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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잠언

잠언 6:1-5, 보증이나 담보로 인해 빚을 진 이들을 위한 설교- 스스로 구원하라

by Message.K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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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잠언에서는 타인을 위한 보증이나 담보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을 위한 말씀이 적혀져 있는데요. 성경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잠 6:1-5의 설교를 통해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스스로 구원하라'(3,5절)입니다.

 

 

잠언 6장 1-5절, 스스로 구원하라, 보증과 담보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 썸네일
잠언 6장 1-5절, 스스로 구원하라, 보증과 담보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현세 그리고 내세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메시지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성경을 그냥 다른 수많은 세상의 책들 보다 조금 더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로 대하느냐가 관건일 텐데요. 이건 바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느냐? 는 문제로 귀결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자세가 준비되어져 있는가요? 

오늘 잠언 6장 1-5절에서는 '담보나 보증'을 선 사람들을 위해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 담보나 보증이 '이웃을 위한, 다른 사람을 위한' 담보와 보증의 경우를 제시합니다. 

 

 

 

잠언 6:1-5의 본문 개요

  • 잠언 6:1-5
  •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 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 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 4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 5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이 짧은 본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 '내 아들아, 네가(1절),
  • 네 입의 말로(2절에 두번씩),
  •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 너는, 네 이웃(3절),
  • 네 눈(4절)'

이렇게 글을 읽는 독자인 당신에게, 우리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가혹한 말씀을 하시는데요. 바로

  • '스스로 구원하라'(3절, 5절)

입니다.

 

 

스스로 구원하라?(3,5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보증 서고 담보를 잡혔는데, 그 돈을 내가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사용했는데, 성경은 명백하게 말하는 골자는 '스스로 구원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했는데, 왜 이런 황당하고도 고약한 말씀을 하실까요? 그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내 아들'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아들과 딸이라면 이런 위기에서 한번 제대로 구원해주기도 하고 구출해주기도 해야지 너무 한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제가 그랬습니다. 8월 초에 갑자기 알림톡이 왔는데, 은행계좌가 압류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인즉, 바로 보증 선 것 때문인데요. 물론 이런 압류가 한 순간에 진행되진 않습니다. 오랜 시간 저에게 법원에서 안내장이 날라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증을 서서 공동책임인 된 돈에 대해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고 모든 빚을 안고 간다, 그리고 개인회생신청을 해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만 듣고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법원에서 몇 달에 한번씩 오는 안내장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죠. 그 친구의 말만 듣고 말이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는 건데, 그때 법원이나 담당자에게 전화 한통이라도 했다면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텐데요. 제가 갚아야 할 금액은 이자가 불어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버린 금액이었습니다. 800만원을 넘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이자만 5백만원이 넘어갔네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뒷통수를 세게 가격당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기 전에 시편 말씀을 읽고 잠언을 읽다가 오늘 이 본문을 발견했는데, 너무 답답했습니다. 

 

"스스로 구원하라니?"

 

너무 울화통이 터졌고 분노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당시에 태풍이 북상하면서 장마가 굉장히 심했더랬는데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밤에 누웠는데, '주여!'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음소리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는데요. 해맑게 웃다가 잠든 아이들 옆에 누워서 잠을 뒤척이면서 '주여'라는 말을 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구원하라?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고 잡히게 된 것이 바로 보증과 담보(2절)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고 잡히게 된 것이 바로 보증과 담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실까요? 보증을 섰다, 담보를 했다, 아니면 그 돈은 내가 한 푼 쓰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고   

  • 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2절의 말씀이 핵심입니다. 어쨌든 내가 담보를 섰고, 보증을 선다고 했기 때문에 '네 입의 말로' 얽히고 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보증을 선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유

