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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7:1-7, 66-73,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by Message.K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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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느헤미야 7장을 가지고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봅니다. 성벽재건을 52일만에 마친 느헤미야이지만 아직도 남겨진 숙제와 과업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메시지를 전해보고자 합니다.

 

 

 

 

Prologue....

학창시절 숙제 다 했다고 이제 막 놀려고 하는데 아직 숙제 또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 죽을 맛! 맘 상함!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끝나지 않는 숙제나 잔업이 남았을 때, 그 남겨진 일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자유가 박탈당하거나 발목이 잡힐 때 여러분의 기분은 어떠했는가? 부아가 치밀어 오르진 않았는가?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의 심정이 그러했다. 성벽이 완성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지만 자기가 꿈꾸던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느헤미야가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모든 것이 완전히 갖추기까지는 시간도 에너지도 많은 부분에서 돌아보는 것이 필요했다.

 

 

 

 

3가지 포인트로 한 번 나눠보자.

첫째, 아직도 남아있는 방해(자)!

   여러 가지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 재건공사는 완공되었다. 그러나 방해세력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15절에 성벽 역사 52일 만에 완공되었다. 그러자, 16절에 주위의 원수들, 대적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당연히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고 나온다. 우리의 원수들, 방해자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기가 꺾였다. 왜냐하면 믿음없는 그들조차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이뤄진 것을 보고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16절). 하지만 일시적인 이들의 행태는 또 다시 예전의 모습을 돌아간다. 도비야는 유대 귀족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었다. 백도 많았다. 권력자의 사위였다. 예루살렘에는 도비야 당이 있는 것처럼 도비야는 파워 있는 실세였다. 도비야는 그러한 자신의 위치와 배경을 통해 느헤미야를 대적했다(2:10,19). 그는 성벽재건사업을 방해했고, 느헤미야의 개혁을 반대하며 자기의 이익만을 챙겼다. 그는 아침꾼이었고(4:3), 그가 후에 예루살렘 성전 숙소를 사용했던 이유도 순전히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cf, 13:4-9). 느헤미야를 반대하던 세력들은 일시적으로 자신들이 오히려 두려움에 싸였지만 이내 곧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고자’(19절) 방해꾼으로 등장해 안달을 내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훼방하고 반대하는 사단의 세력들은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이런 행각을 계속 벌일 것이다. 승리가 주님께 보장되어 있음을, 십자가 너머의 부활의 승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사단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끝까지 우리를 믿음의 반열에서 벗어나게끔 타락시키거나 실패하게 만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나락의 늪으로 떨어져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이다. 마귀 사탄이 얼마나 지혜로운 놈인데 인생과 인류의 궁극적인 승리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미련한 발버둥! 어리석인 몸짓!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마 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압도하지 못할 것이다!)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power it.

 

 

 

  주님께서 세우신 공동체가 때론 음부의 권세로부터 공격과 침략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위기 속에서 좌절하거나 낙담하거나 시험에 빠져 헤매일 수도 있다.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은 약속하셨다.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 교회를, 이 성도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못 박으셨다. 이것은 최면술사가 한 말이 아니다. 멋진 웅변가가 말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세상을 향한, 인류를 향한 선포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신앙공동체, 이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는 결코 세상이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라는 것이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These things I have spoken to you,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e world you have tribulation, but take courage; I have overcome the world."

 

 

 

 

20세기 최고의 전도자, 빌리 그래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18살 때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로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약혼반지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석달 후 빌리 그래함은 차였다.

 

 

“나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 났구나!”

 

 

  그 여자가 빌리 그래함과 결혼할 수 없는 이유 한 가지는? 그가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빌리 그래함은 이 말을 듣고 큰 인물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며 쉬지 않고 공부에 열중했다. 큰 인물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소릴 들은 빌리 그래함은 오히려 큰 인물이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가 명성을 얻은 후 한 인터뷰에서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설교를 줄이고 독서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습니다.”1)

  

 

이런 이야기를 하는 빌리 그래함을 보면 정말 빌리 그래함은 미래가 보이는 인물로 변화된 것이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와 산재해 있는 어려움과 난제들이 있는가? 기억하라!

 

 

어떤 문제든 그 안에는 나를 위한 선물이 마련되어 있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우리에게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믿으라!

 

 

 

 

둘째,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랑과 관심

 방해세력은 여전히 남아있기에 느헤미야는 후속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A/S까지 확실하게 감당한다. 이것은 개인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일꾼을 세운다.

7:2을 읽어보자.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예루살렘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두 사람의 책임자를 세운다. 하나니와 하나냐였다. 그들이 감당하는 일은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고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는 임무를 맡긴다. 자기 자릴 지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4절이 이유이기 때문. 특별히 느헤미야가 사람을 세우는데 가장 큰 기준으로 본 것은 무엇인가?

