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갈 5:22-23, 구원의 확신(주관적 증거)
[갈 5:22-갈 5:23]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Prologue…
어느 사형수가 죽기 며칠 전 대통령의 특사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사형수는 그 특사명령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감옥에서 풀려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형수가 자신의 죄를 탓하며 그 대통령의 특사를 믿지 않고 자신의 곧 죽을 운명이라며 거짓말하지 말라며 더 큰슬픔에 빠져 감옥에서 나가기를 주저한다면 어떻께 될까?
우리의 구원, 구원의 확신도 마찬가지이다. 지난주에 우리가 같이 나눈 말씀은 바로 사형수에게는 대통령 특사와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향하여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 그 구원을 확신하는 데에는 2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였다.
무언가?
첫번째 하나님의 말씀, 두번째 삶의 변화이다.
지난주에는 구원의 확신의 객관적인 증거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배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가? 아는 사람? 선물이 있다. 3중적인 확신이라고 하였다. 힌트, 삼위일체!!!
-성부 하나님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성령님의 인치심
그렇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구원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흔들릴 수 없는 견고한 말씀의 증거가 바탕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 2번째 시간으로 ‘삶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다.
오늘은 우리가 구원을 확신하는데 있어 주관적인 증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구원을 확신 받긴 받았는데 개인적인 내 생활 가운데는 어떠한 변화가 있는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먼저 구원의 확신-생활의 증거(주관적인 증거)에는 무엇이 있는가?
첫째, 주되심의 고백 이다.
(고전12: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께서 신자로 하여금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은 바로 ‘성령’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나서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크고도 엄중한 저주를 받은 자’라고 비난했다. 왜냐하면
(신 21:23)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십자가처형을 해 놓고서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에 저촉되는 저주의 형벌이라면서 예수님을 대적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이중적인데 인류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나무 십자가 형틀에 죽임을 당하여야 마땅하였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받으신 하나님의 저주는 곧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몸소 짊어지고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주님으로 부른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은 후 예수께서 자신의 주인이 되심을 입술로만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고백하고 인정하게 된다. 이것을 ‘주되심Lordship’이라고도 한다.
두번째, 구원의 확신의 주관적 증거는 관심사 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롬 8: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영을 좇는 사람은 무슨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나? 그렇다.
구원을 받고 난 후에는 이전에 즐기던 세상의 일보다 영적인 일(말씀을 읽는 것, 묵상하는 것,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 교제 나누는 것, 그리스도인과 함께 모이는 것,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 등)에 더 관심이 쏠리고 추구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여러분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나이가 어려서, 잘 몰라서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 관심사가 달라져야 한다. 성경을 읽고 때때로 기도시간을 가지고 교회에 자주 자주 모이고, 가끔 친구에게 전도를 하는 것을 통해 여러분은 예전에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영의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믿지 않는 친구들을 보라. 그 친구들에게는 ‘영적인 관심’이 없다.
여러분들도 그러한가?
그러면 여러분들도 구원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일주일에 성경을 몇 장 읽고, 년 중 성경을 몇 독 하느냐 의 양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우리가 영적인 일을 양으로 승부한다면 그것은 구원이 선물이 아닐 것이다. 구원은 선물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면 우리 맘 속에 영적인 욕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싶은 마음, 말씀을 계속 접하지 못하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가슴에 무언가 맺힌 것 같고 그러다가 수련회나 어떤 계기를 통해 말씀을 듣고 기도를 좀 하게 되면 눈물도 흐르고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그런 느낌 받아 보지 않았는가? 바로 그러한 일들이 ‘영의 일’, ‘영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영적인 갈증과 갈망’이 생길 때 그것을 억제하시지 말기를 바란다. 누르고 누르면 고갈된다. 그러기에 그 영적인 욕구와 충동이 일어날 때, 기도하고 말씀보고 전도하고 자주 교회에 모여 교제를 나누기를 바란다.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화분의 화초라 하더라도 햇빛을 받지 않으면 언젠가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분 앞에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시들어버린다. 우리의 영혼이 시들지 않도록 늘 활력과 생동력이 넘치도록 말씀과 기도와 교제와 찬양과 전도로 가꾸어가길 바란다.
