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5장 13절을 토대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라'의 제목으로 한 설교입니다.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워털루 전쟁 때 영국군에서 적의 토치카에 접근하여 폭탄을 던질 두 용사가 선발되었습니다. 두 용사가 큰일을 완수하고 돌아와 상을 타기 위해 웰링턴 장군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병사는 태연자약하게 늠름한 얼굴로 있었는데, 다른 병사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웰링턴 장군은 떨고 있는 병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나이는 무서움을 알고도 나아갈 수 있는 병사다. 저 병사는 평소에는 겁쟁이나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대담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사나이다. 나는 저처럼 명령에 충실한 사나이가 있는 것을 보고 최후 승리는 영국이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자의 임무는 자기를 보낸 주인의 뜻을 제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사자는 자기의 생각이나 말을 전하지 않고, 오직 주인의 뜻과 말을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주인의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이해하고, 주인이 전하라고 지시한 말을 충실하게 전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추수기의 얼음냉수에 충성된 사자를 비유하고 있다. 무더위가 작열하는 추수기에 얼음냉수, 정말 너무나 차가워서 무더위까지도 날려버릴 만큼의 얼음냉수! 외부의 무더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내부의 얼음냉수가 있기에 전혀 오히려 몸도 마음도 시원한 것을 잠언 기자는 표현했다. 성경은 충성된 사자를 ‘얼음냉수’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정말 자격도 없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충성 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다’(딤전 1:12)고 했다. 비천한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불충성스러운 나를 직분의 자리로 부르셨고 이제는 말씀하시기를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 4:2)이라 하였다.
‘충성’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충성’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설명한다. 자기 마음에서 진정으로 나와서 하는 그것이 ‘충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헬라어로 ‘충성’이란 단어는 ‘피스티스’이며 그 어원은 ‘페이쏘’다.
신약 원어 성경에서 ‘페이쏘’란 말을 찾아보면 가장 많이 쓰이는 의미가 ‘믿다’라는 뜻인데, 성경은 믿음이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온다고 말한다(롬 10:17). 그러니까 성경적인 충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는 데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뜻이 된다.
신약성경에서는 ‘피스티스’를 ‘충성’으로 번역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믿음’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믿음과 충성이 같은 의미이며, 그래서 믿음 없는 충성이 있을 수 없고 충성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충성과 믿음은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는 것에 뿌리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는 충성이 마음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만으로 그것이 충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왜 그 일을 하는가?’ 마음의 동기를 보신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겉으로 근사하고 충성스럽게 외식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깊은 마음의 동기를 보신다는 것이다.
문희곤 목사님이 너무 답답한 나머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물었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시원하신데요? 제가 뭐를 했다고요?”
이렇게 물었더니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응답을 주셨다.
“네가 사역을 얼마나 잘하는가는 다음 문제고 넌 지금 내가 있으라는 곳에 있지 않냐. 내가 있으란 곳에 아직도 있는 네가 나를 시원케 하는구나!”
그 말씀은 잠언 25장 13절의 “추수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는 그것이었다. 이렇게 추악한 내가 ‘하나님을 시원케 한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에 쌓였던 응어리와 원망과 불평과 어려움이 눈 녹듯이 녹았다. “아, 시원하다!” 이 한마디에 나는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9가지 성령의 열매에서 등장하는 충성(πιστις, faith, faithfulness, 믿음, 충성, 성실)은 ‘사랑의 습관’(love's habit)이다. 충성이란 남들로 하여금 자신을 신뢰하거나 의지할 수 있게 만드는 속성이다. 나는 오히려 이 본문(눅 16:10-12)이 더욱 우리의 가져야 할 충성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만든다.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우린 충성을 아주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전부 큰 것을 선호하고, 다양한 것, 화려한 것, 멋진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에게 ‘작은 것에 충성할 것’을 선호하게끔 말씀하신다. 세상이 추구하는 그 모든 대형마트의 ‘대형’, 백화점의 비싼 ‘명품’, ‘화려하고 값진’것들! 대박과 대형과 대궐과 같은 집, 대기업의 대...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함’이 ‘큰 것에도 충성함’의 기초임을 말씀하셨다. 우리는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에 빠르고 행동하기에 민첩한가?
충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는 것 / 충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추수기에 얼음 냉수처럼 하나님께 충성된 사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도 소홀히하지 않고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 맡기신 그 분께,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신 그 분께 더욱 충성되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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