 

1. 충성이고,

2. 경외

 

라고 말한다.

 

NIV: because he was a man of integrity and feared God more than most men do.

KJV: for he was a faithful man, and feared God above many.

 

 

우리가 일꾼을 세울 때도 이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직분자들을 세워갈 기준은 바로 느헤미야의 기준과도 동일하다. 여러분이 올해 직분자로 세워져서 이만큼 달려왔다고 치자. 반쯤 달려왔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여러분을 돌아볼 때, ‘충성과 경외’라는 말이 잘 어우리는 삶의 내용이었나? 아니면 둘 중에 하나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삶들이었나?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일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삶들이 있었나? 충성은 보거나 안 보거나 어쨌든 진실한 것을 말한다. 진실하지 않은데 충성스러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교회에 이런 충성과 경외의 최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성도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예루살렘 성을 위해 일꾼을 세운다는 것은 대적들의 계속되는 음모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물인 그 성과 자기 동족을 지키기 위한 느헤미야의 사랑의 표시이다. 그는 성을 재건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아직도 남겨진 과업이 있음에! 그는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세움으로 계속적인 케어와 책임을 완수하고 있다. 성만 짓고, 하나의 거대한 성과물만을 챙기고 자기 볼일 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주의 일의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공동체를 위해 계속적으로 수고하기를 꺼리지 않는 모습이다. 원대한 목표와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그런데 정말 큼지막한 사업이나 행사를 잘 치뤄 놓고선 그 후의 모든 사안들에 대해선 나몰라라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도 종종 있다. 처음에는 화려하게 씩씩하게 출발했다가 나중에는 꼬리를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용두사미! 그러나 아직도 남겨진 과업이 있음을, 아직도 우리가 돌보아야 할 영혼들과 학생들과 제자들과 목장원들이 있음을 기억하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라! 그러기에 여러분들도 다른 형제, 자매들을 포기치 말라!

 

 

 

  제2차 세계대전 중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 수용소인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 독일 나치는 100만 명의 유대인을 처형했다. 나치는 매일 유대인을 일렬로 세워놓고 아무나 지목하여 끌어다가 사형에 처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겠는가? 나치에게는 장난 같은 일이었으나 유대인에게는 매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었으리라. 그런데 이곳에서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제 노역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리 조각을 하나 주워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유리 조각을 바닥에 문질러 날카롭게 갈았다. 날 선 유리 조각으로 덥수룩하게 자라는 수염을 매일 깎았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에 얼굴도 자주 씻지 않았으나 그는 언제나 말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이토록 생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를 독일 나치는 차마 죽일 수 없었으리라. 그는 언젠가는 밝은 태양이 머리 위에 떠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추위에 떨었던 사람일수록 햇볕의 따스함을 고마워한다’-월트 휫트먼(Walt Whitman)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승리한다. 하나님의 사람들, 리더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운동 경기와 비슷하다. 지다가도 이기는 것이 운동 경기이다. 운동 경기의 극적인 감동은 역전승의 기쁨이다. 지고 있다고 포기하면 정말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뒤집어질 수도 있다. 야구만큼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게 또 있을까 싶어, 야구이야기를 잠깐 해보자.2)

 

 

 

 

박찬호가 부상당하다가 메이저리그 복귀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날 박찬호는 7회를 잘 던지고 8회에는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고 마운드를 내려온다. 박찬호를 믿고 맡겼는데 박찬호가 이 타이밍에서 사고를 쳐버렸다!

  보스턴의 4번 타자 케빈 유킬리스가 6대 7에서 2점 홈런을 날렸다. 스코어는 8대 7로 둔갑! 그 다음 타자, 빅터 마르티네즈가 홈런을 때려버린다.

  완전 1점차로 이기고 있던 뉴욕 양키스는 박찬호의 기용으로 인해 9대 7로 역전패 당하게 생겼다. 박찬호가 2방의 홈런으로 3점을 내준다.

  박찬호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얼굴에 드러낸다. 얼굴에 핏기가 없다. 홈런 두 방 맞고 완전 패전의 멍에를 짊어질 뻔했는데...예전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의 동료, 알렉스 로드리게즈가 2점 홈런으로 완전히 박찬호를 웃게 만들어준다. 동점홈런을 터뜨린 것이다.

   박찬호의 패전을 면하고 이제 누가 승리를 거머쥘 것이냐? 그런데 탬즈가 일을 내버렸다. 2점 홈런으로 경기를 역전승으로 이끌어버렸다. 최고의 마무리로 명성이 자자한 보스턴의 파펠본은 이 날 홈런 2방으로 다 잡았던 승리를 놓쳐버린다. 박찬호, 파펠본 두 사람 다 홈런 2방씩 짠 듯이 맞았지만 결국 웃은 사람은 박찬호였다! 9대 7에서 9대 11로 승리!

