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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다니엘

다니엘 6장 1-10절,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라

by Message.K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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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6: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VS 윌리암 월버포스

 

하나님이 높이신 다니엘, 거칠 것이 없었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한다. 담임목사가 바뀌는 교회도 물갈이는 필수적이다. 부교역자들도 다 물갈이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한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들어섰는데, 노무현, 김영삼 정권시절의 정치인을 다시 중용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정말 탁월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런데 한 사람, 끝까지 물갈이 안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나라의 토박이나 토종도 아니었다. 타국인이었고, 이방인, 이방인 포로에 불과했다. 단지 어릴 때 이민 비슷하게 온 친구였다. 포로로 끌려온 그 친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스포츠경기에서는 용병이 인기가 있다. 롯데의 가르시아, NC의 테임즈 같은 친구들은 인기가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나이와 성적이 비례하기 때문에 오래 롱런할 수가 없다. 반짝하고 만다. 정치는 나이가 들수록 연륜과 노하우와 지혜가 쌓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시대가 변했지만 이 친구는 왕권이 세 번이 바뀌었지만 계속 왕궁에서 정치활동을 하게 되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벨사살 왕,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시대까지 계속 중용되고 있으며 필요할 때, 위급할 때는 꼭 자신의 탁월한 주무기, 필살기를 보여주었다. 요즘 군대나 정치나 직장이나 오래 롱런하기가 힘들다. 대기업도 40대가 넘으면 밑에서 올라오는 친구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자신의 직장생활을 늘 불안해해야 한다. 정치는 더 심하다. 말 한 마디 잘 못하거나 선거에서 떨어지면 여지없이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 군대(이재원이야기)도 말뚝박으려고 들어갔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은퇴하고 나면 더 걱정인 것이 지금의 세상 형편이다. 그런데, 오늘 이 친구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귀재의 역할을 감당한 친구이다.


변함없는 일관성, 경건의 훈련의 계속된 축적, 기도생활의 지속성이란 무게, 그리고 사람의 이목에 절대 휘둘리지 않는 과감성과 용기, 지조가 그의 계속적인 성공의 이유였다.

다니엘의 삶은 다리오 왕의 시대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시대까지 형통했다(28절).




그 친구의 가장 중요한 습관을 오늘 본문에선 이야기해주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일찍이 솔로몬의 성전 건축 때부터 만들어진 관행이었다(왕상 8:35).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이스라엘인의 관례에서 얼마나 자주 기도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율법에 규정되지 않았다. 구약 성경과 사해 두루마리에는 성전에서 정규적으로 바치도록 규정된 아침 저녁의 희생 제의 외에는 다른 규범이 나오지 않는다. 6:7에 대한 해설에서 언급되었듯이 일반적인 페르시안인의 관례 규범은 하루에 3번 혹은 5번 기도할 것을 요구했다(성경배경주석: 구약), 1072.




