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장 19-30절을 텍스로 하여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라는 제목으로 한 설교이다.
이만재의 ‘교회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가기 싫은가 에 대한 이유를 77가지로 추려서 밝힌 책이다. 이 책은 비판하면서 동시에 과연 교회가, 기독교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대안을 세우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경우,
1. 노방전도의 모습이 싫다.
2. 여유가 없다.
3. 말 많은 전도사가 싫다.
4. 부자 교회가 싫다.
5. 믿을 건 나 자신뿐이다.
6. 술 담배도 아예 못하는 것이 싫다.
7. 종교가 미신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8. 타 종교 타종파에 대해 너무 배타적이다.
9. 종교 없이도 별 불편함이 없다.
10. 부모님이 반대하신다.
11. 조용한 교회가 없다.
12. 교인 아니면 다 사탄인가?
13. 기독교는 외래문화이다.
14. 광신도들의 광적 행태가 무섭다.
15. 허황된 성경 이야기를 어떻게 믿겠는가?
16. 팔자 편한 사람들의 교회지.
17. 동정녀 마리아 잉태가 이상하다.
18. 건축헌금이 무섭다.
19. 세상 문화를 사탄으로 매도하다니.
20. 무교회 종교론에 공감한다.
21. 꼭 교회에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22. 광란의 기도원 풍경이 혐오스럽다.
23.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는 거짓말이 싫다.
24.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못 믿겠다.
25. 종교생활로 말미암는 각종 제약이 싫다.
26. 교회의 요구사항이 뻔하다.
27. 무전여행 때 냉대 당했다.
28. 목사 결혼 세속적이다.
29. 현찰로 돈 내면 천당서 갚는다고?
30. 유흥업 하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겠는가?
31. 부흥회 가보고 어이 없었다.
32. 형제 자매 장로 집사 호칭이 싫다.
33. 가정 파괴 광신도를 봤다.
34. 세무 조사 반대 이해할 수 없다.
35. 양보 모르는 압력 집단이다.
36. 죽은 후 천당에서 영생한다고?
37. 붉은 십자가가 너무 많다.
38. 개척 교회의 과잉 경쟁이 싫다.
39. 신체 장애 때문에 안 간다는 등의 이유가 열거되고,
이어서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의 경우,
40. 각종 모임 참석에 대한 강요가 많다.
41. 기업화된 교회의 위화감이 싫다.
42. 빈민 구제를 외면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43. 교회에 쓸 만한 총각이 없다.
44. 감사할 줄 모르는 탐욕 메커니즘이 싫다.
45.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을 보지 못했다.
46. 교회는 또 하나의 계급 사회이다.
47. 교회는 고리타분하다.
48. 양보없는 일등주의 세속성이 싫다.
49. 세상과 타협하는 기회주의가 싫다.
50. 교인들은 재미가 없다.
51.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겁준다.
52. 헌금 명단 공표는 속 보인다.
53. 일요일에 늦잠 잘 수 없다.
54. 자유로운 모험 정신을 억압한다.
55.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56. 목사 수준이 낮은 것 같다.
57.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나?
58. 교회의 종파 분쟁을 이해할 수 없다.
59. 이중 인격자가 많아 싫다.
60. 헌금따라 사람대접이 달라서 싫다.
61. 교회의 단순 논리는 사고력을 퇴행시킨다.
62. 마음 터놓을 깊은 친구가 없다.
63. 진화론을 부인하는 교리를 믿을 수없다.
64. 교회에서 연애를 많이 한다.
65. 엉터리 목사가 많다.
66. 뭔가 달라야 한다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67. 교회 비판 함구는 불문율인가?
68. 사기꾼 목사를 봤다.
69.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
70. 능력 이상의 직분을 강요한다.
71. 꼴보기 싫은 사람들이 많다.
72. 이성 교제 제약받는다.
73. 음치라서 찬양이 재미없다.
74. 지옥 협박 고립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75. 자신의 이중생활이 가책스럽다.
76. 아전인수 자기 합리화 도구.
77. 신분차별 때문에 벽을 느꼈다는 등의 이유들이 열거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간에 때로는 우리의 마음의 좌절과 슬픔과 아픔이 너무 크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를 떠나고픈 유혹을 느낀다. 또한 은혜의 처소이자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떠나고픈 마음이 인다. 정말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머무는 그 처소인데, 왜 내게 이런 낙담과 절망과 상처가 다가오는가 하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하나님을 너무나 신뢰하고 믿음의 삶을 사는데, 뜻하지 아니하는 고통으로 시험당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오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누렸음 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굳건한 마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1.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을 때, 안디옥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죽음)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을 오히려 역으로 바꾸어 이방 선교의 포문을 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박해와 환란이 예루살렘에 둥지를 튼 초대교회의 보금자리를 뒤흔들어버렸다. 그러나 이 환난과 박해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흩어진 성도들, 디아스포라는 19절에 보면 페니키아(베니게)와 키프로스(구브로)와 시리아의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했다. 이 와중에 사마리아 교회와 갈릴리교회가 생겨났늘 것이다(9:31). 구브로와 아프리카의 구레네(에티오피아) 출신의 복음 전도자들이 이제 20절에서는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롬 1:16의 결론이기도 하다.