저는 800만원으로 볼모가 잡히게 된 것입니다. 은행통장이 3개가 압류가 되더군요.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지면 제가 금융거래를 하지 못하게 되겠죠? 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구원하라!"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인제 제가 채무불이행 명부에 등재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출은 전혀 불가한 노릇입니다(하지만, 원래부터 제가 신용이 좋지 않아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을 제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후에 어떻게라도 대출을 해 보려고 제2, 3금융권까지 트라이를 해보았지만 거절당했는데요. 신용회사에선 제가 돈을 갚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차량을 압류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시골에서 차가 없으면 먹거리를 구할 수도 없고 볼일을 전혀 볼 수 없는 노릇인데. 아, 정말 암담했습니다. 그래서 차량이 압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차량을 담보로 대출을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채무불이행 명부에 등재된 압류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되지 않더군요. 신용이 중요한 것은 알았지만, 정말 내 자신이 경제적으로 이렇게 열악하고 어리석은가 싶었습니다. 솔직히 부끄럽고 * 팔리는-제가 웬만해선 이 표현을 잘 안 쓰는데요. 이 표현이 원래는 '몸을 판다'는 뜻이 있다군요. 근데 오늘은 정말 이 말이 적절할 것 같아서 사용해 봅니다- 노릇입니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현실입니다만 제가 굳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혹여나 저와 같은 형편이나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희망이나 위로가 될까 해서 적는 것입니다. 

 

 

 

아무리 빚이라도 감액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편지를 쓰다

한날은 기도를 하려고 성전에 앉았다가 그날따라 멀리 있는 권사님이 너무 보고 싶더군요. 은퇴를 하시고 생활하시는 권사님, 저희에게 매달 후원과 기도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권사님, 그래도 제 상황과 사연을 이야기라도 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상황이 더 허락한다면 조금 여유가 있는 다른 집사님 얼굴이라도 한번 뵙고 와야겠다 싶어서 차를 몰고 다른 도시로 넘어갔습니다. 정말 아무런 대책없이 넘어갔습니다. 권사님도 내가 뵙고 싶다고 하니깐 깜짝 놀랬지만 그래도 바로 오라고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고는 이런 저런 사연을 풀고서 8백만원 정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솔직히 저는 권사님께서 빌려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너무 절박하니깐 그런 간사한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다들 그런 생각을 했겠죠. 돈 빌리는 사람의 절박한 심정은 그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아...그 이전에 제가 영어강사로 뛰고 있는 제자가 있어서 그 친구에게 이런 사연을 이야기했는데요. 그 친구는 금액이 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기도해 보고 연락준다고 했는데, 연락이 1주일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서 제가 전화를 했더니. 자기가 이제 영어강사를 그만두어야 할 상황이라 금액이 너무 크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렇죠. 제가 너무 다급하니 기대를 한 것인데요. 참고로 그 친구는 제 애제자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가끔 도움을 받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스승이 못 나서 돈이나 빌리는 상황이지만...그런 거절의 상황이 지나고 그 권사님을 찾은 것인데요. 아..물론 제가 사역자이긴 하지만 제 인맥을 동원하면 그 정도의 돈을 융통하지 못할까? 뭐 그런 생각을 하실텐데요. 과거에 그렇게 지금보다 더 큰 금액도 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빌릴 때도 뒷탈이 없는 돈을 빌려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부분이라 섣불리 더 이상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근데, 권사님께서 자신은 압류딱지를 세 번이나 받아봤다고 하면서 딱지 색깔도 여러가지더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시더군요. 남편 되시는 분이 사업을 하시다가 망해서 금방 산 새 차도 압류를 당해봤다고 하면서 인생의 밑바닥을 다 경험한 권사님께서 제가 하시는 마지막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채무에 대한 부담감이 심하겠지만 자신은 편지를 써서 담당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탕감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야기만 잘 하고 왔습니다. 참, 권사님께서 아이들 맛있는 거 사주라고 여비도 챙겨주셨습니다. 하지만, 800만원은 아직 해결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자가 매일 1만원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그래도 권사님께서 늘 기도하시지만 더 기도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집으로 돌아온 그 다음날, 저는 일어나자 마자 편지를 적었습니다. 대학노트 7페이지에 달하는 제 이야기를 적고 사진으로 찍어 담당자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선처를 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죠. 이 빚 뿐만 아니라 다른 빚도 많다, 800만원은 너무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차를 팔고 난 금액만으로 퉁 치면 안되겠냐? 감액이 안 되겠느냐? 뭐 그런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글쓰기는 힘이 있다

