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3:1
(1)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기서 시기오놋이란 말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시기오놋은 말 그대로 음악의 리듬과 정형성, 틀, 자연스런 순서를 한꺼번에, 아니면 갑자기 뒤집어면서 감동을 주는 그런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식가욘은 흥얼거리는 것을 의미하고, 시의 전문 용어로 흥얼거리는 노래, 즉 매우 흥분해서 하는 노래나 신속한 감정 변화로 부르는 노래를 의미한다. 따라서 t/nyOg_vi l['격하고 감정적이고 흥분된 노래의 방법을 따르는 것(남성, 복수, 명사)...
[KJV]합 3:1
A prayer of Habakkuk the prophet upon Shigionoth.
흔히 애들립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흔히 찬양인도나 강의나 설교를 할 때 어떤 발표를 할 때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영감이 떠오르는 것, 생각했는데 더 좋은 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게오르그 프리데릭 헨델이 메시야를 작곡할 때 그는 3주 동안 정말 눈물을 줄줄줄 흘리며 작곡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일하는 하인이 식사를 가져갔지만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연찮게 식사를 챙기기 위해 헨델의 작업실에 가서 헨델의 모습을 보았는데 경이에 찬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는 헨델을 보았다고 한다. 헨델이 누렸던 경이감, 영감충만한 장면은 바로 시기오놋의 하나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박국의 기도에서 나타나는 하박국의 애들립은 굉장히 강렬하고 체험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3:2의 부흥에 관한, 회복에 관한 기도를 시기오놋에 맞춰 기도하고 있다는 대목이 특이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하박국이 누구냐는 것이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은 '씨름하는 자', '포옹하다' 또는 '움켜쥐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박국은 12 소선지 중의 한 사람이요 하박국서의 저자인데 그의 개인의 사적은 전연 알 수 없고, 하박국은 동시대의 예레미야 선지자보다도 그 전 시대의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더 신앙의 영향을 받은 레위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박국은
(2)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지금 하박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께 대한 소문’이었다. 갈대아인 바벨론인의 침략으로 인해 유다의 멸망, 심판 소식을 들은 하박국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하박국은 진정한 의인, 하나님께 시대의 문제와 불의에 대한 갈등으로 번민하면서 기도하였던 선지자이다. 그는 하나님께 답답한 심경으로 두 가지 질문을 했다.
그 첫 번째 질문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유다의 죄악을 벌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내버려두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합 2:14)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이것은 바로 하박국의 진지한 소망이었고 선지자적인 꿈이었다.
이 같은 질문은 일견 하박국이 자신의 나라가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반정부 주의자 또는 비애국자인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질문의 근본 의도는 불의가 온 사회에 판치는 것에 대한 의인의 고뇌를 하소연하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징계와 심판을 통하여서라도 유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진정한 애국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 신정정치 국가이다. 다른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 생명과 호흡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말 그대로 막 나갔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갈대아(바벨론)를 심판의 도구로 예비해 두셨다는 것인데 그들은 유다를 치기 위하여 아주 신속히 팔레스틴으로 이동하리라는 것이었다.