오늘 이 친구, 다니엘은 꾸준한 습관의 사람이었다. 그 습관은 경건의 훈련의 결과였다. 어릴 적부터 단련해온 습관이었다. 다니엘은 정말 기도의 사람이었다. 습관을 쫓아 기도하셨던 게셋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다니엘 또한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인간이었다. 예수님은 새벽기도의 대가이셨다면, 다니엘은 하루 <3시(時)기도>의 대가였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바벨론의 법을, 메대와 바사(페르시아)의 법이 아닌 예루살렘의 법을,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있다. 다니엘은 지금 대영제국의 대사관의 대사이거나 세계의 힘의 중심인 미국의 대사관이 아니었다. 그는 포로신세였고, 그 포로가운데 어떻게 특출나게 박탈되어 인재로 중용된 케이스중의 케이스였다. 그런데, 그는 다른 나라, 이방나라의 법보다 하나님의 법을 더 따르고 있다. 이것은 그의 중심이 얼마나 바른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소년시절 바벨론으로 끌려 와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다니엘은 날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조국을 향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잊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닫지 않고 열어 둔 채로 말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편견에 놀아나지 않았다. 그는 뜻을 정한뿌리가 깊은 인물이었고, 뜻을 정하는 용기’, ‘선택을 잘 하는 지혜로 말미암아 그의 대로는 승승장구하였다. 그는 아마도 40년 정도를 바벨론 포로생활 가운데 보냈던 같다. 아마도 50-60대의 나이에 이른 다니엘은 소년시절의 그 습관을 잊어버리고 않고,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골방시간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이 변하듯이 사람도 변하게 마련이고 사랑도 식게 된다. 사람의 마음도 무뎌지고 게을러지고 편한 대로 살고 싶어 하고, 쉬운 쪽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다분하다. 아무리 청렴결백한 인물이라도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정치계에 그만큼 있었으면, 사람들의 말과 정치력에 휘둘리기도 하고, 그 권력의 힘이 얼마나 큰지도 잘 알 것이다. 백의 파워도 충분히 아는 다니엘이었다. 이방의 땅에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충분히 이룬 다니엘은 모든 것이 자신 손으로 주무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기도에 힘쓰는 자였다. 한결 같은 사람그가 바로 다니엘이었다.




현대는 <한결같음의 성질>이 죽어가는, 사라져가는 시대이다.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는 있지만 거기에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고, 주관적인 입김과 냄새만이 가득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음이 부족하다. 정치인들을 보라. 얼마나 말을 잘 바꾸는가? 실컷 공약을 내걸었다가 나중에는 언제 공약과 약속을 했냐는 식으로 말바꾸기에 명수인 카멜레온들이다. 더 나아가 교회 지도자들, 성직자들을 보라. 그들의 삶이 한결같은가? 만약 한결같지 않다면 다니엘에게서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한결 같은 통일성을 가지고 다니엘은 기도하였고 중보하였다. 조국과 고국의 백성들과 나라를 위하여!!! 한결같이…



여러분에게 한결같은 마음이 있기를 바란다.

 

(단 6: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하나님의 법을 더 우선시했다! 왕의 도장royal seal이 찍혔다. 변개할 수 없다. 페르시아의 법으로 인쳐졌다. 30일 동안 아무도 종교적인 행사나 의식이나 기도를 행할 수 없다. 이것은 분명한 음모였고 다니엘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함정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을 한결같았다. 다니엘은 순교적 각오로 기도했다. 어릴적 우상제물을 먹으라는 바벨론 정부로부터의 제안을 ‘뜻을 정하여’물리치며 세 친구와 기도모임을 가지면서 승리했던 다니엘이었다. 그는 현실에 순응하며 충분히 기도를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라.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면 계속 타협하게 된다. 뜻을 정하고, 결단하지 않으면, 마지노선을 정하지 않으면, 결국 경계가 허물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상황과 감정과 기분에 취하다 보면 나중에는 정신과 영혼은 만신창이가 되고 순결은 온데 간데 없고, 믿음은 거덜 나 있게 된다.

 

이성교제할 때의 마지노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 요즘 세상은 사랑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사랑이 뭐길래? 감정에 취해서 허용하다보면 나중에는 객관적인 평가와 시각이 뒤틀린다. 저의 외삼촌의 우스운 에피소드를 어머니께 알려주셨다. 선보러 나갔다가 외숙모와 나중에 결혼했는데, 나중에 후회하더란다. 왜? 외숙모의 레스토랑 아래에서의 모습은 순전한 조명발이었다는 것!^^


