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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5-6장,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by Message.K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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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 느헤미야강해로서 5-6장에 대해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보고자 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와 관심, 그리고 합심을 통해 성벽건축에 한 발자욱 더 다가간 느헤미야에 대해 4가지 테마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건축을 한다는 것, 집을 짓는다는 것은 참 시작은 보기 좋게 시작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교회의 건물, 비전센터 또한 짓는 과정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저희 본가 시골집을 몇 년 전에 지었는데, 짓고 나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짓는 과정가운데 업자의 요구도 들쑥날쑥해서 부모님께서 애를 좀 먹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건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 느헤미야가 느헤미야 1-2장에서 ‘일어나 성벽을 건축하자’라는 모토와 비전 아래 시작된 성벽재건사업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착수되었다. 3-4장까지는 방해공작이 있었지만, '한 마음으로 성벽 재건을 위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볼, 5장 그리고 6장에 와서는 계속해서 목표를 향해 전진해가는 모습, 그리고 그 공사의 마무리를 보여준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네 가지 정도 같이 나누고자한다. 5-6장의 줄거리를 같이 나누면서 핵심되는 원리를 나누고자 한다. 성벽건축과정 가운데 먼저는,

 

 

 

 

 

① 청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청산(5:1-13)-내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사단의 방해공작은 다양한 각도에서 밀치고 들어온다. 성벽재건을 위해 모인, 유대인들의 공동체 가운데 불거진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네 가지로 들 수 있다.

 

  •  5:2 우리는 먹어야 산다
  •   5:3 우리는 죄다 저당 잡혔다!
  •   5:4 세금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   5:5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

 

     저들의 자식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갖는데, 우리의 자식들은 왜 종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한 민족이 아닌가? 그렇지만 우리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사람들 가운데 경제적인, 생활고가 가득했다. 주권이 있든 없든, 민생고는 민생고였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느헤미야는 지금 당면한 성벽 재건의 위대한 하나님의 일 앞에서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도 있었습니다. 시간도 없고, 빨리 이 비전의 끝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귀담아 들어 주었다. 그는 6절에서 순간 욱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7절에 곰곰이 사려 깊게 생각하고서 조치를 취하게 된다.

7절을 다같이 한 번 읽어보자.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RSV역에서는 ‘이자를 징수하다’로 되어 있는 반면, 예루살렘 성경은 ‘부담을 주다’로 번역, NASB, NIV에서는 You are exacting usury이라고 해서 ‘고리대금을 강요하다’로 표현하고 있다. ‘빚값으로 너의 동족 유대인들을 잡고 있다’. 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요즘 대출에 대한 CF광고가 얼마나 과다하게 나오는지 모른다. 대출광고 CF노래를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그런데, 대출로 인한, 빚 독촉, 고리대금으로 인한 경제적인 혼란이 그 시대에도 있었다. 한편 생각으로, 대부업, 고리대금의 CF가 애들에게 친숙해지면 나중에 애들이 멋도 모르고 전화해서 돈 빌려달라고 그러면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에 대해 나몰라 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가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청산해야할 과제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7절에서 느헤미야는 대회a large meeting, assembly를 열어 잘못된 일을 다루게 된다.

8절에서 요즘 말로 하면

 

“믿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해서 되겠는가?

 

사람을 팔고 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러면 안 되지 않는가?”

 

이런 말투다.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10절에서는 ‘우리끼리 그 이자받기를 그치자’라고 제안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서 13절에서는 일종이 약속을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멘하면서 동의하였다. 귀족들과 서민들 사이의 경제적인 격차로 인한 여러 가지 경제적인 고충들을 느헤미야는 여기서 해결해주고 있다.

 

 

 

  믿음의 공동체가 더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열매 맺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청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현대판 이자 받기를 그칠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어울리지 않는 삶의 내용이 있다면, 신앙과는 동떨어진 삶이 있다면, 분명코 청산해야 할 것이다. 액면그대로 성도들간의 불필요하거나 과다한 금전거래부터 시작해서, 지나친 이잣돈 놀이나 부동산 매매 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잘못된 종교적인 습관이나 구태의연한 우리의 신앙의 습관들은 우리가 청산하고 정리해야 줄 믿는다.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선 공동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불평과 원망과 분노와 상처, 그리고 사탄의 견고한 진이 파해져야 할 줄 믿는다. 성벽 재건을 위해서 방해되는 요소들이 예수 이름으로 해결되고 깨어져야 한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하지만 존 스토트는 이런 이야길 했다.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문제는 이상과 실제 사이의 긴장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주님이 피값으로 주고 세우신 교회, 그 교회에 대한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실제 모습은 완전 엉망인 교회의 모습!