하박국은 나라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껴안고 기도한 선지자이다. 하박국이 만약 우리나라를 보았다면, 우리 시대를 보았다면 ‘하나님, 왜 도대체 한국을 이렇게 버려두십니까? 매를 들어서라도 그리스도인들이 똑바로 살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게 멉니까?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물질주의와 향략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아예 무관심합니다. 하나님, 한국이 기독교 100주년 선교역사를 가졌다고 자랑하고 1907년의 평양대부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7년에 부흥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게 무엇입니까? 아프카니스탄에서 23명의 피랍된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21명으로 죽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힘이 없다지만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주여, 미국을 들어서라도 이 모든 위기를 온전히 타계하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21세기의 하박국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박국, 포용하는 자, 껴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대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선지자적인 눈물이 마른 시대가 되었다. 모두 자기 상처에 국한되고 갇힌 나머지 시대를 위해, 나라를 위해, 민족과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여유가 너무나 작아져버렸다. 나 자신부터 너무나 초라해져 버렸다. 대학 다닐 때는 그래도 아침 기도회에 가서 내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선교지와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를 하였는데, 이젠 추억이 되어 버렸다. 여러분, 여러분은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게임도 좋고, 영화도 좋고, 스포츠도 좋고, 인터넷도 좋고, 성적과 이성친구, 기타 등등...다 좋다. 하지만 이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는가? 하박국이 되지 않겠는가? 포용하고 껴안는 하박국, 문제를 얼싸안는 하박국이 되자. 먼저 교회부터 껴안아보지 않겠는가? 아니면 우리 대학부부터라도 껴안아보지 않겠는가? 하나님, 하박국처럼 눈물을 흘리며 시대를 바라보며 탄식하고 너무 가슴이 답답한 나머지 성루에 올라가서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렸던 하박국의 선지자적인 마음을 달라고 흉내라도 내보지 않겠는가?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과 관계된 것으로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다보다 더 불의한 갈대아를 사용하시어 유다를 징계하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23명을 가두어두고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의 진상지인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악의 화신으로 보이는 나라처럼 하박국의 눈에는 갈대아가 그렇게 보여 질 수도 있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우리나라가 너무나 죄가 많고 악이 가득해서 심판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하나님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북한이나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악한들에게 칼자루를 쥐어줬다고 생각해 보라. 정말 역겹지 않겠는가? 하박국의 심정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유다가 자신들의 죄 때문에 징계를 당하는 것처럼 갈대아 역시 그들의 죄 때문에 궁극적으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는 것이었습니다.
수년 내에...“빠른 시간 내에, 빠를 수록 좋은 시간”을 말하는 듯.
LORD, I have heard of your fame; I stand in awe of your deeds, O LORD. Renew them in our day, in our time make them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ASV]합 3:2
O Jehovah, I have heard the report of thee, and am afraid: O Jehovah, revive thy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it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유다의 요시야 왕 시대(B.C. 621-609년)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다를 향한 심판은 B.c 605년에 다니엘과 많은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B.C 597년에는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갔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공격에 있었던 B.C 586년에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훼파되었다. 하바국의 이러한 기도는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는 정말 그렇게 응답되었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일을 우리 시대에 다시 행하시고”...
하나님의 대답
여기서 ‘부흥’...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부흥이란 단어가 나온다. 고형원 선교사님이 ‘부흥’이란 찬양으로 영감 있게 만든 이후로 한국교회는 끊임없는 부흥론을 외쳤다. 부흥을 너무나 많이 외쳐서 이제는 달고 닳은 주제가 되어 버렸다.
부흥은 우리의 전인격이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박국이 이야기하는 부흥은 마치 암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려 수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살을 찢고 째고 자르고 암세포를 들어내는 수술. 마취는 하나님께서 하실 지 그것은 하나님 소관이다. 부흥은 기분 좋은 어떤 슬로건이나 문장, 단어가 아니다. 부흥은 자신을 도려내는 것이다. 자신의 살과 세포와 피부를 들어내고 찢고 째고 자르고 다시 짚는 것이다. 유다 민족은 부흥은 그들이 먼저 망하는 것에 있었다. 자신들의 나라와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그 자리에서 부흥의 싹을 틔우는 것이었다. 하박국의 기도는 말 그대로 수년 내에 이뤄졌지만 남유다의 왕들은 포로로 끌려가기도 하고 꼭두각시처럼 행세하기도 하고 처형당하기도 하고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포로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여서 두 눈이 뽑히게 되는 처절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유다 왕국이 잘 못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처절하게 낮아지고 낮아져 이방인의 식민지 생활, 6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지나게 된 것이다. 주권이 없는 나라,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의 아픔과 설움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하박국이 말한 부흥은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부흥은 무서운 것이다?
하박국...우리가 하박국이 되었음 한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혼을 안고, 가정의 문제와 어려움을 안고, 교회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의 문제를 가슴에 안고 포용하는, 껴안는 하박국이 되길 바란다. 교회의 하박국이 바로 여러분이 되었음 한다. 가슴에 상처는 있지만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줄 아는-진노와 긍휼은 모두 다양한 하나님의 본질 중 일부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이다- 21세기의 하박국이 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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