안디옥은 이 지역의 가장 큰 도시이자 로마의 수리아 속주의 수도이다. 인구는 50만 명 내지 그 이상이었다. 고대에 안디옥보다 더 큰 도시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뿐이었다. 안디옥에는 왕궁과 경마장이 있는 한 섬이 오른 테스 강 한가운데 있었다. 도심에는 수로, 목욕탕, 극장, 신전들(아르테미스, 헤라클레스 신전), 만신전, 카이사 레이온(황제 숭배를 위해 바쳐진 공회당) 등이 있었다. 안디옥은 주기적으로 올림픽 형식의 경기를 개최했다. 이 안디옥에서도,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전도자들의 사역은 엄청난 치유 기적과 복음 증거 사역을 동반했다. 바로 주의 손이 함께함으로(21절) 영적 권능, 축사, 치유 기적을 일으키는 영적 권능의 근원이었다. 그 결과 대규모 집단 개종이 일어났다. 안디옥의 헬라인들이 이 거룩한 나그네들이 전한 복음 영적 쇼크를 받고 강력하게 반응한 것이다. 앞에서 이방인 선교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안디옥교회가 설립되게 된다. 우리 교회의 태동도 이런 우여곡절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암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당신의 복음을 확장시키신다.
환란과 핍박이 왔다고 해서 디아스포라, 성도들이 복음 전하기를 멈추었다면 안디옥 교회의 탄생은 꿈도 못 꿀 것이다. 고난이 올 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하다. 고난이 온다고 해서 믿음과 신앙과 모든 생활들을 포기하고 뒤로 자빠진다면 그것은 믿음의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위기를 ‘위험한 기회’라고 다들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위기가 있는가? 그것은 위험한 기회임을 기억하자!
교회가 자꾸 내부로 집중하게 되면, 분열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오히려 내부로 향하는 그 힘을 외부로 돌릴 때 하나님의 역사는 더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머물러있었다면 세계선교의 비전은 없었다.
굳건한 마음이라고 하는 문득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몇 년 전에 여름휴가를 갔었다. 그때 휴가는 주변에 아시는 목사님들을 만나면서 식사도 하고 교제를 나누는 아주 풍성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때 타교단에 계신 선배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선배 목사님의 선친께서 자신에게 늘 당부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목회자가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은 첫 번째 사역한 지 3일을 조심해야 하고, 두 번째 사역한 지 3개월을 조심해야 하며, 세 번째 사역한 지 3년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3일이라 함은 교회 가는 길이 이제 조금 익숙해질 때이기에 조심해야 하고, 3개월은 이제 교회의 풍토나 분위기, 성도들을 조금 익혀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 3년이라 함은 이제 교회에서 장점, 단점을 다 보고 모든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3년을 잘 지내면, 30년까지도 롱런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분, 제가 아직 3년이 안되었다. 3년 차이긴 하다, 기도해달라!
요즘 직장인들은 이직을 잘하는 것 같다. 한 직장이나 한 사업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은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싫어하기도 하고 지겨워하기도 하고 그것을 못 참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이직은 한때 굉장히 비도덕적인 것이며 특이한 것의 상징이었다. 근데 90년대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가 이직을 굉장히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으로 변화시켜버렸다. 한 직장에 오래 있으면 매너리즘이나 타성에 젖을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론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간다면, 이제 점점 자신의 자리와 입지가 점점 커가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는 이력서에 세 번 이상 이직을 안 받아주는 경우도 있다. 직장생활을 15-16년 동안 다섯 번 이직했다면 남은 근무년수는 3년이다. 이직을 사람들은 마지막 나의 최후의 비장의 무기로 본다. 하지만 그건 히든카드가 아니라 쿠폰과도 같은 것이다. 언젠가 소진되면 더 이상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직장 년수의 마지노선을 3년이라고 한다. 3년이 되면 자기 분야의 어느 정도 교육훈련과 조직에 대한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업무성과, 조직 충성도 등 모든 것들이 그래도 숙성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모든 조건을 갖춘 상황 가운데 열심히 일할 사람이 아니라 모자란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할 사람은 조직사회는 원한다. 직장생활 가운데서도 굳건한 마음으로 붙어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꾸 쿠폰 쓰는 거 좋아하면 안 된다. 젊은 때는 혈기라지만 이력은 남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 알바 같은 거 하는 거 보면 우직한 게 없다. 알바를 할 때도 며칠 하다가 가기 싫으면 연락도 한통 없이 무단결근하고 그럼 안된다.
