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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다니엘

다니엘 1장 1-21절, 죽느냐? 사느냐?

by Message.K 2022.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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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여러분, 여러분의 집에는 태극기가 있는가? 저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 집집마다 태극기가 있는지 검사를 하였다. 근데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부모님에게 태극기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래서 태극기 검사를 한다고 그 태극기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 태극기 하나 사면 될텐데 저희 부모님은 태극기에 절하고 태극기를 집에 보관하는 것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시지 않아서 인지, 우상숭배와 연관시킨 종교적인 해석 탓인지 태극기를 절대 구입하시지 않았다. 나는 어린 맘에 태극기 하나 사면 될텐데 왜 아들 마음을 이렇게 속상하게 하는지 문득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저는 성격자체가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전형적인 A형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나 싶다. 부모님에게

 

 

"솔직히 내 마음이 너무 힘들다, 태극기 하나만 구입하면 안 되느냐? 태극기 검사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죽겠다!"

 

 

이런 이야기 한 마디만 했어도 분위기가 달라졌을텐데 이 놈의 아들은 입만 꾹 다물고 말을 안하니. 내가 생각해도 답답하다. 여러분 속에 있는 이야기는 담아 두지 마시고 고백하고 내뱉고 털어놓으시길 바란다.

 

 

  

  카톨릭에서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다. 신부와 신자 사이에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말은 들을 수 있는 칸막이로 구분된 장소에서 신자는 자기의 죄를 다 고백하고 참회한다. 그러면 신부는 '네, 그러셨군요. 마음이 참 많이 아프셨겠네요...어쩌구 저쩌구' 그러다가 '당신의 죄가 다 용서받았습니다!' 머 이런 문장으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이 고해성사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예수님께 고백하고 용서받기만 하면 되지 굳이 사람에게 일거수일투족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카톨릭에선 예수님이란 중보자 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신부님이 중보자역할을 또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신자들이 왜 신부에게 이런 고해성사를 하겠는가? 이것도 일종의 상담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상담을 정말 고민하고 힘들고 어렵고 해결하기 힘든 이야기를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 상담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별로 큰 해결책이나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않아도 상담받고 나면 치유되고 낫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왜 그러냐하면 말 못할 사정과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았기 때문에 마음의 짐이 가벼워진 탓이기 때문이다. 고해성사는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잘못되었으나 인간적으로는 상담이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천주교신자들이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어떤 고민을 혼자만 앓고 있으면 병난다. 그래서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도저히 안되니깐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이 있으면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그 말이 진리이다. 여러분의 슬픔을 나누라! 친구들이든, 부모님이든, 형제자매이든, 아니면 선생님이든, 목사님이든. 털어놓지 않으면 폭발한다. 그러기에 폭발하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화anger를 내려놓아야 한다.

 

  결국 저희 부모님은 태극기를 안 사고 작은 집에 있던 태극기를 빌려와서 우리 집 태극기라고 하고 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진짜 어릴 때 그 태극기 검사 받는 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근데, 그때는 전두환대통령시절이어서 그랬나 보다 싶다.

 

 

 

  8.15광복절은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이다. 여러분, 광복절1)이 무슨 날인줄 아는가?

  '광복'이란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서 잃었던 국권의 회복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도 일본의 36년간의 지배하에 주권을 잃어버린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게임이나 3D의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바로 현실이었다.

 

  특별히 일제 강점기에 흔히 있었던 일을 몇 가지를 소개하면, 첫 번째, 징용 즉 강제노역이었다. 우리는 노예처럼 일본을 위해 노동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봉급을 받기 위해, 일당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일본, 일본 천황을 위해 혹사당했던 것이다.

 

 

  둘째, 일본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한 신사참배가 있었다.

일본여행을 갔을 때 일본 신사가 마을마다 동네마다 있었다. 그런 신사를 우리나라에도 가져와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이다. 마치 그것이 국가의식인 것처럼 말이다. 신사참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였다. 이것 을 허용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기독교, 장로교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세 번째,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할 것을 강요한 창씨개명이다. 저희 어머니 성함의 끝자가  '자'로 끝나는 전부 일본어 '꼬'로 끝난다. 영자, 정자, 말자, 숙자, 머 그런 이름들은 전부 일제식 이름의 잔류이다. 게이꼬, 데이꼬, 사끼꼬, 유끼꼬,...그럼 말라꼬?도 일본식 이름? ㅋ

 

 

  네 번째, 일본군을 위로한답시고 만든 한국 여인들을 성적 착취했던 정신대! 자기 군대니깐 자기네들 여인들을 창녀로 만들지 왜 남의 나라 여성들을 그렇게 만들었냐는 말이다. 한일전 축구도 져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려니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역류하는 느낌이다.

  

  우리들은 이런 치욕의 역사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 와서 다시 역사이야기를 끄집어내서 한일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도 힘이 없으면 언젠가 또 다시 그런 비극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크리스천들은 수많은 핍박 속에서도 자신을 defileg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신앙의 정절을 지켜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한 핍박은 신사참배였다. 하지만 1938년 제27회 장로교 총회는 일제의 강압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가결하기까지 합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정도로 취급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50여명의 순교자들이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 중심에 주기철, 이기선, 한산동, 주남선, 손양원, 이계실 등이 있었다. 일제 경찰은 이들을 민족주의자로 분류하여 치안유지법, 보안법, 불경죄 등을 적용하여 탄압하였는데, 2천여명의 신앙인들이 신사참배에 저항하여 투옥되었고, 200여 교회가 강제로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만도 50여명이나 되었다.

 

 장로교는 이 때 하나였다. 하지만 신사참배문제로 말미암아 합동, 통합, 고신, 기타 등등 파로 분열되기에 이르게 된다.

