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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편

시편 1편 1-3절, 복 있는 사람The Blessed

by Message.K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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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시 1:6]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4)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5)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6)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 1:1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있는 사람....Blessed

사람의 복들, 여기서 복이란 하나님이 주신 가시적 축복, 번영과 성공을 뜻한다.

성경도 '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복신앙과는 다르더라도 말이다.

총체적인 축복을 말한다. 

 

 

 복에 대한 '세상적인 정의'를 해 보자면...

 1>돈이 많은 사람...

유산을 많이 물려 받거나 사업으로 떼돈을 벌거나, 로또 복권에 몇 백억, 몇 십억 당첨된 졸부, 좋은 차, 좋은 집, 이쁜 여자,...이 모든 소유의 것...재수가 좋은 사람, 행운이 많은 사람, ‘참 저 사람 복도 많네’라고 할 때 그것도 복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신앙적이건 비신앙적이건 간에 복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경향은 바로 ‘돈’, ‘물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인맥이 많은 사람...

정치적 노선을 잘 타고, 사람을 잘 이용하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 입지를 넓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 그리하여 만사가 술술 잘 풀리는 것도 사람의 복이 많기에 가능하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 의 저자인 ‘나카타니 아키히로나, 한 홍 목사님의 말처럼 '재산'이다. 이것은 ‘백’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사람에 대한 영향력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또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는 좋은 인연의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곧 ‘사람은 곧 힘이다’고 할 수 있겠다.

 

 

 

 3> 머리brain가 좋은 사람...

지적, 인텔리전트한 파워를 소유한 사람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두뇌가 너무 명석하고 탁월하여 그의 두뇌회전의 재치와 순발력을 따라갈 사람이 없는 사람. 서울대를 수석으로 합격하고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런 재능, 지식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IQ가 높은 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IQ보다 EQ, 즉 감정지수를 더 쳐주기 때문에 두뇌회전도 감성지수가 좌우할 수 있겠다. 공부를 잘 해서 명문대에 수월하게 합격하거나 또는 서울대를 들어가거나 고시에 합격하여 축하 현수막까지 걸게 하는 그런 두뇌를 가진 사람의 복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4>운이 좋은 사람...

점성술가, 점쟁이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복, 복덩이', '복채'도 한몫 한다. 때때로 세상에서 복은 가장 천하게 '점집' 혹은 스포츠 신문에서 나오는 '운수' 정도에 불과하게 취급한다. 그들이 소위 말하는 ‘운수대통’이란 말도 이 의미에 포함되겠다. 

 

 

 

 5>좀 더 종교적인 사람에겐...

샤마니즘적인. 기복신앙을 주문화. 주술화. 특히, 불교의 색채가 강하다. --->입시철에 엿을 교문에다가 붙이는 어머니들, 냉수사발을 떠 놓고 불상이나 탑 앞에서 새벽마다 공을 들여 복을 비는 것, 그것은 복을 추구하는 한국적인 색채의 종교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것도 복과 관련된 것이다.

 

 

 

  대충 훑었는데 여러분은 어떤 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적인 복이 이러하다면 성경적인 복, 성경에서 말하는 복있는 사람은 어떤 것을 지칭할까? 너무나 우린 시편 1편을 익숙하게 접하여 이미 답은 나와 버렸다고 생각한다. 단언하건대 성경적인 복은 이런 것과는 반대된다.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심상은 푸르름, 청명함, 번성함, 풍성함 같은 것들로 대변되어질 수 있다.

 

수원지 옆에 심겨진 나무는 나무가 말라 비틀어질 염려가 없는 것이다. 

공급에 충분하게 support되어지는 수요...결코 고갈되거나 짜고 나지 않는 풍성하디 풍성한 수원지.

그 시냇가 옆에, 그 시냇가를 근원으로 하여 뿌리내려진 나무가 바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이다.

시냇가라는 근원지에다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존재를 자리매김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이 마를 날 이 없는...수분이 없어질 날이 없는...시냇가에 심은 나무...

퍼도 퍼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깊은 샘물, 깊은 수원지 곁에 있는 나무의 이미지이다.

꺼리가 없거나, 자원이 없거나, 재료가 없어서 허덕이는 모습이 아니다.

늘 충분하여 남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줄 수 있고 푸르름의 미학과 풍성함의 그득함을 줄 수 있는 그 곳, 그 장소, 그것은 바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이다.

