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이사야 62장 6-9절의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중보 기도자를 찾으십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인데, 왜 중보기도자가 성벽 위의 파수꾼인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중보 기도자들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시고 역사하셨던 일화들을 같이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Prologue...
소련이 공산화된 다음에 교회는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련이 무너지기를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 그런데 외면적으로 보기에, 기도가 응답되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공산주의는 더 팽창되는 것 같아 보였다.
1917년에 시작된 공산주의가 한 세기를 지나기도 전에 세계의 반을 붉게 물들게 하고, 이제 나머지를 삼키려고 하였다.
‘언제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방치해 두실 것인가?’
소련 비밀경찰KGB이 믿은 사람들만을 전문적으로 색출해서 집회를 막아 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들의 몽둥이는, 때리면 겉으로는 멍이 하나도 안 들고 속으로 병이 드는 특수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 교회는 견뎌 왔다.
80년대로 넘어갈 때에 그 핍박은 더욱 심해졌다. 어둠은 더 짙어져 갔기 때문에 견디기는 더욱더 어려웠다. 그럴 때, 모스크바 상공에 손이 하나가 나왔다. 30분 동안이나 하늘에 글씨가 씌어지고 난 뒤, 세 시간 동안 그 글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이제 곧 너희 구원 가운데 나타낼 것이라”
주님께서 지하 교회에 믿음을 지키라, 끊임없는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소련의 지하교회에 하나님이 보여 주신 내용은 마치, 다니엘에게 보내신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70년 후에 돌이키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공산치하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다. 그 말씀을 하실 때는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무엇인가 서광이 비치고 있는 때가 아니라, 공산주의가 더 흥왕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들을 위로하시고 “내가 너희를 70년 만에 돌이키겠다”고 하신 것이다.
소련의 중보기도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다니엘이 기도한 것 같이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기도한 것도, 감정으로 기도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그 일을 한 것이었다.
볼세비키 혁명이 시작된 때가 1917년이다. 그리고 제정 러시아가 멸망하고, 공산주의 소련이 등장한 것이 1920년이다.
마침내, 1987년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외치며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끝마치겠다고 선언했다. 1990년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아직도 생생한 기억에는 한 글자가 있었다.
“소련 사망!”
국민일보 1면 상단에 검은 배경에 흰 글자로 ‘소련 사망’이라고 씌어 있었다. 마침내 소련의 철의 장막이 붕괴된 것이다. 87년에서 90년에 이르는 3-4년 동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바벨론에서 돌이킬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시편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의 상황이 그러했다.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에 반대하던 군부 쿠데타가 옐친과 러시아 시민의 손에 의해 좌절되었다. 소련 연방의 붕괴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면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끝이 났고 소련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뉴스를 보고 듣기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바로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중보기도자들이다.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 주시고,
먼저 보게 하시고, 그리고 기도하게 하셨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중보기도자의 서야 할 자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중보기도자가 있어야 할 위치는 바로 ‘성벽 위 (On the wall)’이다.
“내가 너희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웠다”
이사야는 중보기도자를 파수꾼에 비유하고 있다. 파수꾼이 성벽 위에 있는 이유는, 성벽 위라야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미리 볼 수 있다. 파수꾼은 성벽 아래 있는 사람보다 멀리 볼 수 있고, 미리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중보기도자가 파수꾼같이 성벽 위에 있다는 것은, 중보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은 성벽 위에 두시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시야가 넓어져서 멀리 바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훨씬 먼저 보게 되는 것이다. 소련의 공산주의의 사망을 미리 보았던 사람들은 중보기도자였다.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중보기도자가 중보기도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특권이요 영광이다.
(암 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의 일을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이 다 이뤄진 뒤에 알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것을 하시기 전에는 미리 아는 사람이 있다. 후자가 바로 중보기도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미리 보게 하신다. 성벽 위에 있기 때문에 파수꾼이 미리 보고 또 멀리 보듯이, 중보기도자에게 먼저 보이신 후에 하나님은 행하기 시작하신다.
예를 들면,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을 때,
다니엘은 하나님의 일을 알게 되었다. 예레미야는 두 번에 걸쳐 하나님의 일을 예언한 일이 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가 되기 직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하시기를, “이제 너희가 포로로 잡혀 갈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과 함께 “포로로 잡혀 가지만 70년 만에 돌이키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세월이 지난 후,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을 때, 그 부분을 읽게 되었다.
(렘 29:10)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참조; 렘 2:11-12).
하나님이 70년 뒤에 돌이키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이야기였겠지만, 다니엘은 그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셔야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 후에 다니엘은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단 9:1-단 9:2] (1)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2)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70년이라 하신 말씀은 다니엘이 계산해보면 아직 몇 년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될 일이었다.
단 9:3에 보면,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다. 이것이 다니엘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3)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예레미야, 다니엘 모두 기도하는 자였다. 우리들도 기도하는 그 반열에 서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도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겔 36:37)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그래도’이다. 왜 그래도인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도장까지 확실히 찍으셨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시점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일 이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종들에게 먼저 보여 주신다. 하나님의 종들이 그것을 가지고 중보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들에게 보이신 다음에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형식을 취하시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교회-중보기도자-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중보기도자도 주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역사를 바꾸어 나가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지만, 하나님은 어린 양의 신부인 교회를 통해서 역사를 함께 바꾸어 나가고자 하신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은 교회에 영광의 상을 주고자 하신다. 주님 혼자서 계획을 세우시고 혼자서 그것을 성취하신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찬송밖에 할 일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먼저 비전과 계시를 보여주시고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역사의 재창조의 주인공으로 부르셨지, 방관자나 구경꾼으로 부르신 것이 절대 아님을 기억하라!
우리나라의 1907년의 부흥 운동도 조선에서든 미국에서든 아무도 믿지 못할 하나님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셨다. 이 민족이 우상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된 것은 기적이요, 그 당신 사람들의 눈에 실현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과 눈높이를 맞춘 사람, 바로 중보기도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성벽 위, 그곳은 바로 비전(Vision)의 장소이다.
중보기도의 사이클...
Epilogue...
네비게이토의 창시자, 도슨 트로트맨(Dawson E. Trotman)의 일화
그는 매일 친구와 함께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와서 언덕에 있는 작은 동굴로 갔다. 그리고 조그만 미국 지도를 걸어 놓고 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주신 것은 미국에 있는 당시의 50개 주에서 젊은 사람들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슨 트로트맨은 그들을 훈련시켜서 그들을 온 땅으로 보낼 비전을 위해 매일 아침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이 보여 주셨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앞에 50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했다.
그에게는 아직 네비게이토를 창설한 일꾼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이 되니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큰 확신을 주셨다. 더 이상 그렇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짐이 없어졌다. 미국의 50개 주를 바라보고 기도할 때마다 마음에 큰 짐이 있었고 이루어 주시기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다 이루어졌다는 확신이 들고 무거운 것이 없어졌다. 그 다음부터 그는 감사하면서, 세계지도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네비게이토 간사들이 있는 명단 파일을 보는데, 놀랍게도 미국의 50개 주에 빠짐없이 간사들이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트로트맨이 가졌던 그 자세는 우리가 중보기도를 할 때 가져야 할 자세이다.
성벽 위, 그곳은 바로 비전(Vision)의 장소이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십니다...
이사야 62장 6-9절의 본문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십니다'라는 주제로 중보기자는 성벽위의 파수꾼이며,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먼저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알기에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자이며 이런 자를 하나님은 지금도 찾으신다는 메시지를 이야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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