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라는 사람> 5가지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가 보잘 것 없는 목동 가족의 막내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군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최고의 칭찬인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 알아가 보도록 하자.
(행 13:22)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실 다윗은 외형적인 조건으로 봐서는 그렇게 걸출한 것 같지 않다. 우선 그는 8형제 중 막내였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와서 아들들 중에 왕이 될 사람이 있다고 모이라고 했을 때, 다윗은 아버지가 부르러 보내지도 않을 만큼 사자 같은 형들에 가려 존재가 없는 막내였다. 그가 아직 너무 어려서인지, 아니면 아버지로부터 과소평가 되었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어쨌든 연령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아직 “리더감이다!” 할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히브리 문화에서 막내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별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도 통했다. 그것은 한국 문화와 비슷하다. 장남은 힘든 만큼 인정받고 존중받는 반면에, 막내들은 자유로우나 늘 인정받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그러나 별 볼 일 없는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자라나셨듯이, 사람들이 시선을 주지 않는 곳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난다. 음지의 막내들이여, 자신을 가지라! 막내들이여, 희망과 소망을 가지라. 다윗은 막내였다!!!
1. 자신의 주어진 자리에 성실한 사람
목동: 그는 들에서 양을 치면서 사자와 곰들로부터 양을 지키며 강한 체력을 연마한 전사였다. 하나님의 리더는 필요한 실력을 예리하게 다듬어 둘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그는 약한 양 한 마리를 돌볼 줄 아는 따뜻한 목자의 마음을 가졌다. 지도자는 사람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다. 이용가치가 있1)는 존재만 쓰는 게 아니라, 무기력하고 약한 존재도 품어주는 사람이 지도자이다. 사울은 감정이 격해지면 주위 사람들에게 창을 집어 던지는 난폭한 왕이었던 데 반해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용서했고 자기에게 잘못한 주위 사람들을 용서하고 품어주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시므이의 예-저주의 욕을 한 사람을 그대로 놔둔다.
진정한 영적 리더십은 이렇게 사람을 품어 주는 것이다. 여러분이 사람들 앞에, 하나님 앞에 리더가 되고 싶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잘 품어줄려고 이해할려고 하는지 돌아보라.
사울 왕의 악사: 그는 수금을 다루며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였다. 감성이 그만큼 풍성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리더는 머리로만 사람들을 움직이는 게 아니다. 머리는 사람을 감탄시키지만, 마음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리더에게 따뜻한 가슴, 풍성한 감성의 깊이가 필요하다. 당신의 인생에 찬양이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문학이 있고, 시가 있고, 음악이 있는가? 이러한 부분에 청소년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다듬고 개발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IQ보다 EQ가 더 인정받는 시대 아닌가?
막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다윗은 가족 중 막내라는 자신의 위치에 성실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고 왜 아버지는 나를 제끼려 했냐고 항의하지도 않았고, 별로 뻐지기도 않은 것 같다.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형들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라는 심부름도 열심히 했다. 그는 정말 조용히 하나님의 시간표에 자신을 맡기고 때를 기다린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왕으로 기름 부으신 사람이었는데도, 사울 왕 앞에 처음 불려갔을 때는 왕의 마음을 편안케 하기 위한 악사(요즘 말로는 ‘음악치료사’정도 되겠다)로서 행동했다. “날 뭘로 보고 이런 일을 시키느냐? 나는 당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다!” 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 순간 하나님이 세워 주신 그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성심껏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비전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자신의 교만을 위장한다. 자신은 큰 일을 할 사람이기 때문에 작은 일은 못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요셉은 국무총리가 될 야심으로 노예생활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사랑의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의탁하고, 순간순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이것이 진정 꿈꾸는 자의 자세이다.
목동과 악사와 가족 서열에 이르기까지 다윗의 인생 모든 부분은 하나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우리 인생의 아주 보잘 것 없는 순간순간도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위한 과정이다. 하나님은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을 불러 쓰신 적이 없다. 땀투성이가 되어 고기 잡던 베드로와 요한을 부르신 예수님이다. 내게 주어진 작은 일을 소홀히 않고 성실히 하면 하나님의 큰일에 쓰임 받을 것이다. 어느 선교 단체는 선교사 후보생들의 훈련 과정으로 한 달간 다른 이들의 구두를 닦게 한다고 하는데,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2.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
사무엘은 소년 다윗을 보고, 먼저 “얼굴빛이 붉었다”고 했다. 열심히 초원에서 뛰어다닌 목동 소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헐레벌떡 뛰어온 어린 소년의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얼굴이다. 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이처럼 건강한 얼굴, 열정 있는 얼굴, 생명력 넘치는 얼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땀 흘린 얼굴이 있기를 바란다.