  예를 들어, 주님은 제자들에게 겸손하게 섬기길 원하면서 가장 더러운 발을 씻기시면서 결국에는 십자가의 섬김까지 철저한 순종으로 나아가신 것을 교회가 알고 이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전교인수련회를 통해서도 같이 세족식을 같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교회의 현재의 모습은 겸손과는 거리가 멀고, 서로 잘난 체하고 ‘키재기’를 하면서 싸우고, 헐뜯고, 시기하며, 질투하고, 말씀과 기도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고 치자. 거기에 교회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포사이트(P. T. Forsyth)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인간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한 산물...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토머스 아놀드(Thomas Arnold)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교회는 인간의 어떤 능력으로도 구원할 수가 없다...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앉아서 탄식하다가 죽어 버릴 것 같다.’1)

 

 

  우리는 주님이 주신 훌륭한 교회의 이상, 포사이트의 교회의 이상을 꿈꾸며 현실의 장벽, 토머스 아놀드가 이야기한 ‘앉아서 탄식하다가 죽어 버릴 것만 같은 교회의 현실’ 을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의 불평과 불만과 문제와 약함과 악함들을 주께서 해결해주시도록, 개인적으로, 아니면 공동체적으로 해결해주시도록 기도해야할 것이다.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모아 대회를 연 것처럼, 그렇게 모여야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 교회의 성장과 진보를 위해서라면 대회를 몇 번이고, 몇 십번이고 모여야 할 것이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수 세기 전에, 어거스틴은 파티를 즐기며 창녀들과 어울리는 거친 청년이었다. 그가 회심한 뒤, 창녀들 중의 하나가 그의 팔을 붙잡고 그녀의 방으로 그를 유혹했다. 그 때 그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어거스틴은 죽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어거스틴이며,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2)

 

 

  이것은 어거스틴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이 어거스틴을 ‘교회’로 상징화시킨다면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있고,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혀 감화, 감동을 주지 못하는 교회의 과거를 청산하고서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교회는 죽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교회이며, 당신은 내가 어떤 교회가 되었는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참회하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었음 좋겠다.

 

 

 

 

② 지도자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모본(헌신)(5:14-19) Cf, 4:21-23

  공동체가 더 나아지기 위해선 대회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결단과 희생과 본이 있었다. 느헤미야는 요즘 말로 하면 판공비라고 할 수 있는 행정 경비, 그것을 충당하기 위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내려놓았다. 14-15절을 읽어보자.

 

 

14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12년 동안 총독의 권력에서 나오는 이익을 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은 언제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자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느헤미야 또한 15절에서 이전의 전임자들의 행적과 관습, 백성들의 주머니를 강탈하고 도적질하는 행위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차별화를 선언한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이러한 결단이 느헤미야에게 있었다. 여러 날 전에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소식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궁에서 들었을 때, 그는 이 기회를 자신의 명성과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보지 않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쉰들러리스트’에 나오는 오스카 쉰들러는, 세계대전을 벌인 독일군에게 빌붙어, 권력에 기생하면서 전쟁시에 굉장한 부를 축척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스카 쉰들러는 훗날 자신의 돈으로 생명을 구하기로 작정하여 ‘쉰들러리스트’를 만들어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반면에, 느헤미야는 아예 이런 재앙의 날을 이용해 자신의 주머니를 챙기는 인물이 절대 아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돈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인물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러한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느헤미야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바로 뛰는 것이 아니었다!

 

 

 

 

 

Ex) 빌 하이벨스의 ‘돈 때문에 사역하지 않는다’는 글을 그의 저서 ‘AXIOM’에서 보았다~

 

  우리의 주인의식이 얼마나 강한지를 사람들은 고스란히 보고 느끼고 냄새 맡는다. 우리가 주인인지 삯군인지 사람들은 잘 안다. 삯군이라는 말은 예수님 당시에 돈을 받고 적당히 양을 치던 ‘고용된’ 사람을 말한다.

