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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마서

로마서강해 1장 8-15절, 바울의 감사

by Message.K 202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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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8-15은 바울의 감사를 제목하는 설교 썸네일입니다
바울의 감사

 


Prologue... 


1. 로마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

로마서를 통해 많은 인물이 변화되었다. 특별히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어거스틴이다. 그는 학식이 많은 철학자였으나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어느 날, 정원을 거닐던 그는 어린 아이의 음성을 들었다.


“Tolle lege.”


이는 ‘책을 집어 들어 읽으라’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성경책을 펼쳤더니, 로마서 13:13이 나왔다고 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어거스틴은 곧 회개했다. 그래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2. 강해설교의 거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로마서 강해를 14년 동안 했다고 한다.

해부학을 전공한 의학도 출신이어서인지 그 분의 설교는 굉장히 섬세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강해설교였다. 14년? 나는 14주일? 그것보다 조금 더 안 걸릴까 싶다. 1년 안에 끝날 것 같은데...

 

 

 


3. 코카콜라 사장의 고백: 

“내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이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코카콜라가 안 들어간 곳은 없다!, 이 모든 것은 코카콜라 회사 사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집중력 때문이 아닐까? 만나는 사람마다 코카콜라 이야기를 시종일관 했던 사장!
필리핀의 한 도시, 상 페르난도에서의 충격적인 장면: 사람들이 콜라를 얼마나 좋아해서인지, 중독인지 모르지만, 코카콜라에 밥 말아먹는 사람들! 콜라에 미친 사장이 있었기에 전세계에 복음화가 아닌 콜라화가 이뤄진 게 아니겠는가? 

 

 

 


4. 소리전문가 김벌레 이야기

- 소리에 미친 사람! 자기 아내의 출산중의 소리도 녹음한 인물!

 

 

 

 



5. 거지는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


 

- ‘생존에 대한 강렬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런 사람들과 비슷한 한가지의 강렬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던 복음의 사람, 바울 쓴 로마서 두 번째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영혼을 향한 사랑과 복음에 매인 그의 두 번째 단락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한 번 보자.

 

 

 

 


■ 개요
∎전문맥: 바울과 복음(V.1-7)


⁕감사기도보고prayer-report of thanksgiving 1:8-12
⁕자기보고The Self Report 1:13-15

 


8절: 바울의 감사/이유: 너희 믿음이 세상에 전파됨

-비록 그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영적 교류가 있었다. 영적 파트너십(동지애)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참견이라고 한다. 바울은 여기서 ‘거룩한 참견’을 하고 있다.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그것에 대해 바울이 왜 감사한단 말인가? 보통 사람들은 “나하고 상관도 없는 일에 웬 참견이요? 웬 대구와 감사요?” 할 것인데 말이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의 눈에는 로마의 교회가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교회이다. 장기판에 차, 포 떼고 거의 졸만 남아 있는 교회가 어쩌면 로마의 교회였을 것이다. 교세도 약하고 볼품도 없는 유약한 형편의 교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눈에는 복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 로마교회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의 관심은 점점 커지게 된다. 불신자들은 점점 관심이 좁아진다.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기 차, 자기 집, 자기 자녀...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동굴 속에 살고 있다. 이전에 빛과 소금이란 잡지에서 그런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신도 은밀한 방을 찾고 계십니까?”

 


 언젠가 이 사회에 방문화가 판을 치게 되었다. 노래방, 비디오방, 인터넷방, 모텔방, 안마방, 키스방...다들 자기만의 밀실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물론 요즈음은 코로나 때문에 이것도 법의 제약으로 인해 금기사항이 되어버렸겠지만.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그 동굴, 그 방에서 나와 자유하게 된다.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관심과 포커스는 이제 동굴과 방을 지나 이웃과 미래와 민족과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바울은 온 세상을 향한 복음으로 인해 감사하고 있다! 

 

 


  바울이 로마교회를 세우진 않았다.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나 자신이 전도해서 구원받은 성도들 때문에만 감사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태신자도 아니었다. 별로 상관없는 지중해 서쪽, 이탈리아 로마의 성도들의 뉴스였다. 그러나, 바울은 비록 자신의 전도로는 아니었지만 로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소식에 감사했다. 