처음엔 손만 잡아도 떨린다. 포옹을 하고 싶다. 포옹만 하면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겠다. 포옹을 하니 가슴을 만지고 싶다. 더 깊은 스킨십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은밀한 곳까지 나아가게 된다. 요즘 시대의 문제는 육체의 은밀한 부분, 깊은 부분을 너무 빨리 터치한다는 점이다. 서로의 영혼이 교감이나 함께하지 못한 상태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면 탈이 나는 것이다. 성적인 관계는 하나님께서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누리게끔 만들어 두었다. 그 울타리를 넘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남자는 오르지 못한 산을 오르려고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모든 것을 주고 나면 그때부터 더 집착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의 이 반대되는 성질! 우리의 목적이 ‘감정의 신’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믿음의 마지노선을 정해둘 필요가 있다.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우상제물을 한 번 두 번 먹을 수 있다. 바울처럼 당시에는 진보적인 가치관과 신앙체계로 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다니엘은 그렇게 결심을 한 것이다. 그것이 다니엘의 위대한 점이다. 그런 다니엘의 첫 습관이 능력이 되었고, 그것이 지속될 때 더 큰 영향력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에게 무슨 탁월함이 있었는가?




다니엘에게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것은? 마음의 민첩함이다(3).

행동의 민첩함이 아니라 마음의 민첩함이다. 그래서 왕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던 것 같다. 다리오 통치시절 3명의 총리대신을 두었는데, 아마 다니엘이 최고령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가운데 the best였을 것이다(2절). 이런 마음의 민첩함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이 평범하고 무사안일하면서 부잣집에서 부모님의 후광을 입고 공부하고 대학, 대학원 밟고 부모님의 뒷바리지로 쉽게쉽게 그렇게 해서 정치인이 되었다면 가능하지 않는 자질이다. 다니엘은 10대에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이 이제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되었던 시절에 포로로 끌려왔던 것이다. 청소년 시절에 만났던 하나님, 그를 테스트하시고 연단하셨던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노인이 된 영적 절개와 지조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절: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다니엘은 총통급 총리가 된 것이다. 자신의 조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 이방나라의 관리가 되었던 그였다. 문화도, 철학도, 세계관도, 가치관도, 살아온 삶의 배경도 다른 이질적인 문화와 상황 가운데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했고 뛰어나다고 했다.

 

여러분은 얼마나 민첩한가? 마음이 민첩하기를 소원한다.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순간순간 긴장을 풀고 방심하게 되면 실수가 많고 약점이 드러난다. 구태의연한 생각과 나르시즘에 빠지면 약이 없다. 항상 새로워질 수 있는, 항상 경쾌하고, refresh할 수 있는 것은 말씀과 기도의 약발이다. 여러분? 여러분은 젊다. 가능성과 패기와 용기와 에너지가 있다. 뭐든지 하면 가능할 시기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이다. 20대가 영원할 순 없다.


짐 엘리엇이 위대한 점은 그가 20대에 자신을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기 아빠, 이제 신혼부부였는데, 갓 태어난 딸을 뒤로하고, 선교사로 막 도착한 그 땅에서 그는 아우카부족의 전사가 던지는 창에 대항해 자신의 총집에 있는 권총을 뽑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젊음보다 더 중요한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맡긴 것이다.

마음이 민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소원한다.

 

두 번째 다니엘의 기도습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4절에서는 충성된 정직함이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은 약 50년이 넘게 정치계에 있었는데, 문제가 없었고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그것은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지만, 젊어서 고생을 잘 했기 때문이다. 뇌물과 비자금으로 충분히 얼룩질 수 있는 관직이었지만, 그는 순교자적인 자세로 그 자리를 감당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 수준에서라도 유지되는 것은 어딘가에서 숨어 일하는 순교자적 공무원들 덕분일 것이다. 세일즈 영업을 하는 사무원이나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들에게도 권력 남용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여러분들도 직장생활이나 알바를 해보면 알겠지만, 사람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Ex)어릴 적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쳤던 도벽습관- 결국 마음이 문제였다. 수련회때 내가 지은 죄를 종이에다 적어 모닥불에 태우면서 회개했던 기억이 있다.

