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헌금생활의 표준으로서의 십일조' 에 대한 3가지 주장1)
첫째는 십일조가 구약의 율법에 속한 것이므로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비록 신약에서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드물게 보이지만(마23:23, 눅11:42), 십일조를 하지 말라는 주장은 전혀 없는 만큼 구약의 가르침을 따라 온전한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신약의 원리를 고려함이 없이 십일조 명령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을 중요시 한다.
셋째는 구약과 신약의 원리에 따라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나, 십일조 문자 그 자체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이다.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성도가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나, 교회가 필요할 때에는 각자의 양심을 따라 최선을 다해 헌금해야 한다는 원리가 앞서는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에 있어 십일조의 원리와 적용
신약이(특히 바울서신에서), 외형적으로 율법을 좇아가는 율법주의자에 대하여 크게 꾸짖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가 율법의 정신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도 밝혔다. 따라서 율법의 문제에서 구약과 신약을 동일시하여 구약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삼가야 하지만, 또한 근본적으로 구약의 것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신약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구약의 성취이며 완성이다. 구약의 원리와 명령은 신약에도 그대로 살아있어야 하고, 그 의미가 내면화되고 더 완성적이어야 한다.
구약의 헌금의 원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나의 토지(기업)가 하나님의 것이며, 거기에서 발생하는 소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지 바쳐야 한다. 그 기준이 바로 십일조였다. 구약에서는 제사제도의 유지와 구제 그리고 공동체적 축제를 위해 최소한의 경비를 하나님의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드리게 하셨다. 구약의 원리에 의하면 만약 십의 일을 내지 않으면,
① 자신의 소득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원리를 망각하는 것이고,
②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않는 책임유기이다.
예배 때에 우리가 <헌금> 시간을 가지는
그 첫째 목적은 바로 이것; 우리 수중에 있는 재물 전체에 대한 전적인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 우리에게서 돈 몇 푼 내놓기를 바라신다고는 꿈에도 생각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돈이나 금붙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 원리는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살아있어야 한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최소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또한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있다면 그 이상도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유지하고 복음사역을 활발하게 이루어나가기 위해 헌금이 필요하다. 그렇게 바칠 때에 십일조를 기준으로 헌금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되 율법적인 의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깨닫고 그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형편이 어렵거나 신앙이 어려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성도에게 헌금의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율법의 잣대를 적용해서 정죄하거나 위협해서는 안 된다.
이와 더불어 주의해야 할 것은 교회가 성도들의 헌금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먼저 십일조를 구원의 조건으로 강조해서는 안 된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며, 또 하나님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십일조를 내도록 하였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을 가지고,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예배당 건축이나(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축이라면 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행사를 위해 부당하게 헌금을 사용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 교회 재정이 남아 특별한 명분 없이 이를 저축하거나 땅에 투자하거나 주식 같은 것에 투자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을 복음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합당하게 사용할 책임이 있다. 헌금이 구약과 신약 시대에 공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기도 했는데, 오늘날 교회는 성도의 십일조로 얼마나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데 사용하고 있는지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약시대에도 사도바울은 자신도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를 유지하고 이루어나가기 위해 헌금이 필요하며, 그 헌금의 원리는 나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아까워하거나 인색하지 않고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칠 때에 십일조를 기준으로 헌금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예수님은 장로들의 유전에 얽매여 있는 바리새인들을 준열히(매우 엄하고 매섭게) 책망하셨다. 그들이 그러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시키고 백성들을 얽어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15절에서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다. 또 3:6에서는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라고 엄히 명한다. 또 사도들은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하면서도,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지침으로서 네 가지의 금령을 제시한다(행15장). 그리함으로써 전환기에 처한 성도들에게 도움을 준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율법주의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그러나 자신과 이웃의 신앙의 증진과 교회의 건덕을 위해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침은 유익이 된다.
신약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어떤 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는 오해를 물리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율법의 정신을 망각하고 규모 없이 행해서는 결코 안 된다. 즉 십일조 이상의 헌금을 하며 이웃을 돕고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의 법에서 자유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곡해하여 십일조는 폐지되었으며, 헌금을 개인의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서는 서론에서 제기되었던 세 가지 주장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주장은 옳지 않음을 밝힌다. 구약의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켜서는 안 되나, 율법의 원리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어 십일조를 헌금생활의 지침(指針, guideline)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첫째 주장(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십일조의 가르침은 완전히 폐지되었다)은 옳지 않다. 둘째 주장(구약의 십일조는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성령의 법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잘못 되었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린다면, 구약과 신약의 원리에 따라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나, 십일조 문자 그 자체에 구속(拘束)되어서는 안된다. 율법을 외형적으로 좇아가는 율법주의에 근거하여 십일조 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율법에 대한 신약의 원리를 고려함 없이 문자 그대로를 강요하는 것은 옳은 성경관이 아니다. 반대로 신약시대에 율법은 폐지되었으므로 십일조의 원리도 폐지되었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구약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주님이 원하시면 기꺼이 십분의 일 이상,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은 율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주관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함과, 신앙생활의 증진과 건덕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큰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1) 고신대학원 교수님들의 십일조에 대한 연구보고서(한정건, 현유광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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