하나님의 영적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조명해보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굳건한 마음으로 붙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려로 하는데 자꾸 부작용이 생긴다. 그때 어떠한 마음? 굳건한 마음!
바나바는 23절에서 한 번 더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개역한글:‘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한다. 그 이전에 흩어진 성도들은 복음에 대한 굳은 결의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태동하게 된 것, 복음의 확장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확대된 것을 기억하자.
2.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기 위해선, 동역의 힘이 필요하다.
23절에서 바나바는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설명을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하고 있다. 아무리 바나바의 개인적인 성향과 능력과 믿음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세계복음화는 그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조차도 혼자서 세계 제패를 못했다. 그는 혼자서 십자가의 사역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셨지만, 세계복음화의 바통을 제자들에게 물려주셨다. 한 사람이 아닌 12명의 사람에게 전수해 주신 것이다(하나 빠진 11+1). 제자들의 바통을 이젠 바나바에게 물려주셨다. 그러나 그 혼자서도 감당하기 벅찬 세계였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바나바에게 참된 동역자를 붙여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 사람이 바로 사울이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각하게 부인하고 핍박했던 자였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도상에서 심각하게 체험하고 만났던 인물이다. 예수가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획을 그은 사울의 가슴이었다. 본문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사울은 다메섹에서의 체험 이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자신의 모든 삶을 재정비하고, 연구하고, 준비하고, 구비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사역을 위해 준비된 자로 여기 있는 것이다. 다소에서 사울을 찾아 안디옥으로 데리고 오는 바나바!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울이 합류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길임을 분명하게 획을 그을 수 있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12 사도의 노선을 따르면서 유대교와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을 급격하게 분리하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신학적으로 분명하였기 때문에 주저할 게 없었던 것이다.
사역에는 독재가 없다. 독불장군, 혼자서 모든 것을 해치워버리는 독불장군은 사역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고, 다양한 은사와 섬김과 헌신이 요구된다. 바나바는 사울과 함께 이제 막 시작한 개척교회와 같은 안디옥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 양육했음을 26절에서 볼 수 있다.
사역에 있어 왕도는 없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는 독불장군은 필요치 않는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려 있으려면,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려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전을 주고, 마음을 같이 하며 동역하는 힘이 필요하다. 동역의 함께함, 동역의 기쁨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직분자들이 다 필요하다.
교역자들만 있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가? 성도 없는 곳에 목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양이 없는데 목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청중이 없는데, 설교자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교역자들은 비전을 제시하고, 장로님들께서는 지도하고 이끌어나가면, 권사님들은 기도로 후원을 하고, 장립 집사님들도 함께 동역하고, 온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동역자의 관계가 필요하다. 마음의 하나 됨이 필요하다.
바나바와 사울... 바나바는 사울에 대한 편견이나 다른 생각이 없었겠는가? 사울은 바나바에 대한 이견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하나 되며 동역할 때, 안디옥교회가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3.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을 때, 모든 이가 하나 되어 문제를 타결하게 된다.
안디옥교회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겼다. 황제 글라우디오 때에 큰 흉년이 있게 되었다. 그러한 경제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행 11:29-행 11:30]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그들의 구제는 ‘그 힘대로’하는 헌신적인 구제였다.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건한 마음으로 모든 성도들이 주께 붙어 있을 때 모든 이가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고 타결할 수 있었다. 복음에 빚진 안디옥 교회는 항상 베풀기를 좋아하는 교회였지만, 온 성도가 하나가 되지 못했다면 구제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교회도 복음에 빚진 교회이다. 이 도시의 소박하고 선한 특성이 우리 교회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선한 복된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회의 교회 됨을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제가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들이 제일 미울 때가 바로 아이들이 서로 싸울 때이다. 사람이 싸우면서 서로 인격과 인격이 부딪히고 서로의 다름을 통해 성숙하고 인격이 다듬어지는 것은 맞지만, 같은 핏줄을 타고 태어난 자식들이 서로 싸우는 것만큼 보기 싫은 것도 없다. 큰 문제로 싸우는 것도 아니다. 장난감을 왜 자기만 가지느냐, 같이 사용하자, 공동으로 사용하자, 아니다 나 혼자만 사용할 거다 이건 내 거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문득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되었는데, 같은 아버지의 가족이 되었는데, 서로 싸운다면 그것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머물러 있으면, 서로의 나눠진 마음들이 하나가 된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들과 더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도 너끈히 감당할 수 있을 줄 믿는다.
1.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을 때, 안디옥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2.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기 위해선, 동역의 힘이 필요하다.
3.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을 때, 모든 이가 하나 되어 문제를 타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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