 

다니엘은 살아있는 순교자였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할부금 넣듯이 미분하여 살아내는 일상적 순교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공무원들은 도덕과 윤리에 걸맞는 청렴성을 유지하고, 믿음을 지켜낼 때 성서한국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은 정말 그렇게 살았는데, 오히려 세상이 그런 그의 정직함과 충성스러운 정직함을 싫어하고 질투하고 시기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세상이 우리를 환대해주고 좋아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다니엘의 탁월한 실력과 정직한 직장윤리가 오히려 ‘다니엘 박해법’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5-7절에서 다니엘 박해법이 발효된다. 그것은 30일간의 기도금지법이었다.

그 법령을 지키지 않으면 사자굴에 쳐넣기로 약속을 했고 법령을 내렸다. 왕의 도장이 찍혔다. 이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단 6: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알고도 기도했다는 것이다. 윗방은 아마도 자신의 기도처소였을 것이다. 여러분도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밀한 처소secret place, 골방이 필요하다. 거기서 그는 어떻게 기도했는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다! 습관대로 기도했다.

그리고 하루 세 번씩(3때, 3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또 어떻게 기도했는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한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간절함의 표현이다. 무릎을 너무 꿇으면 관절이 나간다고 한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 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감사였다. 불평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니엘박해법을 만들어져서 완전 ‘다니엘 죽이기’작전이 벌이진 것이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친구였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니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그들의 관계를 말해주는 단어가 보인다. 감사하였더라 앞에 ‘그의 하나님께’라고 나온다.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단 말이다.




사랑하는 대학부 여러분,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페르시아 왕의 칙령이 남발되고 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현실의 법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주일날 근무를 하고 알바를 계속 해야 한다. 취업할 때 주일당직근무는 어쩔 수 없다. 회식자리에선 술마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술을 마시지 못하면 왕따를 당한다. 적당한 비자금과 적당한 뇌물은 직장생활에 도움이 된다. 예배는 대예배만 드리면 된다. 신입생환영회나 엠티에 가면 선배들이 말이 페르시아의 왕의 칙령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간이 콩알만 해진다. 군대 가면 술자리에서 술 안 마신다고 두들겨 맞는다. 예수 믿는 것이 왜 이렇게 고난이고, 힘든 길인가? 기억하라. 페르시아 제국이 당대 세계 최고의 강국이었지만, 지금도 강국인가? 이나라도, 저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와 능력 앞에선 무력할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는 무궁하며 영원하다.

 

26-27절: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다니엘에겐 사자굴의 위협과 음모도 자신의 하나님의 권세를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이다. 풀무불에서도 세 친구를 건져내신 하나님! 사자굴의 위기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구원해주셨던 것이다. 다니엘의 상록수 신앙! 일년 내내, 일생 내내 푸르른 비결은 바로 습관적인 기도생활때문이었다. 십대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순교적인 신앙이다. 기독교 자체가 바로 순교자들의 피를 먹고 자란 나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 전에 우리는 매일 매일 순교하는 일상이 필요하다. 다니엘이 자신이 죽는 훈련을 하루 3시 기도를 통해 행했던 것이다. 매일매일, 매월매월 할부금을 납부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순교의 일상을 드리는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순교란 불멸의 가치를 위해 필멸의 목숨을 상대화하고 희생시키는 행위이다.

돈이냐? 우정이냐?

신앙이냐? 사랑이냐?

돈이냐? 믿음이냐? 예배이냐?

우리는 이러한 무수한 문제들의 선택 앞에서 일종의 순교를 선택하며 영원한 희락을 위해 잠깐의 쾌락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일상의 순교이다. 순교에서 죽는 것은 썩어 없어질 욕망이며 옛 자아이지 영원한 생명이나 불멸의 가치는 죽지 않는다. 그래서 기독교 청년들은 순교를 두려워하거나 순교에 직면해서는 낙담하지 않아야 한다.