Ex)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시기심, 이기심이 있다.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픈 ‘소인배’들이 우리가 아닌가? 비록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들이 선교사나 전도자들을 통해 미전도종족에나 복음의 진보가 있는 것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특별히 기도할 때 ‘나의 하나님(내 하나님)’이라고 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개인적인 관계가 견고했음을 알 수 있다. 내 하나님이긴 하지만, 그 하나님은 너희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울. 그러나, 이건 원래 쉽지 않다. 노회나 총회, 무슨 체육대회나 연합예배를 드리러 가도 우리가 한 가족이고 식구이기 보다는 서로 네 교회, 내 교회라고 개교회주의가 얼마나 심한지 모른다. 그러다가 지면 인상이 돌아가는 것이다. 연합체육대회가 아니고 연합을 깨는 체육대회가 되어버린다. 우리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가 부흥하면 배가 아픈 것이 우리의 실상이지 않는가?



Ex)터키에 가면 초대교인들이 로마 군인들의 핍박을 피해 숨어살던 지하 20층의 굴이 있다. 그들은 평생 땅속에서 숨어 지냈다. 복음 때문에 지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숨어서 신앙생활했다. 지하통로에서 서로 길을 가다가 다른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얼마나 부둥켜 안고 울었을까? 복음과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있을 때 동지애가 생긴다. -전우애! -

 

 

오늘날 이런 동지애, 전우애가 부족한 것은 아마도 서로가 고군분투하며 싸우는 치열한 영적 전쟁의 현장field가 없어서가 아닐까? 서로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다가 부대끼면 서로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개교회주의, 개체주의가 판을 치는 것은 아닌지!

 

파트너십 + 동역자의식, teamwork 

  영적 파트너십은 같은 관점, 같은 세계관, 같은 신앙을 가져야 가능하다. 같은 신앙을 가져도 다툼과 갈등이 있는데, 그런 같은 신앙이 없으면서 같이 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월드컵 축구나 올림픽 경기(김연아, 손연재 등)를 시청하는 같은 국민의 입장에서 같은 관심사가 있을지 모르나 영적인 코드를 같이 취하기란 쉽지 않다. 

 

 

 



⚫질문: 불신자랑 결혼하면, 연애하면 안 되나요? 

 

-일단 영적 코드가 맞지 않다. 영적 파트너십은 생기지 않는다. 육적 파트너십은 생기겠지(영화보기, 도시락까먹기, 소풍가기, 놀이동산여행, 야구경기관람 등), 하지만 정작 영적인 관심사는 다른 것이다. 영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함께 기도하며, 어떻게 교제한단 말인가? 젊은 날의 방황은 있을 수 있다. 그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하는 것이다. 


EX) 영문과 시 교수님한테 E.mail을 보내 제가 요즘 방황하고 있다고 고백했더니, 방황는 길면 좋지 않다고 답변을 주셨다. 힘들면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메일, 전화, 문자,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라! 표출하라! 고름을 짜지 않으면 터져서 나중에 더 고생한다. 
영적 코드가 맞지 않는, 영적 파트너십이 형성되지 않는 커플, 불신 친구와 교제하는 커플은 마치 복음 때문에 쫓기는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잡으러 다니는 로마 병사와 결혼하겠다는 것과 같다.

 


 
⚫질문: 교회친구들이 편한가? 세상친구들이 편한가? -한 잔하면 다 풀리는가?
 Ex)힐링이 어딨노?라고 고백한 B의 훈련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후회의 고백! 힐링은 여기에! 
로마교회의 믿음의 소식은 바울이 계획하는 스페인 선교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 가지를 기억하라! 

로마 교회는 굉장히 큰 건물, 성 베드로 성당이나 바티칸 성당을 떠올릴 수 있는데, 로마 교회는 지금 그런 사이즈가 아니었다. 로마서 말미에서 나오지만 이젠 예배와 기도와 가르침과 빵을 떼는 소수의 집들, 가정교회가 전부였다. 그리스도인의 수라야 모두 1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톰 라이트는 말한다. 주민이 100만명이 넘는 거대한 메카도시에서 100명도 안 되는 숫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로 인해 감사했다. 복음은 작은 것에서부터, 아주 작은 씨앗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을 알기에. 바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13절에 그들과 만나 더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고 했다. 

