 명령의 진짜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1)

오늘날의 교회는 어떠한가? 우리들, 주님의 제자라고 불리는 우리들은 정말 주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원숭이처럼 자기방식대로 충성한다고 자부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이 오히려 주님을 해하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제자도의 기본 정신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여러 가지 기본적인 정신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비움과 떠남’이라는 테마로, ‘잘 떠나기 위해 잘 비워야 합니다’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한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진군명령을 내리신다.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시고 계신다. 주님은 그들을 불러 모으셨다.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배경과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불러 모으셔서 그들을 훈련시키신 후 파송하시고 계신다. 직업이 어부이든, 세리이든, 공부를 많이 했건, 적게 했건,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제자의 자격에는 특별한 직업이나 성격이나 삶의 배경이나 프로필이 요구되지 않는다. 주님이 불러주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제자가 된 것이다.

특별히 주님께서 이들을 파송하시는 목적,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1, 2절에 잘 나타나고 있다.

1절과 2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이들을 부르신 목적은 영어성경에 명확하게 더 잘 드러난다. NIV
1 When Jesus had called the Twelve together, he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to drive out all demons and to cure diseases,
2 and he sent them out to preach the kingdom of God and to heal the sick.


제자들에게 소명을 주신 예수님, 그들을 친히 불렀고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12명의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직업과 job을 버리고 청산하고 제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들에게 주님은 부르기만 하고 돌보아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이런 능력과 파워를 주신 이유는? 인생의 모든 악한 영을 몰아내고 질병을 고칠 수 있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파송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복음전파와 치유를 위함이었다.
제자들을 부른 것은 주님이시다. 주님의 가슴에는 악한 영들을 몰아내고 추방시키는 사역,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 하나님 나라를 설교하고 가르치는 전파의 사명, 연약한 자들을 치유하는 목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주님은 21세기의 우리들 또한 우리의 직장, 교회, 세상으로 파송하셨다. 우리는 21세기 버전의 제자들이다. 12제자들이다.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여러분을 파송하신 것을 확신하는가? 저는 신학교엘 들어갔고 후에 신대원을 들어갔고 졸업 후에 3년 있다가 목사가 되었다. 저는 풀타임사역자이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사역자로, 동역자로 부르셨다. 여러분들이 어떤 소명과 직업을 선택하든지 간에 중요한 목적,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은 ‘복음 전파와 치유와 회복’이다. 그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 모두 이 거대한 대의명분 하에 부르심을 받았음을 확신해야 한다.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으로 여러분을 파송하셨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 혹시 재산이나 기타 소유들이 당신을 얽어매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나의 상황은? 내가 제자들의 입장이라면? 하나님께선 과연 어디로 파송하실지 궁금해하면서 기대하고 있었다.
배가 너무 불러서 금식조차 생각도 못했던 나의 과거! 신대원 졸업후로 금식의 ‘금’자도 생각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일주일 안 되는 시간동안 점심 금식을 했었다. 죽으면 죽으리라! 물론 죽지는 않을 것이다. 금식을 하면서 든 생각이지만, 정말 우리는 음식에 많은 제한과 제약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그 식욕을 해소시키지 않으면 안달을 할 수 밖에 없는, 먹어야 사는 존재라는 사실! 인생에 있어 먹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요하는지 모른다. 먹는 것도 우리의 시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식욕에 의해 우리가 제약받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는 인생의 수없이 많은 것들로 인해 제약받고 제한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가지고 언제나 힘겹게 발버둥치고 있다. 그것이 어떠한 문제이든지 간에. 주님께서 지금의 상황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여기서 새롭게 일어서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약받는 것을 피하라고 말씀하신다.

3절: 여행을 위해 아무것도 챙기지 마라. 지팡이나 가방이나 또는 빵이나 돈이나 챙기지 마라. 옷도 두 벌을 준비하지 마라(쉬운 성경).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캐리어가방에 넣을 수 있는 것만 간소하게 챙겨서 떠나야 한다. 많은 것을 챙겨가면 여행지에서 편하기는 하겠지만 여행을 할 때는 짐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전도여행시에 너무 많은 것 아니 ‘아무것도 챙기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을 위해 챙기고 꾸리는 짐들이 오히려 우리의 여행을 더 방해하고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짐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 소유, 관계, 명예, 권력, 무병장수? 웰빙? 기타 등등...

그 어떤 것, 어떤 소유도 우리를 붙잡을 수 없고, 얽어맬 수 없다. 얽어 매여서도 아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 벌거벗은 채로 와서 벌거벗은 채로 가기 때문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3개 대륙을 정복하고 최초로 동.서양의 융합을 이루며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 그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3년 만에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33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에게는 아침마다 문안인사 드리는 늙은 하인이 있었다. 이 하인의 임무는 아침 해가 밝아 올 때 대왕이 거하는 침실 문 밖에서 “대왕도 죽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죽음의 존재이다. 영웅도 죽고 호걸도 죽는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자도 죽는다. 청년도 죽고 미인도 죽는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 중에 병을 얻었다.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왕실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름난 명의들이 드나들었지만 별 차도는 없었다. 재미있게도 불안해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알렉산더 대왕은 오히려 침착했다.
얼굴에는 병색이 짙었지만 타고난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주변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 했다.
신하들이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하라고 권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라. 사람이란 죽으면 잠을 자게 되는 법, 살아 눈 뜨고 있는 이 순간 어찌 잠잘 수 있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싶다."