그런데 제가 그 편지를 적으면서 느낀 것은 제 사연과 사건에 대해 글을 적는다는 것이 굉장한 용기를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일기같기도 하고 편지같기도 한 그 라이프스토리를 적으면서 제 마음에 굉장히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글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글쓰기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인데요. 오전에 일찍 편지를 보내고, 기다렸는데요. 오후에서야 담당자가 연락이 왔는데, 감액은 힘들겠다, 자신도 회사의 녹을 먹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 사람, 저 사람 사정을 다 봐줄 수 있느냐? 그러더군요. 제 속으로는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인데 이렇게 정이 없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 양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박한 저는 그런 섭섭함이 일기도 했습니다. 정말  제 치부를 다 보여줬는데요 그러더군요. 그게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편지를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됩니다. 여러분도 꼭 글을 한번 적어보세요. 자기의 삶, 상황, 상처, 아픔, 빚 같은 것들도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적다보면 알지 못하는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구원하라: 결국 차를 경매에 넘기다

결국 다른 방법은 없고 '스스로 구원하라'는 그 말씀처럼, 빚쟁이가 되었는데 제 명의로 되어 있는, 표면적으로 가진 건 차 한 대가 재산의 전부와 같아 보이는데,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그 차를 압류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죠. 그래서 결국 이곳저곳 알아보는데, 차 값이 너무 형편이 없는 겁니다. 아는 카센타 사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차 견적이 얼마나 나올까 물어보니 200만원이라고 해서 너무 충격을 받았는데요. 아무리 똥차라지만 너무 심하다 싶었는데요. 제가 이때 살짝 착각한 것이 스마트폰에 자산을 등록해 놓으면 차값 견적이 나오는데, 그걸 과신한 것도 있습니다. 아무튼 800만원에는 미치지도 않는 똥차값이 나오는게 우아 정말 답답하더군요. 그런데 채무담당자가 자신들이 경매를 통해 공매를 하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고, 아무래도 제가 다른 곳에서 차를 파는 것 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더군요. 그 사람들도 돈을 더 받기 위해 경매가를 지켜볼테니깐 말이죠. 결국 저는 차를 그 담당자에게 넘겼고 화요일 아침에 차를 가지러 기사 분이 오셨더군요.

 

 

 

압류의 절망 가운데서도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압류되었지만 축구는 하러 가다

그 전에 제가 월요일날 한 일은 그 차로 축구경기를 하러 간 것입니다. 제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데, 축구는 무슨 축구? 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것 같아 월요일날 온다고 한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해 화요일날 오라고 애 병원가야한다고 했는데요. 물론 오후에 애 데리고 병원은 간 것은 맞습니다. 제가 왜 이야길 하느냐 하면, 너무 고통 속에 있을때, 너무 절망 속에 헤맬 때, 운동은 무슨 운동? 그럴 수 있는데요. 제가 그때 매주 월요일마다 하는 조기축구를 그 와중에도 꾸역꾸역 갔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삶은 점dot(.)이 아니라 선(-)이니깐요. 길게 보고 제 자신을 관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경매(공매)로 차를 판 가격은 477만원, 다시 감액을 부탁하다

