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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새로운 삶의 길

새로운 삶의 길④ 롬 7장 14-25절, 두 가지 성품

by Message.K 2021. 11. 20.

 

[롬 7:14-롬 7:25]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15)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16)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17)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19)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20)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쉬운 성경)

14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영적이지 못하며, 죄의 노예로 팔린 몸입니다.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하지 않고, 미워하는 일을 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원하지 않는 것은,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17 그런데 이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며, 내 안에 살고 있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안에, 다시 말해서 나의 죄악된 본성 안에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바람은 내게 있지만, 선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19 나는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20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다면, 그 일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살고 있는 죄입니다. 21 그러므로 나는 이런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은 나에게 있지만, 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22 사실 나의 속 중심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23 그러나 나의 몸의 여러 부분들에서는 다른 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몸에서 작용하고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내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반면, 죄악된 본성으로는 죄의 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l   서론…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인간 안에 두 가지의 인격, 성품, 캐릭터가 있음을 구현한 영화로 유명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소설-인간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다. 한 인간 안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공존하는, 선과 악이 양존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l   본론…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모든 사람 안에 두 가지의 성품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성경의 사실을 배우고FACT, 그것을 믿음으로FAITH, 기쁨을 누린다는 것FEELING은 확실한 일이다. 하지만 신앙 생활이 그렇게 쉽고 즐거운 일만이 넘치는 오색찬란한 무지개 꿈만으로 계속되는 것은 아님을 오늘은 같이 나누고자 한다. 때로는 마음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심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내 안에 이러한 갈등과 아픔과 고민들이 있는 것일까? 내가 고백한 신앙과 믿음과 영접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인한 착각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중적인 마음을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꿰뚫어볼 수 있고 사람이 가진 한계를 바로 알 수 있고 말 그대로 성경이 보여주는 바대로의 ‘나’를 아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육신의 의미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계속해서 좌절과 실망을 겪고 갈등에 휩싸이는 것은 중생 이후에도 우리에게 옛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옛 성품이 성경에는 육신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이 말은 물론 신체physical body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성경에는 육신이라는 말에 대해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먼저,

(골 2: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과 몸으로는 떠나 있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인데 여기서의 육신의 말 그대로 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는


 (롬 8: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나님과 반대가 되는 것은 바로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영이라는 것이다. 이 육신의 생각은 우리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을 주장하려는 의지이다. 선악과를 따먹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보자. 사탄이 지배한 뱀이 그들을 꼬셨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기만 하면 너희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똑 같이 능력 있는 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따먹으라!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사단이 꼬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육신의 생각,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깊은 욕망에 의해 넘어지고 말았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육신’, 두번째의 의미이다. 성경은이 육신이 우리의 영적인 갈망과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를 보여주는데,

(갈 5: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옛 성품의 정체

우리는 우리 속에 두 가지의 성품이 남아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 육신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

(렘 17: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죄는 마음의 질병, 죽음에 이르는 병



(롬 8: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즉 이처럼 우리의 육신은 무엇으로도 개선될 수 없다. 또 중생하고 영접했다고 해서 옛성품이 없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선한 것, 선을 행하는 것, 여기서의 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롬 13: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여기서 옷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 그 분을 신뢰하고 닮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죄를 지은 후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는 나뭇잎으로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들을 가렸다. 하지만 이 나뭇잎은 햇볕을 받으면 얼마 있지 않아 말라 버리고 만다. 그 때 하나님은 가죽옷을 만들어 지어 입히셨다. 하나님은 탁월한 디자이너셨다. ㅋㅋ 이 가죽옷은 신약성경에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는 매일 예수님으로무장해야 한다.

 중생 이후에도 육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패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거듭났던(구원이 확신이 있었던) 사도 바울까지도 이렇게 말한 것이다.




새로운 성품

이러한 옛 성품, 즉 육신과는 반대로 중생을 통해 한 편으로는 새로운 성품이 주어진다.

(벧후 1: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사도 베드로는 믿게 된 사람들이 어디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바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참예하다는 것은 신의 성품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image을 반영하는 일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옛날에 사람을 납치하여 칼로 조각조각 내고 그 사람고기를 먹었던 지존파를 알 것이다. 우리는어떻게 그러한 잔인한 일을 행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한다. 그 사람들은 악의 표상으로 사단이 특별하게 조종한 것도 있지만 우리 인간 안에는 이러한 잔인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죄의 성품인 것이다. 하지만 그 지존파의 한 사람이 예수님을 감옥에서 믿고는 변화 받아 사형 받기 전의 몇 년의 세월은 변화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지존파의 예는 인간 안에 있는 두 가지 성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지존파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 성품에서 신의 성품에, 새 성품에 참여하게 됨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 새로운 성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태어날 때 아담의 자손으로 옛 성품을 지니게 되었다. 거듭날 때 하나님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요일 3: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사도 요한은 이 새 성품을 무어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씨’라고 한다. 이 새 성품이 결코 하지 않는 일은 무엇인가? 범죄하는 것이다. 범죄하는 것은 옛 성품이 하는 짓이다.


(롬 7: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하나님의 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벧전 1: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우리가 진리에 순종함으로 형제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러나 이렇게 새 성품이 죄를 짓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형제를 사랑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성품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이러한 긴장과 갈등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해결할 수 있다.


(롬 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바울이 승리한 비결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이 법은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하셨다. 죄와 사망의 법이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사망에서, 죽음에서 부활을 만드셨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정복하였음뜻한다. 새 성품이 옛 성품을 정복하였음을 의미한다.





l   결론…

어거스틴 이야기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은 354년 11월 13일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Numidia)의 비옥한, 히포(Hippo, 지금은 Bonna)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타가스테(Thagaste, 현재는 Souk-Ahras in Algeria)에서 태어났다. 타가스테는 당시에 행정적으로 카르타고(Carthage)의 영향아래 있었지만 누미디아의 옛 왕국에 속했다. 타가스테는 문명이 발전된 도시였다. 그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는 중간 계급에 속했고 그 마을의 로마 행정기관에서 일했다. 그는 신앙과 도덕에서 이방인이었다. 어거스틴의 모친 모니카(Monica)는 경건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역사 중 가장 훌륭한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지성과 영적 경건을 함께 겸비한 여성이었다.



어거스틴은 소년시절, 배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놀기를 좋아하며 그로인한 채벌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자신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시절에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학교에서 매를 맞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소년시절 공놀이와 연극을 좋아하여 부모님의 훈계와 자신의 학업을 소홀이 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정교사나 학교의 선생님들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였으며 이는 결국 놀기를 좋아하고 세속적 구경거리에 정신을 빼앗겨 열심히 배우들을 흉내 내고, 탐심의 노예가 되어 부모님의 장롱이나 책상에서 물건을 훔쳐서 자신보다 놀기를 더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훔친 것들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으며, 친구들과 어울릴 때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비열한 속임수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갑작스런 위 복통으로 거의 죽을 고비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를 고백하며 죄의 용서함을 받고 건강이 회복되기를 원하여 세례를 받을 것을 원했으나 세례를 받은 후에 지은 죄는 더욱 치명적인 죄악이 될 것 같아서인지 하나님은 그 세례를 미루셨다고 그는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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