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형제들이여, 본문을 탐구하십시오
(딤후 2:7)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때로 우리는 무릎 꿇는 10분이 책읽는 10시간 보다 하나님에 관해 더 진실되고, 더 깊고, 더 효과적인 지식을 준다는 말을 듣는다. 여기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이런 것이다. “뭐라고요! 그렇다면 무릎 꿇고 책을 읽는 10시간 보다 더 낫단 말인가요?” -벤자민 워필드
결심: 나 자신이 동일한 지식에서 자라는게 분명히 느껴질 정도로 성경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주 연구할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회자는 누구나 성경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양떼를 먹이려면 성경 진리에 관한 지식이 날마다 진보해야 한다. 목적은 성장하고 진보하는 것이다. 진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주장을 놓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 119:18)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결국 우리의 성경 읽기는 무미 건조해지고, 우리는 흥미진진한 ‘2차 문헌’에 눈을 돌릴 것이며, 우리의 설교는 어디선가 ‘전해들은’ 것을 전하는 나사빠진 일이 될 뿐 아니라, 양떼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존 듀이-“사람들은 문제에 직면할 때만 제대로 생각한다. 생각을 자극하는 딜레마가 없으면 행동은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이루어진다.”
...체계적으로 고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본문을 가차없이 탐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질문이 이해의 열쇠다!”
우리는 독서량과 통찰력의 크기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잘못 배운 것이다. 사실, 독서량과 통찰력의 질 사이에는 긍정적인 관계가 전혀 업다.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 오히려 그 반대이다. 더 많이 읽으려 할수록 통찰력은 줄어든다.
통찰과 이해는 두세 진술과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어울리는가를 집중적으로,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찰할 때 얻어진다. 이러한 사색과 묵상은 본문에 대해 질문하는 데서 시작된다. 서두르면 이러한 사색과 묵상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총잡이가 상대를 쓰러뜨릴 때마다 자신의 총에 눈금을 새기듯이 도서목록을 늘려 가라는 잘못된 권유를 뿌리쳐야 한다. 두 시간을 내어 갈 2:20을 읽으면서 이 본문에 대해 10개의 질문을 던져 보라. 30분간 신약 성경이나 다른 어떤 책을 빠르게 읽을 때보다 백 배는 많은 통찰력을 얻을 것이다. 질문하라! 생각하라! 곱씹으라!
일관성의 뿌리를 탐구하면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오늘날에는 체계화되고 조화와 통일성을 찾는 작업이 근본적으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상한 탐구는 어려운 시기를 만났다...우리 시대의 신학의 원자론적(그리고 기본적으로 반지성적) 성향에 저항해야 한다.
성경에서 분명한 신학적 불일치를 보고, 그것이 통일된 진리로 다가올 때까지 밤낮으로 연구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지혜 속으로 우리를 깊이 인도하는 것은 없다...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발견의 자리’로 부르셨으며,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아침마다 새로운 찬송을 부르며 눈을 뜰 것이다.
조명은 묵상을 통해 온다. 하나님의 조명에 대한 약속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약속은 생각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7)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우리는 문제에 직면할 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본문을 탐구하라!
12. 형제들이여, 원어 연구를 통해 성령의 검의 능력을 맛보십시오.
신학자가 성경의 기본적인 히브리어 본문과 헬라어 본문을 멀리할수록 진짜 신학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진다! 진짜 신학이야말로 열매 맺고 복된 사역의 기초이다-하인리히 비처
언어는 성령의 검을 보관하는 칼집이다. 언어는 값을 매길 수도 없는 오래된 생각의 보석을 담는 상자이다. 언어는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다. 복음이 말씀하듯, 언어는 무리를 먹이기 위한 떡과 물고기를 담는 바구니다...복음이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만큼, 복음의 언어와 씨름하자. -마틴 루터
원어 성경은 당신에게 커다란 고통을 요구할 것이며, 또한 그 고통에 풍성한 대가로 보답할 것이다. -존 뉴튼(John Newton)
Baker Book House, Light on the Path-매일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읽도록 도와 주는 책이다. 하인리히 비처는 은행가였다.
은행가! 양이 오히려 목자인 우리의 책임을 일깨우는 게 놀랍지 않은가? 분명히 놀랍다. 왜냐하면 우리 목회자들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라고 서로 권하거나 독려하지 않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목회에는 그저 선택 사항일 뿐이다.
목회자가 원어를 사용하지 않을 때 문제점
첫째, 성경 본문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확신부재. 확신 있는 해석이 능력 있는 설교를 낳는다.
둘째, 확신도 없이 그저 서로 다른 번역에 의존해야 한다면-번역 성경들은 언제나 많은 해석을 담고 있다-설교를 준비할 때 본문을 세밀하게 분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찾지도 않으며 장려하지 않는 곳에서는 강해 설교가 별로 인기가 없거나 신학교에서도 그다지 가르치지 않는다. 강해설교는 설교의 상당 부분을 본문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할애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원어성경을 연구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또 다른 결과는 목회자와 이들의 교회가 2차 자료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2차 자료는 읽기 쉽고 우리가 ‘뒤쳐지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우리가 원 자료에서 힘들여 캐낼 수 없는 아이디어와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최근에 읽은 책의 저자를 들먹임으로써 서로에게 잠시 감명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2차적인 음식은 양떼의 믿음과 거룩을 유지하지도, 깊게 해주지도 못한다...부정확한 해석은 자유주의 신학의 어머니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는 목회적 직무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교육은 더 나은 목회자를 만든다’. 그러나 히브리어와 성경을 해석을 가르치는 목회학박사(D.Min)과정은 없다.