주후 590년 교황 그레고리1세가 된 힐데브란트 수도사가 말한 것처럼, 제자도를 실천하는 것이 곧 순교이다. 그는 로마제국의 창검이 그리스도인들을 더 이상 순교자로 만들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의 소소한 현장에서 비영웅적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단번에 자신을 드려 순교하셨지만, 우리는 비영웅적 순교자는 예수님의 그 격렬한 영단번의 죽음을 일생동안 미분하듯 죽이며 살아가야 한다. 할부금을 넣듯이 서서히 경험을 축적하며 원금을 갚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연습을 통해 죽는 것이다. 오래 살면서 매일 조금씩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 그리스도인들, 청년들에게 기대되는 순교이다.

20-30대에 기도를 체질화한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란 말이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승리자이다.

우리가 이제껏 기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너무 바빠서, 너무 게을러서, 너무 일이 많아서

-너무 젊어서, 너무 어려서, 기도하는 법을 몰라서

-기도할 장소가 없어서, 기도의 효능을 믿지 못해서

-기도를 가르쳐줄 만한 멘토나 도제가 없어서

기도는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훈련받으면서 느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법에 휘둘리게 된다. 세상 페르시아의 칙령에 휘둘려 늘 한숨을 쉬며 살아가게 된다. 다니엘이 저질렀던 거룩한 불순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했던,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던 그 다니엘의 기도가 우리에게 습관으로 남겨지길 원한다. 성경에서 등장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치고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동할때마다 단을 쌓는 기동성 넘치는 기도의 용사, 12:8; 13:18),

-이삭(고요한 기도, 24:63; 26:25)

-야곱(집요한 기도, 32:11; 35:1-4)

-모세(중보기도, 33:12-23)

-여호수아(새벽기도, 33:11; 3:1)

-한나(절망을 이긴 기도, 삼상 1:11-16)

-야베스(영토 확장과 번영을 구한 기도, 대상 4:9-10)

-엘리야(불로 응답받은 기도, 왕상 18:30-38)

-억울한 사연으로 마음이 찢긴 누가복음 18장의 과부(백절불굴의 기도),

-마가 다락방 120문도들의 기도(합심기도, 행전 1;6-21; 2:1-8)

등은 모두 기도의 용사들이었다. 이들은 간헐적이고 충동적인 기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습관화된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이 모든 습관화된 기도의 모범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루종일 얼마나 피곤하시겠는가! 대심방이 계속되고, 설교와 이적과 기적치유집회와 상담과 수많은 식사모임과 만남. 하지만 그중에서도 주님은 숨쉬는 듯이 예수님은 가장 완벽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막 1:35; 눅 22:39).

예수님과 성경의 다른 기도의 용사들이 드린 습관화된 기도는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놓고 드리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정해진 기도시간에 집중적인 응답의 폭포수를 퍼부어주신다. 시온의 들판을 윤택케하는 이슬 같은 은혜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내려주신다(시 133:3). 기도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인생이 장애물 앞에서 엎드린다. 이것은 피조물의 가장 겸손한 모습이면서 가장 강한 모습이다. 다니엘은 아예 십대부터 이런 기도의 세계에 입문했다(1:8-9; 2:17-18). 청소년시기에 기도의 세계에 입문해서 응답받은 경험이 있다면 다니엘은 일생동안 기도생활로 그 곤고한 이방 궁궐의 인질 같은 세월을 견뎌냈을 것이다.

 

이 사람을 보면 한 사람이 또 떠오른다.

 

21세에 정치계에 입문하여 74세까지 한 번도 낙선의 고배를 마신 적이 없는 대단한 정치가! 링컨은 낙선의 대가였지만 이 사람은 당선의 대가였다.