(빌 하이벨스의 일화)

 

 

 

 빌 하이벨스가 몇주간의 세미나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갈 나라가 브라질이었다. 그런데, 비자담당자가 빌 하이벨스의 브라질 비자를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 때 빌 하이벨스는 여행의 여독도 있고 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속으로 좋아했는데, 주위의 지인들이 ‘빌 하이벨스는 무조건 브라질에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자를 어떻게 할것인가? 결국 빌 하이벨스는 독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세네갈의 다카르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워싱턴 D.C에 가서 브라질 대사관에서 여행 비자를 다시 받아 바로 남미로 날아가야 한다는 동선이었다. 그 거리가 무려 32,000km였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브라질에 가야만 하는가 하면서 호텔로 돌아가 몇 시간동안 하나님과 씨름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빌, 나는 네게 큰 것을 맡겼다. 거기에는 브라질도 들어 있지. 너보다 앞서 간 그리스도인들은 편안한 비행기를 타고 3만 2천 킬로미터를 더 달리는 정도의 일보다 훨씬 더 값비싼 대가를 기꺼이 치렀다. 어서 가라!”

 

 

 

브라질에서의 모임은 빌 하이벨스에게 ‘내 평생 잊지 못할 모임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빌 하이벨스가 사역중에 낙심했을 때 자문했다고 한다.

 

 

‘나는 왜 이 사역을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하다. 절대로 돈을 위해 이 일을 하지는 않겠다는 것!“ 나를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나한테는 이 말이 먹히니깐...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동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그분을 신실하게 섬긴 아들 딸들에게 주시는 잘했다는 칭찬 때문이다. 빌 하이벨스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길 바란다.

 

하나님의 사람들, 리더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위해 싸울 각오를 한다. 칭찬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잘 했다. 너는 끝까지 주인의 마음으로 그 일을 했다.”

 

 

 여러분의 고백이길 소원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최선의 충절을 받으시는 분이시며, 최고의 애정의 대상이심을 고백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주인의 길을 택하라. 그러면 사람들도 자극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훌륭한 일들을 할 것이다.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느헤미야처럼 사명을 완수하라! 느헤미야의 섬기는 리더십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왔음을 감지할 수 있다.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러한 섬기는 느헤미야의 모습은 18절에서 더 잘 드러난다.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의 무게를 알았기에 그는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느헤미야의 ‘자발적 섬김’과 ‘자발적 헌신’이 두드러진 대목이다.

 

  이러한 모습은 4장에서도 이미 본 바 있다.

 

 

4:22-23

21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먼저 솔선수범했던 인물이 바로 느헤미야!

 

 

 

 

 

 

Ex) C.T 스터드(1862~1931)는 학생 복음 운동의 조상으로 유명한 영국의 '캠브리지 7인' 중 한 사람으로 졸업 후 46년 동안 중국, 인도 선교를 하고 중앙 아프리카를 개척한 선교사이다. 20여년간 중국에서 사역하였던 스터드는 1913년 아프리카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를 창설하였다.

 

선교지로 가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

 

 

"황금을 찾기 위해 도박하는 불신자들도 있는데,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도박을 하겠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젊어서는 직업을 걸었다.

그는 '크로켓'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1879년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 진학했다. 1882년 겨우 대학 3학년으로 '영국의 가장 위대한 크리켓선수' 라는 격찬을 받으며,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므로 10대의 우상이 되었다. 그가 19세기 영국판 김연아였다면? 물론 남자였지만!

 

 

그는 중국에서는 재산을 걸었다.

그는 중국 선교사로 드디어 1885년 2월, 이들 7인은 중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다. 그는 유산으로 받은 수십 억의 재산을,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자신은 다른 선교사들처럼 믿음으로만 생활을 유지하며, 7년 동안 800명의 마약중독자들이 새 삶을 살도록 도왔다.

아프리카에서는 목숨을 건 '위대한 믿음의 도박사'였다.

스터드는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항상 건강이 좋지 않았다.

마침내 1931년 7월. 71세를 일기로 스터드는 콩고 아밤비에서 지병인 담석증으로 소천하였다.