  

 

 

 우리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올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다 이기고 있는 경기였는데,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고통이 닥치는가 하면, 완전히 게임 끝이라고 할 만큼 다들 실패하고 희망 없는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실패하고 실수하여 내어준 홈런 2방을, 3점을 하나님께 더 큰 홈런 2방, 4점짜리 홈런으로 날려주심으로 나를 웃게하실 수 있음을 믿으라! 야구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믿음의 finale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라! 끝까지 의지적으로라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영혼을 품을 때, 감싸 안을 때 하나님께서 선한 열매로 보답해주실 것이다. 태신자를 품을 때 2점, 3점, 4점짜리 홈런을 맞았어도 주님께서 합력하여 더 많은 홈런으로, 우리가 내준 실패의 열매보다 더 크게 보답하실 것을 믿으라! 그리고 기도하며 나아가자!

 

 

 

 

 

셋째, 아직도 남아있는 목표

  느헤미야가 지치지 않고, 꺼리지 않고 수고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그에게 남아있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예루살렘의 풍경이 그렇게 느헤미야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4절: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라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은 이와 다르다.

 

 

스가랴 8:5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하나님의 약속과는 거리가 먼 예루살렘의 풍경이었다. 그리하여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에 인구를 재배치하는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참고, 느 11:1-2). 그리하여 느헤미야는 인구의 재배치를 위한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귀환해서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로 인해 귀족, 민장, 백성들을 모아 계보대로 등록케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인구조사에 착수하려고 하던 무렵 느헤미야는 1차 귀환자 명단을 발견한다.

 

 

  • 7:6-7, 귀환자의 리더급?
  • vv.8-38: 일반백성의 수(가문별, 출신지역별)
  • vv.39-45: 레위인, 노래하는 자, 문지기
  • vv.46-60: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 신복의 자손들
  • -느디님은 ‘주어진 자들’을 의미, 이들은 주로 과거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와 성전의 잡일을 하던 자들(참고, 수 9:22-27; 왕상 9:20-21)
  • vv.61-65: 족보 없는 사람들
  • -포로생활 중에 가문의 족보를 잃어버렸거나 족보에서 누락되어 그 가문을 알 수 없는 자들을 말함.
  • vv.66-73: 귀환자와 가축의 합계

 

 

  이렇게 귀환했던 자들이 모두 어디에 살고 있는가? 73절에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다고 말한다. 이제 이들 중 어떤 자들은 자신의 고향(본향)을 떠나 예루살렘성으로 이주해 와야 한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 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의 철저한 회복을 위해 인구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위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생각’이다. 제비집은 100년 전이나 1,000년 전이나 항상 변함없이 똑같다. 21세기가 되었다고 까치집이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개미들이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지 않는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변화의 능력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힘이다.3) 지금은 좀 불편하고 어려워도 큰 공동체의 비전과 그림을 위해서 우리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섬기고 봉사해 오는 신앙공동체의 회복과 온전함을 위해 자신이 새롭게 세워야 할 계획이나 방안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우리 하나님은 느헤미야보다 더 하게 끊임없이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달려가길 소망한다.

 

 

1. 아직도 남아있는 방해,

2. 아직도 남아있는 사랑과 관심,

3. 아직도 남아있는 목표

  

 

 

 

 

우리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자!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 아직 마치지 않은, 끝나지 않은 숙제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자. 아직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영혼들과 태신자들이 분명히 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과 관심을 베풀자. 3차 태신자 작정주일 가운데 많은 영혼을 붙여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기도. 그리고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목표와 목적이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부흥과 회복을 위해 달려갔던 느헤미야처럼, 우리도 부서와 기관과 전도회와 각종 섬김의 자리에서 부흥을 위해 변화와 행동을 실천하도록 간구하자. 말씀을 기억하면서, 태신자의 영혼을 떠올리면서, 3차 태신자 작정주일의 수확을 위해 주여 우리를 강하게 붙들어 달라고 다같이 기도하자! 기도하겠습니다!

 

 


1) 정영진, 사람이 모이는 리더 사람이 떠나는 리더(서울: 리더북스, 2006), 196-197.

2) 정영진, 사람이 모이는 리더 사람이 떠나는 리더(서울: 리더북스, 2006), 174-175.

3) 정영진, 사람이 모이는 리더 사람이 떠나는 리더(서울: 리더북스, 2006), 203.

 

 

 

구약성경 느헤미야 7장을 가지고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이었는데요. 세가지로 살펴봤네요. 첫째, 아직도 남아있는 방해, 둘째, 아직도 남아있는 사랑과 관심, 셋째, 아직도 남아있는 목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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