 

 2000년 가을에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신학교의 뻬일스 교수는 한 기독교 신문과의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의 분파가 196개나 된다는 것에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국 교회의 분열에 비하면 네덜란드 교회의 분열을 아무것도 아니니깐요."

 

 

 

  1945년 해방 당시에 한국 장로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50여년 지난 지금 그 사이에 196개로 분열되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전 세계 교회들 가운데 한국 장로교회만큼 심각한 분열을 경험한 교회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 이러한 심각한 분열이 나타났습니까? 일찍이 크리소스톰은 "권세를 사랑하는 것만큼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한국 장로교회가 교회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열을 거듭한 것은 교회지도자들이 권세를 탐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지적한 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일제를 두려워하고 신사참배(우상숭배)의 죄 앞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재건과 고신교단은 이러한 시대의 굴종과 타협과 우상숭배의 죄에 대항하여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순교자의 피와 죽음과 희생을 바친 후손들의 교단이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다시금 나라 없이는 우리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넘쳤음 한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역사가 나오는데 바로 오늘의 주인공,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여러분만한 나이 10대에 이방 나라로 끌려갔다. 너무 똑똑해서 끌려간 것도 있겠다. 바벨론은 유대 나라에 쓸 만한 브레인들을 10대 소년을 데리고 가서 엘리트 교육을 시킨 것이다. 아마 그 때도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았나 보다. 여러분, 스티븐 스필버그가 유대인인 건 다 알죠? 다니엘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다. 오늘 특별히 같이 성경구절을 한 번 다시 보자!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But Daniel resolved not to defile himself with the royal food and wine, and he asked the chief official for permission not to defile himself this way.

 

 

 

 비록 이방인의 포로였지만 그래도 엘리트 교육을 받은 수재들이었다. 왕실에서 특별하게 관리하는 이 10대 소년들에게 어떤 음식이 제공되었는가? 왕실 음식과 포도주라고 나와 있다. royal ! 한참 먹을 나이에 음식을 잘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 왕실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그들이기 때문에 음식먹는 것도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그들의 포로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복종만이 있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명령 불복종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왕실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를 허용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래도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지? 우상숭배 노!!! 라고 하겠는가?

 

 

  만약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먹었다면?

  그는 아마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 왕궁에서 왕의 시중만 들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자신을 defile하지 않기를 결단했다.

 

 

 

 다니엘에겐 순교자의 정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니엘이 10대에, 여러분만한 나이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조국을 위한 마음을 이어진 것이다. 그는 조국을 위해 일평생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다. 그게 쉬운가? 다니엘은 평생 바벨론 관리로 살았다. 그는 예루살렘의 회복과 유대 나라의 광복절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나라의 부흥과 회복, 광복을 준비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여러분도 바로 이러한 인물이 되고 싶지 않은가?

 

 

 

하나님이 높이신 다니엘, 거칠 것이 없었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한다. 담임목사가 바뀌는 교회도 물갈이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 사람, 끝까지 물갈이 안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나라의 토박이나 토종도 아니었다. 이방인에 불과했다. 단지 어릴 때 이민 비슷하게 온 친구였다. 그 친구가 정권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지만 이 친구는 왕권이 세 번이 바뀌었지만 계속 중용되고 있으며 필요할 때, 위급할 때는 꼭 자신의 탁월한 주무기, 필살기를 보여줌으로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귀재의 역할을 감당한 친구이다. 변함없는 일관성, 경건의 훈련의 계속된 축적, 기도생활의 지속성이란 무게, 그리고 사람의 이목에 절대 휘둘리지 않는 과감성과 용기, 지조가 그의 계속적인 성공의 이유였다.

 

 

이 사람을 보면 한 사람이 또 떠오른다.

 

 

  21세에 정치계에 입문하여 74세까지 한 번도 낙선의 고배를 마신 적이 없는 대단한 정치가! 링컨은 낙선의 대가였지만 이 사람은 당선의 대가였다. 21세~74세, 무려 53년 동안 정치계에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었던 인물, 바로 윌리암 윌버포스였다. 존 파이퍼의 '인내'라는 저서를 읽으면서 '윌리암 윌버포스'의 이야기를 접한다. 평생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살았던 윌버포스의 인생과 다니엘의 인생은 굉장히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윌버포스가 아마다 다니엘을 롤모델을 삼고 정치를 하지 않았나 싶다. 둘 다 정치가였으니깐 말이다. 죽음을 3일 앞두고 자신이 그토록 싸웠던 노예관련 무역폐지 법률안의 통과로 인한 승리소식을 접했던 감동적인 윌리암 윌버포스의 생애, Lifestory는 이미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로 나온 바 있다.

 

 

다니엘 VS 윌리암 윌버포스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 기도한 다니엘, 자신의 꿈, 하나님을 향한 꿈과 비전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윌리엄 윌버포스, 일제의 신사참배 앞에서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순교자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광복과 회복이 있었던 것이다. 광복절을 맞이해 다시 한번 믿음의 선조들에 대해 감사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선조들의 뜻과 정신을 기념하며 나라사랑할 줄 아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뜻을 정할 줄 아는 중고등부 지체들이 되었음 좋겠다!


1)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한국이 독립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날과 독립국으로서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광복'이란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서 잃었던 국권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 날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독립기념관의 경축식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전국의 모든 가정에서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권장하고, 정부는 저녁에 외교사절 등을 초청하여 경축연회를 베푼다. 기념식에서는 정인보가 작사하고, 윤용하가 작곡한 〈광복절의 노래〉가 연주된다. 광복회원 및 그 가족에 대한 우대조치로 8월 14~16일까지 전국의 철도·시내버스 및 수도권 지하철을 무임승차하게 하고, 고궁 및 공원도 무료입장하도록 한다. [출처] 광복절 [光復節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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