21세~74세, 무려 53년 동안 정치계에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었던 인물, 바로 윌리암 윌버포스였다. 존 파이퍼의 '인내'라는 저서를 읽으면서 '윌리암 윌버포스'의 이야기를 접한다. 평생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살았던 윌버포스의 인생과 다니엘의 인생은 굉장히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윌버포스가 아마도 다니엘을 롤모델을 삼고 정치를 하지 않았나 싶다. 둘 다 정치가였으니깐 말이다. 죽음을 3일 앞두고 자신이 그토록 싸웠던 노예관련 무역폐지 법률안의 통과로 인한 승리소식을 접했던 감동적인 윌리암 윌버포스의 생애, Lifestory는 이미 영화로 나온 바 있다.

Image by  https://www.adamsmith.org/blog/wilberforce-finally-ended-slavery


다니엘 VS 윌리암 윌버포스

 

 

존 파이퍼의 저작 '인내'와 윌리암 윌버포스의 생애를 영화화한 'Amazing Grace'도 볼만하겠다.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윌리엄 윌버포스

 

1780년, 윌버포스는 21세의 나이로 킹스턴 어폰 헐의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당시의 관행대로 매표 행위가 개입된 선거였으며, 아직 뚜렷한 정치의식이 없던 윌버포스는 당선된 후에도 흥청대는 생활을 했다. 그의 친구 피트는 그보다 한 해 늦게 하원의원이 되더니 이듬해에는 재무장관, 다시 한 해 뒤에는 수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든든한 ‘배경’이 일찌감치 생긴데다 윌버포스 자신도 천부적인 웅변 실력으로 정가에서 호평을 받고 있었기에,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인생도 이제까지처럼 탄탄대로일 듯 싶었다.

 

그러나 1784년, 그는 자신의 옛 교사이자 친한 선배였던 아이작 밀너와 유럽 대륙을 여행했으며 이 때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회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밀너와 종교 토론을 하다가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사촌누이가 갖고 있던 필립 도드리지(Philip Doddridge)의 [영혼에 있어서 종교의 성장과 진보]를 읽고는 자신의 방탕했던 생활을 깊이 뉘우치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어정쩡한 기독교도, 어정쩡한 정치인!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영국으로 돌아온 윌버포스는 흥청대는 삶의 본거지였던 상류층 전용 클럽에서 탈퇴하고, 술과 도박과 극장을 끊었다. 그리고 매일 일찍 일어나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매일 일기를 쓰는 생활 습관을 들였다. 어려서 큰아버지 집에서 세례받은 복음주의 신앙이 그를 사로잡아가고 있었다. 당시 복음주의자라면 대체로 윌버포스의 할아버지처럼 못마땅하게 보는 분위기였기에, 그것은 자신의 정치 경력에 해가 될 수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아예 정치를 그만두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설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이면서 수상이던 피트는 만류했다.

“기독교의 가르침을 꼭 성직자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네의 천분(天分- 타고난 재질이나 직분)을 살리면서도 가능할 걸세.”

복음주의 성직자였던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 역시 윌버포스가 정계에 남을 것을 권했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복음을 실천하는 것은 복음주의의 핵심 강령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영국 사상 가장 개혁적인 정치인의 하나였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거듭난 삶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18세기의 방만했던 영국의 사회 분위기가 추슬러지고, 상류계급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자리잡는 한편 하층계급에서는 과도한 음주나 도박에 따른 가정파괴나 범죄의 발생률이 줄었으며 성서 읽기 운동, 주일학교 보급 운동 등을 통해 문맹률이 낮아지는 성과를 보였다. 그리하여 19세기로 넘어갈 즈음에는 영국은 보다 현대적이고 계층 분화가 적은 사회, 법치주의와 공중도덕이 잘 지켜지는 사회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흐름이 오직 클래펌 파와 윌버포스의 공헌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들이 그런 흐름의 주도자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11전 12기, 노예무역 폐지의 험난한 길

 