 

 

  양떼들을 위해 본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믿음의 도전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리더들이 되라! 구역과 구역식구들, 교사들이 맡고 있는 반 애들과 맡은 부서와 성가대와 전도회와 전도대와 팀원들 등등! 모든 하나님의 영혼들을 위해 느헤미야의 섬김으로 다가가기를 소망한다.

 

 

 

③ 음모도 있었습니다, 인신공격(6:1-14)

승리, 압력, 정신적 압박감~

  이제 모든 성벽재건의 사업이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

  승리는 문제의 해결이자 원천. 성공이 크면 클수록 반대도 더 거세어진다. 산발랏이 갑절의 힘을 기울여 대항하고 나섰던 것은 성벽이 이미 재건되었고 이제 성문 만드는 일만이 남았음을 알기 때문이다(6:1).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이 때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은 ‘느헤미야 죽이기’ 작전(프로젝트)을 가동한다.

 ‘느헤미야죽이기’ 작전에 풀가동된 도구들은 다양한 것이었다. 만나서 회담을 하자는 4번의 연락과 5번째는 편지(5절), 또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예언 운운하면서 느헤미야가 모반과 혁명적인 왕이 되려고 한다는 중상모략(6-7), 그리고 결국은 ‘살인공작’(10절)과 ‘뇌물수수’(12절)까지 사극드라마나 첩보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8절: "당신이 한 말은 사실이 아니오. 그것은 당신이 마음대로 지어 낸 생각일 뿐이오."(쉬운성경)

 

 

   또한 느헤미야가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를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음모와 방해공작에 의해 시간을 허비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단호함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이것은 아마도 느헤미야가 3-4개월 동안 기도하면서 성벽재건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던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척된 기도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느헤미야의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성벽재건을 완공하지 않고서는, 성문을 달고 완성된 작품을 보기 이전에는 이 일을 중도에 하차할 수 없었다. 일시정지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가 있었다.

 

 

 

  느헤미야에게 들려왔던 수많은 소문들은 느헤미야에겐 정치적인 위기를 줄 수 있는, 정치적 생명까지도 단명시킬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자신의 영달과 성공과 권력확장을 위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에게 주신 ‘술관원’이란 권력은 빼앗긴 조국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한 부르심과 사명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직접 수산성으로 달려가서 소문의 진위를 밝히고, 해명하고 그렇게 난리법썩을 떨다가는 예루살렘을 여러 달 비워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성문 설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튼튼하고 잘 세워진 성문이 없다면 재건 역사 전부는 허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4) 그의 목적이, 비전이 상실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분명히 시험이 있을 것이다. 느헤미야처럼 정신적인 압박감, 인신공격, 음모, 방해공작 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왜 그 자리에, 이 자리에 있는지 늘 물어야할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상담하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한 번은 동료 국회의원의 악한 공격을 받는데도 왜 고통스러워하지 않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한다면 그의 의견에 신경을 쓰겠지요.
그러나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내게는 단 한 분의 청중the audience of one밖에 없다.
네 앞에서는 내가 입증해야 할 것도,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우리의 사명과 소명 앞에, 윈스턴 처칠처럼 사람의 소리에 의연하며,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자세를 지니고 나아가길 소망한다.

 

 

 

 데이비드 제레마이어의 글에 보면, 어느 캐나다인 가정의 기막힌 사연을 있다.

당시 그들은 아무래도 세계대전이 임박한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래서, 고향 캐나다를 떠나 지구 한구석에 싸움의 사각지대, 전쟁이 미치지 못할 피난처를 찾아 피난을 결심했다.

 

 1992년 봄, 그들은 포클랜드 섬이라는 조용하고 작은 외딴 영국령으로 이사했다. 일가족이 느긋하게 평온한 삶을 누렸다. 근데 닷새 만에 아르헨티나가 그들의 뒷마당을 침공했다. 유명한 포클랜드 전쟁5)이 터진 것이다. 남아메리카대륙의 동남단, 아르헨티나의 대륙부에서 약 500km 떨어진 남대서양의 소도인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국·아르헨티나 간의 분쟁이 하필이면 그곳에서, 그들이 전쟁의 사각지대로 생각한 그 장소에서 터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달아날 곳은 없다. 달아나다가 제2, 제3의 포클랜드 전쟁을 맞이할 것이다. 당당히 서서 두려운 현실에 맞서는 편이 낫다. 당신의 정말 걱정거리는 무엇인가? 왜 그런가?6)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용기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다. 용기란 두려움과 믿음이 만나는 자리이다.”7)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부정적인 요소들을 정복하라! 믿음로 두려움의 산지를 정복하라!