세번째 구원의 확신의 주관적 증거는 성품 이다.
[갈 5:22-갈 5:23]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책망하셨다. 성령께서는 신자의 성품에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신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한 신자의 구원이 사실이라면 그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생활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은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늘 가까이하면 그 사람은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지나면서 1년, 2년…10년, 20년 지나면서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변화가 바로 성령의 열매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옛날 괴팍하고 못된 성격 그대로라면 그 사람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셨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 예수님의 성품’을 하나씩 하나씩 닮아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우리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된다.
컴퓨터, 스마트폰 하는 것에 많이 몰입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의해 우리의 인격이 형성된다. 특별히 청소년기에 더욱 그렇다. 여러분은 아직 모든 것이 백지상태와도 같은 순백한 상태이다. 무엇을 쓰던지 그대로 써지는 시기이다. 이 때가 중요하다. 과거에 폭력 비디오나 음란 비디오물을 본 학생이 그 내용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리하여 결국 그러한 범죄를 자행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너무 깨끗하고 맑기 때문에 성인들이나 어른들 보다 자극적인 것이 더 잘 먹힌다. 그래서 그것이 여러분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을 스스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내가 그걸 지금 원하니깐, 느끼니깐.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새 나갔는데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무엇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이 그것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 특별히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예수님에게 영향을 끊임없이 받으라.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고 예수님은 여러분을 이 세상 최고의 VIP(Very Important Person)로 대우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자!
이처럼 우리가 구원받은 표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생활의 전영역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성령->주되심을 고백, 성령->영의 일에 대한 관심사, 성령->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심.
이처럼 구원의 확신에 대한 두 가지 증거, 즉 객관적 증거와 주관적 증거는 상호 보충적이다. 우리의 신앙이 견고해질수록 이 증거도 뚜렷해진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주되심을 고백하는가? 영의 일에 관심이 있는가?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가?
이러한 구원의 확신에 대한 증거가 있지만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 증거를 우선 감정적인 변화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구원을 받았다면 왜 기쁨이 없나?’, ‘왜 감정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가?’, ‘남들에겐 있는 것이 내게 없다면 내가 어떤 점에서 잘못된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구원받을 때 이렇게 느꼈다’, ‘눈물이 솟구쳤다’ 등의 체험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찾아오는 표준적인 증거는 아니다.
사람의 개성과 당시의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를 수 있다.
또 감정의 변화는 구원받은 사실에 잇따라 생기는 법이지, ‘기쁨이 생긴 다음에 구원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 4:50)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신하가 아들의 회복을 확신한 근거는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다.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어떤 감정 변화를 중요시하지 않고,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신실성을 의뢰했던 것이다. 아들이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큰 기쁨이 생겼으리라는 것은 쉽사리 추측할 수 있다(요 4:53 참조).
이 경우
-아들이 회복된 사실FACT,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FAITH,
-회복된 것에 대한 기쁨FEELING
-이 세 가지에는 논리적인 순서가 있다.
사실FACT: 객관적인 사실의 진술-아들의 회복.
믿음FAITH: 그 사실을 신앙으로 수납-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
느낌FEELING: 이에 따른 전인격적인 행복감-신하의 기쁨.
즉 신하가 기뻤기 때문에 아들이 회복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기쁨이 찾아온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구원에 있어서도, 구원받은 기쁨은 구원받은 사실에 뒤따라 생기는 법이지, 선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FACT: 요 5:24, 10:28.
믿음FAITH: 내가 구원받고 영생이 있음을 믿음.
느낌FEELING: 행복, 만족, 기쁨, 감사, 찬양.
한 인간이 자신의 출생 사실과 출생일 등을 추호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감정의 충만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부모의 말을 의심 없이 믿고 호적에 기록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의 기쁨은 사실->믿음->느낌 의 순서를 떠나서는 생기지 않는다.
질문?
믿음의 궁극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1.하나님 말씀 2. 자신의 체험이나 감정 변화(믿음의 결과) 3. 간증과 전도(믿음의 표현)
우리에게 주신 구원에 대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성령의 인치심으로 객관적인 증거를 얻었고, 주되심의 고백, 관심사, 성품으로 주관적인 증거를 얻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구원의 확신까지도 주신 예수님을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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