그리고 차를 팔았는데요. 몇일 후에 연락이 왔는데, 477만원(수수료 11만원 정도를 제외하고)을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빚을 다 갚기에는 800만원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였습니다. 절반 이상을 갚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물론 차가 없어 걸어다녀야 했고 아이들 과자도, 시장 보는 것도, 당분간 누굴 만나거나 볼 일 보는 것은 삼가해야 하는, 모든 걸 걸어서 가야했습니다만. 당분간 필요를 위해 자전거라도 구매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차는 또 사면 되는 거니깐(물론 다 빚이지만). 차를 살려면 일단 이 모든 압류를 해지하는 것이 중요하니깐. 아직 절반이 넘는 금액이 남았는데, 담당자에게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습니다. 상사에게 제가 보낸 편지를 보여드리고 한번만 더 감액부탁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차도 팔았고, 내가 빚을 갚을 의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아니깐, 남은 금액을 할부로 낼 수 있게 해 주던지, 아니면 감액을 해 주던지 부탁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한참 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감액 부탁에 상사가 140만원 정도 감액을 해주다

그때 금액이 820~830만원 정도 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상사가 저의 편지를 읽고는 제가 판 차량 금액 477만원에다가 200만원만 더 입금하면 모든 빚을 청산하는 것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677만원이면 140만원 이상 감액을 해 준다는 건데요. 그거라도 감사했습니다. 더  감액해주면 좋았겠지만, 그게 어딘가 싶었는데요. 솔직히 채무자의 입장에선 5백만원이 넘는 금액이 이자인데, 그걸 다 받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채권자의 입장에선 원금에 대한 기다림의 비용으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이니깐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감액을 해 준 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편지에 적었는데요.

 

여러분들도 어떤 상황에 처할 때 끝까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요청하고 부탁하는 것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때 정말 매일 매일 처절하게 기도했더랬는데요. 아침과 저녁에 성경을 읽고 기도시간을 확보했는데요. 기도만 하면 되지 않고 빚을 청산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감액받기 위해 애쓰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구원하라'는 메시지는 이런 부분에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200만원만 더 입금하면 빚청산을 완료해주겠다는 요구에 해결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날이 8월 30일이었는데, 그 다음날 31일까지 200만원을 입금시켜야 가능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이자는 계속 또 붙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그냥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일이 진행되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클리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날 서울에 있는 애제자(앞에서 언급했던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부탁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 구체적인 상황을 말한 사람이 없고 그 제자에게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전화를 했는데요. 800만원에서 2백만원이 금액이 낮춰진 상황과 경위를 이야기하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바로 200만원을 빌려줬습니다. 진짜 이 놈과는 평생 같이 가야 할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다보면 손절해야 할 사람도 많습니다. 정말 내가 어려울 때 등을 돌리는 친구들도 있고, 정말 내가 고통 가운데 있을때 손 내미는 친구가 있는데, 이 제자는 후자였죠.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31일이 되기 전 당일 30일에 돈은 다 입금했습니다. 압류해지비용까지 다 입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의 공동책임, 보증 선 빚은 청산되었고, 법률적으로는 그 다음주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를 다시 구해야 하는데, 일이 순적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물론 차를 구입할 때도 제 신용 때문에 차를 구입하지 못할 뻔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모든게 하나님의 은혜다 싶은데요. 정말 부끄럽습니다. 신용 하나 제대로 못 챙겨서 이렇게 일이 사달이 나게 하다니...제가 구체적인 경위를 다 설명하지 못하기에 섣불리 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음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오픈할 수 없는 사연이 누구에게나 있으니깐 말이죠.

