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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창세기

창세기 12장 1-3절, 수험생들이여 멋지게 떠나라

by Message.K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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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는 대학입학시험인 수능시험을 압둔 수험생들을 위해 수능전 주일날 설교한 내용입니다. 수험생을 위한 설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 12:1-창 12:3]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Prologue...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기타연주 및 노래, 후 사연소개...떠남의 어려움을 담은 노래이다.

김광석은 6개월 방위였다. 그가 해병대를 지원한 것도 아니었고 담임목사님이 나온 특전사를 지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방위였다. 하지만 그가 대구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그의 특유의 감수성을 발휘하여 군대 가는 자의 그 애환을 곡으로 잘 표현하였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누가 방위였다고 생각할까? 방위는 되고 싶어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철저한 국방부의 뜻에 따라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방위(현재는 공익근무요원인가?)를 욕하지 마시길 바란다. 

 

 

  모든 사람들에게 떠남은 상대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지며 떠나는 것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긴 하지만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만약 부부가 먼길을 떠나는 남편을 앞에 두고 서로는 떠나는 상대를 향해 눈물을 지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 아니면 사랑하는 부모님 면전에서 떠나는 것 또한 나름대로 아픔이 있을 것이다. 가장 큰 헤어짐과 이별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것일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돌아오는 기쁨이 후에는 있을지라도 떠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고향과 사랑하고 익숙하고 친숙한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의 그라운드와 필드를 떠나는 은퇴선언을 번복하는 이유는 떠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선교사님들이 익숙한 고국을 떠나 물과 풍토와 문화와 사람과 언어가 낯설은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쯤은 여러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떠나도 잘 떠나는 것이 참 중요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 않았던가? 굳이 죽음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떠날 때는 잘 떠나야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러한 광고문구도 이전에 있었는데 이 말은 좀 다른 의미일 것이다. 휴가를 잘 보내라 머 이런 의미가 아니었던가?

 

 

  오늘은 이제 수험생들이 수능을 4일을 남겨둔 시점이다. 수험생들은 이제 떠나야 한다. 수능시험 현장으로 떠나야 한다. 오늘 창 12장의 초반부에 나오는 아브람에 관한 말씀을 같이 나누면서 수험생들 여러분들, 더 나아가 우리 교회 학생회 모든 지체들이 삶 가운데 멋지게 떠나는 모습을 닮기를 소망한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많은 선교학자들은 이 창 12:1-3의 본문기사, 아브람의 기사를 일컬어 선교의 시작, 시초라고 한다. 아브람이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아브람은 마치 현대의 선교사님들이 고국을 떠나는 아픔이 있었던 것처럼 그에게도 비슷한 애환이 있었을 것이다.

 

 

  아브람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브람에게 어떤 환경적인 문제나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유목생활을 했을 것이다. 목초지가 잘 형성되어 있으면, 가축들과 짐승들이 뜯어 먹을 수 있는 풀과 마실 수 있는 물이 풍부한 곳으로 떠나고 이동하고 이주했던 것이다. 아브람은 본문에서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된다. 자신의 익숙했던 환경과 문화와 친척들이 있었던 곳, 안전과 평화와 익숙함과 친숙함이 머물렀던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서울에서 대구로 이사 오거나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사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땅은 국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창세기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형성되어지기 전이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사울이라는 초대왕을 시작으로 왕정국가를 만들기 전이었다. 그 이전에 물론 이스라엘인 나라는 모세라는 위대한 리더, 지도자를 필두로 출애굽하면서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때도 어설픈 국가적인 그림이었다. 그렇다면 출애굽기에 앞서 나오는 창세기에서의 이스라엘의 국가의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보는 것은 <아브람-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 가운데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잉태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게 되어지는 것이다. 창세기는 바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란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경은 확실한 역사이다. 믿는가?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고 싶지 않는 사실들은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면서 마치 소설을 픽션이라고 하듯이 성경을 픽션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영감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지금부터 간직하시길 바란다. 앞으로 여러분에겐 수많은 도전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수많은 지적인, 과학적인, 문학적인 여러 가지 갈등들이 학창시절부터 대학시절, 직장생활하면서 계속 될 것이다. 그러기에 그 도전에서 승리하려면 지금 학창시절에 확실한 터를 다져놓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면 아브람은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당시에는 친인척 중심으로 생활했다. 제가 살던 고향 동네는 ‘B씨’중심의 마을이다. 여러분의 친가댁이나 외가댁이 시골인 친구들은 그 동네가 ‘씨족’중심의 마을이라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물론 요즈음은 많이 변했지만. 예전에는 그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몇 천년 전으로 거슬러가 볼 때 그 당시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브람의 가문은 본토 갈대아 우르를 중심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 가문은 그곳에서 유대관계를 맺고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브람이 그 본토를 떠난다는 것은 모든 risk, 모든 위험과 위험부담을 안고 떠나는 것이다. 요즈음은 국가와 국가간에 어떤 범죄나 문제나 갈등이 발발하면서 서로 서로 양국의 대표자들이 만나 회담을 한다. 마치 남북회담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제경찰(interpol)도 없었던 시대였다. 그냥 한 부족이 유목생활을 하다가 비명횡사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당시에 텔레비전이 있었는가 방송국이 있었나 인공위성이 있었나...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뭐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아브람 가족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별별 고생 다 하다가 어느 부족과의 싸움에서 처절하게 패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아주 리얼하게 감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겠지만 그게 가능한가? 아브람이 자신의 본토를 떠나는 것은 그만큼 큰 어려움과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떠났다. 왜 떠났는가?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NRSV]창 12:1