대왕은 병이 점점 더 깊어져서 이제는 자리에 앉아 있을 힘조차 없게 되었다. 왕실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포기한 터라 이제 '그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일까'하는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면서도 알렉산더 대왕은 좀처럼 유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에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초조하게 그의 유언을 기다리던 신하들은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부와 권력을 한손에 쥐었던 왕의 유언치고는 너무나 싱거운 부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챈 알렉산더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손아귀에 쥐었던 알렉산더 조차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뿐이오."

(알렉산더가 그가 정복했던 수많은 영토에 대한 분배를 미리 생각하고 유언했더라면 그가 세운 마케도니아 왕국은 4개의 왕국으로 나뉘진 않았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그토록 많은 것을 누렸고 쟁취했고 이루었던 인물이었지만 정작 그는 떠날 때 오히려 홀가분하게 떠났던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명예도, 권력도, 물질도, 사람도, 자녀들도, 부모들도, 연인들도, 부부도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재산도, 재물도, 자동차, 집, 보험, 대박의 모든 것들도 죽을 때 같이 들고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얽어 매이고 있는 것 같다.


먼 이국땅으로 갈 때 우리에게 제한이 되는 것은?

외국에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제자로서 여행(전도여행)을 떠날 때 발목을 붙잡는 것들이 있어선 아니 된다. 발목이 잡히는 것들 때문에 사람은 큰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무수히 많은 발목에 잡혀서 아직도 불만과 불만족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행을 가려고 하니 여비도 좀 필요하고, 그쪽 여행지에서 샤워시설은 어떻게 되는지, 밥을 잘 나오는지, 반찬은 어떠한지, 여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은 편한지, 불편한지, 가이드는 깔끔하고 믿을만한지...기타 등등!



남미의 인디언 부족들 중에 항아리를 이용해서 원숭이를 잡는 부족이 있다. 원숭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목이 좁은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바나나를 넣어둔다. 그러면 호기심 많은 원숭이들이 다가와 항아리를 살핀다. 그러다가 그 안에 바나나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 손을 집어넣어 바나나를 잡는다.
그런데 항아리의 목이 좁아서 원숭이가 주먹을 쥔 상태에서는 손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원숭이는 바나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눈만 말똥거릴 뿐이다. 원숭이를 잡으러 인디언들이 다가오는데도 말이다.

‘과연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은 것일까, 아니면 바나나가 원숭이를 잡은 것일까?’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운 제자의 자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제자의 자격?...
-제자의 자격은 딱히 없다. 주님께서 불러주시면 되는 것이고, 여행을 할 때는 다른 준비나 조건이 필요치 않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했다. 너무 짐이 많으면 여행을 갈 수가 없다. 또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고 했다.

4절: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3-5절: 잔뜩 준비하지 마라. 간소하게 하여라. 너희 자신을 준비하여라. 고급 여관도 안된다. 적당한 곳을 찾아 떠날 때까지 그곳으로 만족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맞아들이지 않거든, 그 마을을 떠나거라. 소란 피울 것 없다. 무시해 버리고 너희의 길을 가면 된다: 메시지성경)


나그네인생, 제자의 인생! 너무나 클리어하다! 군더기가 없다! 올림픽에 최고의 스타, 지금은 피겨계를 은퇴한 피겨여왕,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경기를 치르고 나서는 자기가 이때까지 먹지 못했던 컵라면, 초밥 등을 맘껏 먹었다고 한다. 체조선수가 자기가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 몸매를 유지할 수가 없고 트리플 드롭, 트리플 악셀같은 기술을 구사할 수가 없다. 깃털처럼 가벼워야 한다. 단순하고 클리어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자(순례자)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떠날 수가 없고 너무 많은 것에 발목이 잡히면 자유롭게 비상할 수가 없다.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을 비울 때 떠남이 편하고 마음을 비울 때 발목 잡히는 것이 없다. 육신의 배도 마찬가지이다. 배가 부르고 무거우면 뛸 수가 없다. 운동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배를 비우면 배가 적당히 부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비움과 떠남은 비례관계에 있다. 제자의 자격은 바로 이러한 <비움과 떠남>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움과 떠남의 미학!!!

비움의 대가: 아브라함

창세기 22장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비움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주님의 제자로서의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비움과 떠남의 철학, 미학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잘 떠나기 위해선 잘 비워야 합니다!
제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여행을 위해 발목잡히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 것을 기억하라!



마태복음 28장: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우리와 함께 가는데, 우리는 세상의 것들, 세속적인 것들에 너무 연연해한 나머지 여행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있진 않는가!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복음전도자나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갈 때, 매일 우리의 일상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떠날 때, 잘 떠나기 위해 잘 비워야 할 줄 믿는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마감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잘 떠나기 위해서도 우리는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욕심과 부정적인 것들을 잘 비워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짐이 무거우면 잘 떠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세대를 살리고 세우는 교회의 비전을 우리가 부여 받았다. 영혼을 살리는 교회의 대업 앞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매일 매일 주님이 우리에게 콜업할 때 주님 앞에 ‘주님 내가 여기있습니다. 나를 사용하소서!’라고 반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란다.


1) 이용규, 더 내려놓음(서울: 규장, 2007), 171-172.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