 

 

 

찌질한 사연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기를 바라

이 글을 읽다가 혹시 불쾌하신 분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신용등급 1등급을 늘 유지하면서 자산도 재산도 넉넉하신 분들에게 저의 이런 사연이 너무나 찌질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리석게 살아왔던 그 결과값을 지금 해결하는 중인데. 혹여나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런 글을 쓰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은 돈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해: '네 책임은 네가 확실히 져라'

저도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오진 않았는데, 부모님 등골 휘게 한 경험이 많아서 경제적으로 참 철딱서니가 없다는 것을 더욱 자각하게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잠언의 오늘 본문의 메시지, '네가 스스로 구원하라'는 말씀은 뼈 때리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경제적인, 재무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돈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책임은 네가 확실히 책임을 져라는 말씀입니다. 도적질 했으면 네 배를 갚으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성경의 모든 방면에서 기준standard를 제시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canon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빚도 많은 목사가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이 너무 우스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통 당하는 이들을 위한 설교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 힘듬에 대한 공감과 아픔을 덜을 수만 있다면 제 치부가 노출되는 것이 부담이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제 고통의 터널에 대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힘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글을 적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너무 힘겨워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을 때, 사랑하는 권사님의 공감과 조언, 애제자의 도움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모님에게 솔직히 이 사건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큰 위기를 겪은 후에 부모님에게 너무 많은 부담과 상처를 안겨드린 저 자신이기에 말씀드리면 기도는 더 해 주시겠지만, 또 어머니는 백방으로 돈을 알아보시겠지만... 제가 부모님 속을 너무 많이 상하게 해서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돈을 다 갚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30일날 오후에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글을 적는데 엄청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물론 제자가 빌려 준 200만원의 힘이 있었기에 제가 위기를 넘어올 수 있었지만, 참 그때 희한하게도 자녀장려금이 지급되는 기간이라 굉장히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랏돈이 이렇게 힘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것을 또 한번 느끼기도 했습니다. 

 

 

 

빚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

저는 개척교회 목사이지만, 경제적으로 굉장히 열악한 개념을 갖고 살아온 것을 처절하게 느끼면서 회복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먹이시고 입히시고 생활하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물론, 빚을 다 갚으려면 넘쳐야 하는 상황입니다만. 그게 인간의 욕심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빚은 무조건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또 다시 하게 되었는데요. 차근차근 소액을 갚아 나간 9월달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힘들면 기도가 막힐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위기, 파산의 위기가 왔을때 목회를 접어야 하나?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에 대전까지 가서 화물차 운송에 대해서 상담까지 받았는데요. 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언젠가 제 친구가 다윗과 요나단처럼 서로 2개월째 심각하게 의지하게 하다가 갑자기 떠나갔는데요. 위기의 순간에 제가 모든 것을 포기할까봐 갑자기 뜬금없이 중학교 동창이 스타벅스 커피쿠폰을 제 생일날 보내주는 겁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세월이 얼마나 지났을까? 30대에 잠시 다시 만났던 그 친구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갑자기 커피쿠폰을 보내주는데요. 그 친구랑 그 날 이후 2달 동안 계속 교제했습니다. 그 친구는 죽음의 순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친구였는데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 친구는 하나님이 떠나게 하시더군요. 떠난 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저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너무 희한한 것은 그 친구가 떠났을 때 제가 다시 기도를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무슨 기도를 회복하고 자시고 하냐?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 있을 수 있겠죠. 사람이 너무 큰 위기나 고통과 아픔에 놓이면 말문이 막힐 수 있습니다. 기도가 막힐 수 있습니다. 정말 밑바닥에 밑바닥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회복이 필요합니다. 저는 몇년 전의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중학교 동창인 J를 통해서 회복시켜주시고 딱 떠나게하셨습니다. 사람을 너무 의지하면 안 되니, 홀로서기를 해야 하니 그렇게 떠나보내시더군요. 