Now the LORD said to Abram, "Go from your country and your kindred and your father's house to the land that I will show you.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잘 떠났기 때문이었다. 갈대아 우르는 당시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횡행했다. 우리나라의 초창기의 종교를 떠올려보자. 성황당이나 무속신앙이나 기복신앙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의 우리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 관점에서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천재지변과 사고와 어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수호신 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우상으로, 우상숭배로 이어진 것이었다. 갈대아 우르는 고대사회의 관습과 문화에 철저하게 물들고 주도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이제 아브람에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신앙과 믿음의 문화와 풍토와 삶의 내용으로 그를 초대하고 계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바로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를 잘 떠난 믿음의 조상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길 원하셨던 것이다. 그곳은 훗날 가나안 땅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이스라엘 땅으로 이어지면서 종국적으로는 우리가 먼훗날 가아야 할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브람이 만약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방으로 깔려있는 위험스런 풍토와 분위기와 그 모든 것들...그러나 과감하게 떠났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수험생 여러분들이여! 과감하게 떠나길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고3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야 할 그 시험장, 부담과 긴장과 초조함이 서려있지만 좀 피하고 싶지만 그 시험대에 과감하게 오르길 바란다. 사람은 그러한 떠남을 통해 자신의 삶이 업그레이드되어지는 것이다.

 

 

엄마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10달 동안 있는 엄마의 태가 좋다고 계속 나오지 않고 거기에 머무른다면 엄마의 목숨도 애기의 목숨도 위험할 것이다. 아기가 밖으로 힘찬 울음과 함께 나올 때 그는 인간으로서의 출발을 하는 것이다. 또한 혼자서 엄마의 사랑을 받던 어린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갈 때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된다. 유치원이 좋지만 또 다시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업그레이드되고, 중학교 업그레이드, 고등학교 업그레이드...여러분들은 또 하나의 자신을 성장시키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않고 안주하며 평온한 삶을 추구했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믿음이 시작되고 업그레이드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멋지게 떠났다. 여러분들도 멋지게 떠나시기를 바란다. 아브람의 떠남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여러분들의 떠남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겨버리고 멋지게 떠나시길 바란다.

 

 

 

 우리가 왜 이렇게 잘 떠나야 하는가?

우리는 잘 떠남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안주하며 영원토록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나그네같은 인생임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생 10대, 20대의 파릇파릇한 젊은 청춘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누가 천국을 가고 싶어 하며 죽음을 생각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고 우리의 10대도, 20대도, 30대도 우리 곁을 떠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떠나면서 미래로 나아가고, 우리는 이 땅을 떠나면서 천국으로 나아간다. 흙에서와서 흙으로 떠나간다. 그러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으로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떠남의 미학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떠나면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업그레이드되다가 디그레이드되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저 태양처럼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최고의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의 완전함, perfection 그 자체인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복의 근원’(2절)으로 불러주신 것을 믿고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장으로 멋지게 떠나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학생들과 교사분들은 하나님과 함께 매일의 삶 가운데 죄의 자리에서 떠나시기를 바란다. 안주하고 머물고 주저앉고 싶은 어려움이 있다손치더라도 믿음의 조상 아브람처럼 떠나시기를 바란다. 좌절과 절망과 낙담과 불만과 실패의식은 사단의 전유물이지 그리스도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떠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을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실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후손들이기에 역시 ‘복의 근원’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다 ‘복의 근원’, ‘복의 뿌리, 기원’인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다 같이 합독하며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창 12:2-창 12:3]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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