  

 

 

 

 

④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6:9, 15-19)

 진정한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두렵고 괴로우며 상심한 때에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실천하는 것을 말함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것이다.’8)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힘이 빠지다, 맥이 빠지다)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LXX: 나는 내손을 힘있게 했다) 하였노라

 

 

  •   ① 청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청산(5:1-13)-내부
  •   ② 지도자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모본(헌신)(5:14-19) Cf, 4:21-23
  •   ③ 음모도 있었습니다, 인신공격(6:1-14)
  •   ④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6:9, 15-19)

 

 

    우리 함께 들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자. 우리가 청산하고 정리해야 할 죄는 없는가?

  느헤미야처럼 섬김의 본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독려하고 격려하는 리더가 되자!

  우리를 둘러싼 수없는 음모와 인신공격!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위기들, 그러나, 그 위기는 위험한 기회임을 잊지 마시기를!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강력하게 세우실 하나님을 기대하자!

 

 

 

  우리공동체의 외부적인 공격과 내부적인 공격 가운데서도 용기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도록! 주여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우리가 맡고있는 직분! 모든 삶의 정황들 가운데 주여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기도하자!

 

 


Reference

 

1) 존 스토트,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정옥배 역(서울: IVP, 1993), 283-284.

2) 랄프 네이버, 3새로운 삶의 실천, 정진우 역(서울: NCD, 2009), 74.

3) AXIOM에 대한 개인적인 요약.

4) 존 화이트, 탁월한 지도력, 이석철 역(서울: IVP, 2004), 111.

5) http://100.naver.com/100.nhn?docid=182317

     남아메리카대륙의 동남단, 아르헨티나의 대륙부에서 약 500km 떨어진 남대서양의 소도인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국·아르헨티나 간의 분쟁.

    실질적으로는 1833년 이후 영국령인 포클랜드에 대하여, 1816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시 그 영유권도 계승한 것으로 주장하는 아르헨티나(에스파냐어로는 Malvinas제도로 불리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흔히 아르헨티나 영토로 생각하고 있다)가 1982년 4월 2일 무력점령을 감행한 데서 발단되었다. 이에 대하여 영국은 근해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또 남극대륙에의 전진기지로서의 포클랜드 방위를 위하여 급거 기동부대를 파견, 4월 26일에는 포클랜드제도의 동남쪽 1,500km에 있는 남조지아섬을 탈환하였다. 5월 20일 유엔 사무총장의 조정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영국군은 포클랜드에 상륙, 75일간의 격전 끝에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이 전쟁은 ‘포클랜드 휴전과 아르헨티나군의 철수에 양측이 합의하였다’고 항복이라는 말을 빼고 발표된 아르헨티나측 성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한 채 원점으로 되돌아갔으며, 다시 유엔으로 넘겨진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의 타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한편, 이 전쟁이 남긴 교훈으로는 첫째, 무기현대화에 따른 전비(戰費)의 팽창이다. 영국은 사상자 452명과 항공기 25대, 함정 13척을 잃었으며 전비 15억 달러를 소비하였는데, 국위선양 등 작은 성과에 비하여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사상자 630명과 항공기 94대, 함정 11척을 잃은 GNP 600억 달러의 아르헨티나는 거의 국력을 총동원하는 모험으로 영국보다 더욱 많은 전비를 염출하여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몰렸다. 둘째는 이 전쟁을 통하여 드러난 유엔과 미국의 무능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개전 후에도 협상의 문호를 계속 개방하고 있었으나 유엔과 미국은 교전당사국의 이해조정에 실패하였으며, 특히 미국은 조급히 영국을 지원하고 나섬으로써 라틴아메리카 제국의 반미감정만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함으로써 대미신뢰에 커다란 문제점을 남겼다.

 

6) 데이비드 제러마이어, 당신 삶의 거인들을 잡아라, 윤종석 역(서울: SFC, 2003),31

7) 데이비드 제러마이어, 같은책 22.

8) 존 화이트, 같은책, 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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