윌버포스는 정치인인 클랙슨, 그랜빌 샤프, 작가인 모어, 성직자 존 벤, 은행가 헨리 손턴 등 나중에는 ‘클래펌 파(Clapham Sect)’로 불리는 동지들(1792년에 손턴의 제의로 클래펌 시에 본거지를 마련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과 함께 노예제 폐지 전략을 짰다. 그들은 노예제 자체의 완전 폐지가 최종 목표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처음부터 그것을 추진하기는 어렵고, 먼저 노예무역부터 폐지하는 운동을 벌이자고 결정했다. 윌버포스는 피트에게 노예무역의 실상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 결과 정부 차원에서 인정된 온갖 참상을 근거로 1789년 5월 12일, 처음으로 노예무역 폐지를 하원에서 역설했다. 윌버포스는 단지 의원들의 양심에 호소할 뿐 아니라,

“무역을 폐지하여 추가 공급이 중단되면 노예주들이 노예를 더 아끼고 보살필 것이며, 그러면 노예들도 열심히 일하려 함으로써 생산량이 더 늘어날 것이다”

는 식으로 실용적인 접근도 하며 열심히 동료 의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역시 한 차례의 나팔 소리로 성벽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클래펌 파는 더욱 증거를 모으고 법안을 다듬어서 1791년에 다시 폐지법안을 냈으나 역시 부결되었고, 1792년에는 한걸음 물러나서 ‘즉각 폐지 대신 점진적 폐지를 지향’한다고 내세운 덕에 하원에서 통과를 이루었으나 이듬해에 프랑스와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이후 1805년까지 노예무역 폐지법안은 무려 11번이나 좌절을 겪었다. 윌버포스와 그 동지들에 대한 비난과 위협도 그치지 않았다. 윌버포스는 몇 차례인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그의 부인이 의회에서 모욕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본래 튼튼한 몸이 아니었던 그의 건강도 오랜 투쟁 끝에 점점 나빠져서 척추가 휘고 만성 위장병에 폐에 지속적으로 물이 차는 등 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편을 복용했는데, 그것이 말년에는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 많던 그의 재산도 어느덧 가물어졌다. 그는 “관리만 잘 한다면 수입의 사분의 일은 좋은 일에 쓸 수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사분의 일이 아니라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운동 자금으로 내놓는 경우가 거듭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굴하지 않았으며, 거듭되는 법안 통과 실패로 실의에 빠진 동료들을 격려하며 끈질기게 폐지 운동을 이어나갔다. ‘흑인들은 열등한 생물이며, 인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살아 있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1792년에는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 ‘프리타운’을 건설, 그곳에 이주해 있던 흑인 해방노예들이 스스로 운영해 나가는 도시를 마련하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폐지 운동을 벌이다 보니 처음에는 무관심하던 여론도 차차 그들의 대의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마침내 1806년 선거에서는 노예무역 폐지가 주된 쟁점이 되고, 여기서 윌버포스를 비롯한 폐지파가 압승함으로써 민심의 소재가 확인되었다. 그리하여 1807년 2월 23일, 마침내 노예무역 폐지법안은 통과된다.




실로 오랜 투쟁 끝의 결실이었으나 윌버포스는 아직도 만족하지 않았다. 애초에 최종 목표로 잡았던 노예제 자체의 완전 폐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823년에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모임이 결성되었고, 윌버포스는 노예제를 범죄로 규정하며 노예해방을 역설하는 팜플렛을 출간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고, 할 수 없이 1825년에 의원직을 사퇴하고는 뒤에서 동지들을 돕는 역할에 힘썼다.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노예무역을 폐지하도록 국제적 운동을 벌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마침내 1833년 7월 26일, 영국의 모든 노예를 1년 내에 해방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윌버포스는 병상에 누워 그 소식을 들었으며, 기쁨 속에서 사흘 뒤에 눈을 감았다.




다니엘과 같은, 월버포스와 같은 한결같은 사람!

기도의 사람, 마음의 민첩함, 충성스런 정직성! 이런 마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가 기도의 습관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찬양

 

두손들고 찬양합니다 E

아버지여 구하오니 F

주 은혜임을. F

주께 가까이.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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