 


  요즘 대형교회의 목회자의 비리 문제로 한국교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목회자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정말 대형교회, 초대형 메카교회가 되면 목회자가 타락할 수밖에 없는가? 머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이제 100명도 안 되는 몇십 명, 몇 가정에 불과했다. 바울은 그들을 통해 세계선교의 비전을 보고 있다. 성경속의 이야기는 초대형 메카 교회의 이야기가 아님에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겠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 추수감사절!


유대인의 3대 절기는 다음과 같다. 


유월절 , 오순절, 초막절 
  이 세 절기가 되면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든지 예루살렘으로 와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리고 이 세 절기는 모두 추수하고 관련이 있었다. 또한 이 세 절기는 모두 예수님과 관련이 있다. 

 


1. 유월절 - 보통 유월절, 무교절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일주일간인 무교절을 합쳐서 말함,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이 구출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보리 추수의 첫 소산을 유월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첫날 하나님께 드린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유월절이며, 안식일 전날이었다. 그래서 안식일이 지난 첫날 부활하셨고, 예수님은 성경 전체 통틀어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이 되고 있다. 



2. 오순절 = 칠칠절 = 맥추절 = 초실절 (계14:1-5)
(유월절, 첫 이삭을 바친 뒤 50일째 되는 날), 출애굽한 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밀 추수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뒤,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내려오신 날이다. 그리고 그 뒤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3. 초막절 = 장막절 = 수장절 
유대인의 달력 제7월 15일 부터 1주일간의 기간이다.
(계8:1-5  : 1일을 1년 단위로 환산할 때한 '반시'의 시간 단위 참조) 
가을 추수를 모두 마치는 감사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에 성령님에 대해서 선포하신다.

 


유월절에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고, 
오순절에는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초막절에 예수님과 관련되어서 이뤄진 일은 아직까지 없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초막절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추측 한다. 

 


초막절(수장절, 장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며, 이 절기를 추수감사절로 지킨 것은 미국의 청교도들에서부터 출발했다. 신천지는 추수해서 저장한다는 개념으로 수장절을 이해하지만, 초막절은 순전한 감사의 의미임을 기억하라!
한 해동안 원망과 불평과 짜증과 스트레스로 점철되었던 우리의 모든 이력들을 회개하고 감사를 회복하는 추수감사주일이 되었음 좋겠다. 할렐루야! 

 

 


 9절: 항상 너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함/진짜다! 하나님이 내 증인- 내 하나님, 내 기도
-여러분이 기도를 아주 열심히 하는데, 누가 봐주면, 알아주는 것 같고, 내 영적 열심이 드러나는 것 같아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하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다. 다들 나를 영적인 인물이 아닌, Sunday Christian으로만 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떨까? 바울은 긴 선교여행 가운데서도 깊은 기도를 늘 감당하였고, 로마교인들을 향한 중보기도도 병행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 기도를 봐준 사람은 없다. Nobody! 하지만 바울은 신경쓰지 않는다. 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신다!  진정한 ‘코람데오’의 사람, 바울이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데, 사람의 인정이나 관심은 괄호 밖이다. 
정말 이건 쉽지 않다. ‘주님만 아시면 됩니다’이런 정신! 정말 쉬운 게 아니다. 

 



EX) 얼마전까지 읽다가 놔둔 책, 제목이 ‘일 잘하는 사람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뭐, 이런 배은망덕한, 염장지르는 책제목을 봤나? 그렇다. 세상은 그렇다. 말 잘하는 사람, 자신을 잘 포장하고, 기교도 있고, 내용도 있고! 시대가 그렇게 변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아시면 된다는 바울의 고백은 사람들 앞에 잘 보이려고 애쓰는 수 많은 우리 시대, 세대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보이는 사람에게 잘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잘 하겠는가?’이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 ‘코람데오’

 



10절: 로마교인, 너희를 만날 길을 강구하는 중
Message: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간절함도 더 깊어집니다! 가을에 걸맞는 문장 아닌가!

 



 11절: 왜 로마교인들을 만나길 원하는가? 신령한 은사를 나눔으로 견고케하기 위함이다
  *신령한 은사? 바울이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지식, 영적인 통찰력, 분별력(1:15 백금산), 신령한 은사(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28-30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12절: 이유: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피차 안위받기 위함(상호교감, 상호위로)
Message: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주려고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줄 것 못지 않게 여러분도 내게 줄 것이 많습니다!
  *안위? 우리는 모두 격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바울만 베푸는 자가 아니라 상호베풂이다.