 

 

스스로 구원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선택의 자유에 대한 책임도 지라'는 말씀

고통의 순간에 서 계신 분들이 계신가요? 지인과 친구들, 가족의 담보와 보증 빚 때문에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이 계신가요?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잘못된 책임질 일에 대해 회개하시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스스로 구원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인격으로 만들어가시기 위해, 우리의 성품도 성품이지만 우리의 경제개념도, 우리의 통합적인 모든 면에서 온전하길 원하시고 책임지는 존재가 되시길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면도 강제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선악과를 만지기만 해도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전기충격이 온다던가 바이러스가 감염되서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하는가? 순종하는가 하지 않는가? 지켜보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는 '선을 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 책임은 바로 '동산에서의 추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지을 수 도 있는,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선택의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도 우리의 선택의 문제, 마찬가지로 책임도 우리의 책임

천국과 지옥의 문제도 동일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소유했다면 천국이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삶을 살았다면, 아무리 재벌이고 영재이고 인플루언서이고 학자이고 인기있는 스포츠천재라도 그 사람은 지옥인 것입니다. 왜냐구요?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 선택의 부분에 있어선 '스스로 구원하라'는 메시지가 어울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오는 것이긴 하지만,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부분에선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해서 구원해야 합니다. 누가 선택해주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이런 측면에서 굉장히 합리적인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카톨릭에서 선행이나 헌금을 많이 하면 연옥에 있는 자들이 천국에 갈 수 있고, 그 반대이면 연옥에 있는 자들이 지옥으로 추락하는 그런 행태를 거절합니다. 기독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스마트합니다. 100년 되는 인생에서 쇼부를 봐야 합니다. 불교에서처럼 순환론적인 세계관과 가치에 의해 이번 생에 잘 못 했으면 다음 생에 잘하면 되지, 뭐 그런 것 없습니다. 그게 좋다면 그걸 믿으세요. 하지만 기독교는 현세, 지금 살고 있는 인생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누가? 바로 당신 자신이, 우리 자신들이 해결해야 합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굉장히 어리석은 모습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허락하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시고 나서는 굉장히 스마트하게 그를 높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그 곳에 하나님의 스마트한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으면 당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의 경제적인 찌질함도 참 ugly하지만, 당신의 선택의 찌질함의 ugly함에 애통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찌질해도, 우리 하나님은 찌질하시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찌질해도, 우리 하나님은 찌질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가 굉장히 찌질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도우시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찌질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제가 페라리를 타지 않더라도, 제가 롤렉스를 차지 않더라도, 제가 루비통 같은 명품을 소유하지 않고 명품아파트나 대단한 가문이나 재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류가 노래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고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그 반열에 들어서시길 소원합니다. 

 

가난은 자주 찌질하고 구질구질하고 불편하고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난에 처한다는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또 볼 수 있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성품을 또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서 감사한 것 같습니다. 저처럼 온실 속의 화초로 살아왔던 제게 이런 바닥을 치는 경험은 너무 참담하지만, 그래도 기도를 통해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구원하라'고 메시지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깊게 체험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왕의 재정>의 김미진 간사님이 언젠가 보증과 담보에 대한 이와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스스로 구원하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간사님은 당시 직장이었던 안경점을 출근하면서도 늘 도시락을 사 들고 다녔고 반찬은 늘 김치만 싸서 점심시간에는 냄새날까 봐 밖에서 숨어서 먹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고난도 하나의 방편

사람마다 다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르고 상이해서 그 고통의 절대값을 매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에서도 저의 이런 이야기가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위기같지도 않은 일라고 쉽게 치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절대값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어떤 고통이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더 깊이 만나고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우리 스스로 잘 먹고 잘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그걸 염두해 두신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진전이 있고 발전이 있죠. 하나님과 인간, 우리와의 사이도 새로워지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 새로운 자극제와 촉매는 '고난'인 것입니다.

 

  •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만나길 원하십니다. '스스로 구원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 없이,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스스로 구원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해나 착오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과 유익이 되었음 합니다.

 

 

오늘은 잠언 6장 1-5절의 본문을 가지고 '스스로 구원하라'는 주제의 포스팅을 했는데요. 이 글은 타인의 빚 보증이나 담보를 서서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하신 말씀임을 강조하면서 제 개인적인 경험을 같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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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5장 13절,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라

잠언 25장 13절을 토대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라'의 제목으로 한 설교입니다.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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