또 “눈이 빼어났다”고 했는데, 예부터 사람의 눈을 보면 대략 그 사람의 인물됨을 알 수 있었다. 눈에 빛이 이글거렸다는 것이다. 밤새 피시방에서 놀다가 아침에 간신히 깨어난, 오전 끝자락에 겨우 깨어난 흐리멍텅한 눈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비전, 생명력, 힘으로 가득 찬 눈이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희미하고 흐리멍텅한 눈이 아니라, 살아 있는 눈을 가지기 바란다.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fine-looking man)이란 단순히 잘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예수의 향기가 인격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남자다움을 그저 강인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착각한다. 스데반의 모습이 예수님 같았듯이, 오늘날 남성들이 예수님의 향기를 풍겨내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요즈음은 애들이 너무 uni-sex 적이라서 남자도 여자 같고 여자도 여자 같고...남자다움이 많이 사라진듯하다. 이런 얼굴을 아름다운 영혼, 예수님 닮은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다윗의 형들의 건장한 체구와 용모를 보고 감탄했던 사무엘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은 사람의 ‘레브’, 즉 사람의 마음(heart)을 본다고 하셨다. 히브리어 ‘레브’의 보다 정확한 의미를 밝힌다면, 지, 정, 의가 함께 깃든 인간의 내면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3. 온유한 성품의 사람
사울은 기골이 장대하고, 자기 능력이 많았지만, 순식간에 권력을 잡고 보니, 성미가 아주 급한데다가, 자기 성미에 조금만 거슬리면 폭발하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이렇게 자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니까, 악신에게 틈을 줘서, 아무 죄 없는 다윗에게 창을 두 번이나 던졌고, 아들인 요나단도 창을 찌르려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차지 않은 사람이 힘을 휘두르면, 그는 포악한 사람으로 변하기 쉽다. 포악한 사람,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리더 옆에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다(어쩌면 그에게 왕에 대한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였다. 선왕이 없었기에 권력이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에 비해 다윗은 얼마나 온유한 성품의 사람인지 모른다. 한 예로, 골리앗과 싸울 것에 대해 다윗이 다른 이들과 얘기하는 것을 들은 형 엘리압이 “네가 교만하고 완악하여 전쟁을 구경하러 왔구나. 이게 애들 장난인 줄 아느냐?”하면서 신경질을 팍 냈다. 그러나 다윗은 형에게 감정적으로 대들지 않는다. 사울이 괜히 창을 집어 던져도 그는 도망가기만 했고, 광야에서 도망다니면서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았다.
“주의 종은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약해서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믿기 때문에 자신을 절제하는 것이다. 이 땅의 남자들이여, 여자들이여, 청소년들이여! 하나님의 정의에 온전히 의탁하여, 인간적으로 대응하거나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온유함”이란 헬라어로 “프라우스”인데 야생마를 길들여 날렵한 경주마로 다듬을 때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감정과 재주를 제어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함부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예민한 사람, 마구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휘두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사람의 일도 못 맡길 것이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을 가진 사람
다윗은 자신의 자존심이 짓밟히고 공격당할 때는 한없이 온유하고 관대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 같으면 사자 같은 전사로 돌변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적과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한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과시하기 위해 기념비를 쌓은 사울과 얼마나 다른가?
오늘날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윗과는 반대로 하나님이 모욕당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넘어가면서, 누가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면 “이럴 수가 있나? ”분노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을 가지자. 하나님의 영광이 학교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거룩한 분노’, ‘의분’을 가지고 기도하자. 광야에서 쫓기면서도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걱정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윗의 영광을 챙겨 주었다.
5.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득 찬 사람
사울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 스스로 하나님같이 되려고 주어진 선을 마구 넘어간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떠났다.
그러나 어린 소년 다윗은 달랐다. 사무엘일 다위에게 기름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다” 여기서 크게 감동되었다는 히브리어 “티츠라”는 성령이 강하게 붙잡아 주셨고, 또 힘 있게 하여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자기를 비우면 하나님으로 가득 찰 수 있다. 내 능력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채움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처럼 무서운 세상에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겸손히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득 차야 한다.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을 소개할 때 쓴 말이 기가 막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The Lord is with him).
이것은 소년 다윗을 옆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찬사라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에도 종교재판에 끌려온 사도들을 보고, 모두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향수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에게선 향수 냄새가 나듯이, 예수를 묵상하고 예수와 교제하는 사람은 예수 냄새가 나는 법이다. 오늘 여호와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계신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하나님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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