   ∎질문: 나는 격려하는 사람인가? 비난하는 사람인가?-내 주위에 사람이 많은가? 적은가?
  어린자들에게 격려는 보약중의 보약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제외하고 그 누구보다도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 당시 나이 57세였고, 선교사역은 10년째였다. 그런데도 바울은 로마교인들과의 교제와 교감을 통해 자신도 영적인 유익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 세상에 다른 성도의 도움이 없이는 그 누구도 완성된 신자는 없다.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조금이라도 우리의 영적인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은사가 없는 자는 아무도 없다.”-크랜필드

 


여러분, 옆에 앉은 지체를 한 번 쳐다보라!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옆에 있는 모두가 필요함을 기억하라! 때론 내 맘을 아프게 하는 그 친구, 그 선배, 그 후배가 내 성장과 성숙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가? 
극장에서 혼자 영화 본적이 있는가? 또라이가 아니고 외로움을 탈 줄 아고 누릴 줄 아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극장에서 영화를 혼자 관람하듯이 주일에 예배를 드려선 아니 된다. 
성도의 교제는 신앙 성장의 중요한 열쇠임을 기억하라! 

 

 

 

 


 13절: 만나고 싶었지만 길이 막힘, 왜 굳이 만나려고? 
                       ...이방인중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고자
  

 

*왜 막혔는가? 막혔도다(에코류텐 evkwlu,qhn I have planned to come to you , 신적수동태) prevent, hinder, refuse, deny 

 


   1)지중해 동쪽 지역 전도활동 때문(15:22이하)by 홍인규
   2)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시려고(바로 갔다면, 로마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by 박영덕
   3)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복음을 전한 아시아의 여러 이방인 교회들을 돌아보는 것과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 헌금을 가지고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님은 로마행을 바울의 마지막 mission으로 계획하신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신적 수동태로 사용된 점은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로마로 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최갑종, 로마서듣기(서울:대서, 2011), 129.

 

 


#. 막혔다고 포기하지 않는 바울, 왜? 바울의 로마를 향한 vision은 멈출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의 인도’보다 ‘말씀의 인도’이다. 


*신앙인이라도 얼마든지 일이 안 풀릴 수 있다!

 


-여러분이 꿈꿔왔던 비전이 있던가? 그 꿈이 지금 여러분에게 아직도 있는가? 좌절된 꿈이 있는가? 그 꿈이 막혀서 이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꿈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 꿈과 비전을 대해 이야기하면, “고만해라, 많이 뭇다 아이가!”라고 하면서 여러분의 비전을 막지 않는 이상, 바울처럼 그 비전을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환경이 우리를 어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Ex)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그렇게 우리는 늘 찬양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자리에서 꿈을 포기해선 아니되지 않는가! 바울처럼 ‘로마도 보아야 하겠다’고 했던 비전을 끝까지 붙잡아야 하지 않는가! 꿈을 꾸어야 역사가 일어나지, 꿈을 포기하면 그 꿈을 누구 꾼 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역사는 꿈을 잘 꾼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이룬 사람을 기억한다. 
 여러분의 꿈Dream comes true! Do it now! 

 


 
14절: 나는 (복음의)빚진 자-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자, 어리석은 자

 


  *우리는 얼마나 빚졌다. 기본적으로 20명(박영덕), 전세계의 95%가 불신자이기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은 19명의 불신자를 믿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쉽게 하면 일당 20명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빚진 자라(RSV, 의무 아래 있다)...우리는 복음전도를 선심쓰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보험을 들어주거나, 심부름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말하기를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존 스토트는 여기서 우리가 복음을 왜 전하지 않는가?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 스토트, BST:로마서 강해,정옥배(서울: IVP, 2003), 65.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회가 당면한 부끄러함이다. 16절에 부끄러워한다는 증거를 볼 수 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제국적인 자부심, 권세의 상징이었던 로마를 방문하기를 원했다(15). 바울은 짙은 눈썹, 안짱다리, 대머리에 매부리코, 근시에다가 별다른 수사학적인 재능이 없는 못 생기고, 키 작은 사내였다고 한다. 그가 그 로마제국의 교만한 힘과 권세에 어떻게 대항하겠단 말인가? 바울은 복음을 등에 업고 로마로 심방가는 것이다. 그게 최선이었다. 
실제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경우 자유인들이 아니었고 실제로 주인이 따로 있었다. 빚이 있는 종들이었다. 하지만 그 육적 빚보다 더 큰 영적 빚(채무)이 복음에 있음을 바울은 말한다. 