 

 

늘 쫓기는 듯한 삶,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 늘 부족함에 허덕이는 삶...늘 무언가에 모잘라는, 불충분한 모습이 많은 구석의 우리들….여러분들은 시냇가의 심은 나무인가? 바람에 나는 겨인가?

 

 시.냇.가.의.심.은.나.무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3)He shall be like a tree Planted by the rivers of water, That brings forth its fruit in its season, Whose leaf also shall not wither; And whatever he does shall prosper.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누굴 지칭하는가? 저는…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자>를 가리킨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

즐거워하는 것과 묵상하는 자…이것이 바로 ‘형통한 삶’의 뿌리이다. 이것이 바로 ‘묵상의 신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묵상’…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설명을 기술하고 있다. 시절과 계절에 딱 맞게, 딱 떨어지게 과실과 열매를 맺는 특성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해 호된 꾸중과 저주를 하신 것을 기억한다. 이처럼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은 그 나무의 나무됨이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셋째 날 세상의 모든 식물을 창조하실 때 보시고자 했던 그 열매들이 때와 철에 맞게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없다면, 정체성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끊임없이 수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열매 맺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때때로 공급한 만큼 수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투자한 만큼 성장이나 성숙이 없을 수도 있다. 아무리 많은 투자와 공급과 제공을 해도 제대로 열매 맺지 않는 사람은 많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그러한 철 없음과 미성숙에 대해 많이 아파한다. 가슴앓이 이다. 하지만 식물은 다르다. 부어준 만큼, 쏟아 부은 만큼 정직하게 반응한다. 충분하게 영양과 수분과 일조량을 제공해주면 그 식물은 늘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이러한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과 여건들이 제공되어져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허브를 구입한 적이 있다.  ‘로즈마리’ 허브… 창원에 2개의 허브를 놔 두었고 대구에 ‘로즈마리’를 놔두었다. 로즈마리의 향이 기가 막히다. 질리지 않고. 그래서 좋아한다. 허브라는 작은 식물도 적당한 조건만 충족되면 자신의 자태를 여지없이 드러내는데 실과목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시인은 여기서 식물이나 과목에 대한 이야기를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형통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형통함이란 것은 뿌리가 바로 ‘말씀묵상’이라는 것이다. ‘말씀묵상’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 형통한 삶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요셉은 어떻게 보면 그가 참 고난의 삶을 살았다. 그 고난 가운데 그는 ‘말씀묵상’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그는 ‘꿈-계시의 수단-‘을, 말씀, 메시지를 계속 생각하며 되새기며 살아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한 말씀묵상의 삶의 기초가 되어질 때 그는 보디발의 집 안에서 형통한 삶을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를 인정하였다. 이것이 진정한 형통, 진정한 Well_ Being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번창하고 번성하는 삶, 형통한 삶…

 

스트롱 번호 : 6743 

기본형 :   또는  

발음 : {tsaw-lakh'}짜라흐 또는 {tsaw-lay'-akh}짜레아흐

어원(기원) : 기본어근

TWOT : 1916,1917

품사 :  동사 

파생어: 없음 

  앞으로 '돌진하다'(문자적, 또는 상징적 자동사, 또는 타동사로든지) 다양한 의미에서 사용됨:- 돌발하다, (세차게)오다, ~을 건너가다, 좋다, 적당하다, 유익하다, 번영하다, (번영케하다, 번영을 가져오다)

  1)돌진하다

  2)전진하다, 번성하다, 진행시키다, 성공하다, 이롭다

 

 

 

말씀묵상…그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 

우리 시대는 끊임없는 풍성함과 여유를 부러워하며 소위 Well Being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수 많은 다이어트 방법, 아름다운 몸매, 수려한 외모, 요가, 식생활개선, 식이요법, 자연으로 돌아가라, 생식요법, 주거환경의 변화와 업그레이드, 풍요로운 가구와 가계와 대궐 같은 정원과 넓은 거실의 탁 트인 공간과 집, 자녀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집…하지만 이 모든 것은 웰빙의 껍데기, 형통한 삶의 껍데기일 뿐이다.

 

 

 시냇가의 심은 나무, 형통한 삶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데 있음을 명심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웰빙이요, 진정한 형통함이며, 복 있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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