 

 


복음은 세상에 대한 빚이다(14-15절). 
사도는 아니지만 우리 역시 세상에 빚진 자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왔다면 우리는 그 복음을 1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땅 속에 파묻어놓고 간직(?)해서만 되지 않는다. 좋은 뉴스는 나누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 복음을 소개하고 알릴 의무가 있는 것이다.
빚이 있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바울이 그 빚을 갚는 데 열심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빚을 갚는 데 열심을 내야 한다. 

 


바울은 고전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 말했다. 그것은 그의 피할 수 없는 의무였고, 그 자신의 열망이기도 했다. 윌렴 헨드릭슨, 헨드릭슨:로마서(상),손종국(서울: 아가페, 1989), 81.

 


  사실 유대교의 성경와 전통에 뿌리를 둔 바울 복음이 유대인과 헬라인의 장벽을 돌파하여 한 분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과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유효하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짧은 본문과 로마서 전체의 핵심이기도 하다. 톰 라이트, 로마서(1부), 신현기(서울: IVP, 2012), 31.

 

 


 15절: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에 무슨 복음이 들어가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이미 바울의 손길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길로 인해 이미 복음이 들어갔다. 그러기에 바울은 7절에서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는, 적합하지 않은 곳은 없다. 복음이 코카콜라보다 못한가! 복음은 로마도 뒤흔든다. 복음은 세상을 뒤흔든다. 복음은 우리의 인생을 뒤흔들리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으라. 복음이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민과 아픔과 상처와 연약함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해결책임을 믿으라! 복음의 사이즈를 줄이지 말라! 하나님의 사이즈를 줄이지 말라! 여러분의 삶과 상황이 지금 로마에 있어도 복음은 복음인 것이다.

 



고대 지중해에서는 로마와 카르타고가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여다. 냉전같은 싸움이 500년간 지속되었다. 

 

“강한 적보다 더 큰 동기부여는 없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로마가 승리했다. 한니발에 대한 원한이 뿌리 깊은 로마는 카르타고를 포위하고 불태우자는 의견이 들끓었다. 로마는 관용의 국가이다. 적을 초토화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니발, 카르타고에 대한 분노가 그 관용정치를 져버리게 만들었다. 이 때 스키피오 장군은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스키피오는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며 울었다고 한다. 왜?

 

 


*스키피오의 눈물: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면서 불타는 로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경쟁자 카르타고의 몰락은 로마인에게 독이 되었다. 긴장이 풀어진 채 늘 내분만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결국 스키피오의 예언대로 로마는 결국 내부 붕괴로 무너지게 된다. 스키피오의 눈물을 기억하라! 저항이 사라지면, 생명력도 사라진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싸웠다. 그리스도인도 복음을 위해 세상과 싸워야 한다. 만약 싸우지 않으면 내부몰락은 언제나 찾아온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긴장을 잃어버리면 사단은 반드시 우릴 찾아온다. 그 탁월한 불세출의 영웅, 다윗도 영적 전쟁을 하지 않으니, 남의 여자나 탐하고 결국 살인죄를 저지르는 우매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던가! 영적 전쟁을 해야 우리가 우리다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복음을 위해 싸우지 않는 한국교회로 인해 이단의 권세가 활개를 치고, 목회자의 타락은 탑뉴스를 장식한다. 너무 충격적이다. 믿기지 않다. 하지만 여러분은 아는가? 미국의 대천덕 신부가 한국에 몇십년전에 왔을 때, 한 젊은 청년이 동네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며 설교하였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열정가라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군인가? 바로 조용기 목사님이시다. 처음부터 타락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순수했던 분도 그렇게 높은 곳에 가시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순수한 20대, 정열의 30대에 바울의 복음을 가슴에 간직해보지 않겠는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주 예배만 드리고 잠깐 모였다가 헤어지고 그런 일상의 반복만이 있다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문을 닫을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영적 긴장 가운데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음을 기억하라!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우리가 복음을 위해 뛰고 있음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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