목회자의 직무에 대한 비전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헬라어 성경을 들고 컨퍼런스나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기도와 문법이 만나 큰 영적 불길이 일어날 날이 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1829년, 24살의 조지 뮬러는 “나는 이제 많이, 하루에 12시간 정도 공부하며, 주로 히브리어를 공부한다....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암송한다. 그리고 이를 기도와 더불어, 무릎을 꿇고 할 때가 많다....나는 히브리어 사전을 넘길 때조차도 주님을 바라본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자신의 옥스퍼드 시절에
“비록 몸이 약했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마다 저녁에 두 시간씩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의 헬라어 성경과 홀 감독의 가장 뛰어난 저서인 ‘묵상(Contemplation)을 보면서 기도할 때가 많았다.”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의 돌파구를 원어를 관통하는 능력에 돌린다.
“언어가 남아 있지 않으면 복음은 틀림없이 사라진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자인자 전직 노예 선장이었던 존 뉴튼은 언어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어떤 구절이든 그 의미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알고 있다네.”
마틴 루터-"복음이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만큼, 이 복음의 언어와 씨름하자!“
13. 형제들이여, 신앙 전기를 읽으십시오
신앙 전기는 교회라는 생명체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수단이다.
전기는 내 삶에서 평범하게 살려는 타성을 물리치는 데 다른 어떤 인간적인 힘 보다 큰 역할을 했다. 전기를 읽지 않으면 나는, 오직 하나님을 위한 끝없는 수고와 그 분을 향한 끝없는 열망에 어떤 기쁨이 있는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히 11장은 신앙 전기를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믿음을 들을 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수 있다(히 12:1).
잘 선택한 신앙 전기는,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시간이 없어 찾지 못한 것들을 모두 담고 있다. 전기는 우리가 역사적 가식(chronological snobbery, 우리 시대의 지적 조류에 맞는 것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옛것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를 말한다)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준다. 좋은 전기는 신학이기도 하거니와, 그것도 가장 강력한 종류의 신학이다. 왜냐하면 좋은 전기는 삶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전기는 모험이요 짜릿함이기도 하다.
존 파이퍼는 성경 밖의 인물 가운데 가장 심취한 대상은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20살이 되기 전에 70개의 결심을 했는데 그는 여러 해 동안 이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글을 썼다.
“사는 동안 온 힘을 다해 살 것이다”(6번째 결심)
“나 자신이 동일한 지식에서 자라는게 분명히 느껴질 정도로 성경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주 연구할 것이다.”(28번째 결심)
존 파이퍼는 목회자는 곧 신학자여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하게 믿었기 때문에 조나단 에드워즈 뿐만 아니라 존 칼빈도 생각했다.
칼빈은 엄청나게 바빴다. 1550년부터 1559년까지 무려 270회의 결혼식을 주례했다는 사실이다. 두 주에 한 번 꼴이다. 그는 또한 세례를 베풀었으며(한 달에 한 번 정도), 병자를 심방했고, 다양한 편지에 답했으며, 여러 기관을 중책을 맡기도 했다.
칼빈과 에드워즈는 내게 평범함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T. H. L. Paker는 Calvin뿐만 아니라 Karl Barth의 전기도 썼다.
“그 날 저녁 바르트는 작은 논문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튿날인 주일에 끝냈다(하루에 13,000단어를!)” 존 파이퍼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신 정통주의에 이처럼 경이적인 수고를 들인 만하다면 복음적 정통주의에는 얼마나 더 하겠는가!”
“바르트는 1962년 바젤에서 은퇴했으며 강의하면서 느끼는 부담감이 사라진 탓에 활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중압감이 없었더라면 위대함이 드러날 수 있었을까?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어떤 권위나 요구에 시달리거나, 재촉 받거나 압박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에게서 위대함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존 파이퍼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Walking with the Giants, 엠마오 역간)과 ‘영적 거장들의 외침’(Listening to the Giants)을 통해 큰 힘을 얻었는데, 이러한 전기 모음집이 유익했던 것은 하나님이 복 주시기로 선택하신 다양한 목회 스타일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최적의 상태로 연구에 임하려고 음식 양을 재서 먹었다고 한다. 반면에 스펄전은 체중이 130kg이 넘었으며 시가를 피웠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우리들 대부분의 경우보다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스펄전은 자신을 비판하는 감리교 신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스스로 흡연이 과하다고 생각되면 완전히 끊겠습니다.”, “과하다는게 무슨 뜻입니까?” 감리교 신자가 물었다. “한 번에 두 대의 시가를 피는 것이지요.”
조지 뮬러는
이른 아침 첫 시간부터 신약 성경을 묵상하기 시작했으며...내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해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 나갔다. 그 결과 항상 발견한 사실은, 불과 몇 분 후 내 영혼은 고백이나 감사, 중보와 간구로 인도된다는 것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기도를 먼저 한 게 아니라 묵상을 먼저 했다. 그리고 묵상은 거의 즉시 기도로 이어졌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내의 시간이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삶이든 죽음이든, 아내와 저에게 가장 좋은 대로 해주십시오. 소중한 아내를 다시 일으키시는 게 저와 아내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면 아내가 아무리 아파도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거룩한 뜻에 변함없이 온전히 만족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 뮬러는 아내의 장례식에서 시편 119장 68절을 읽고 설교 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윌리암 바클레이의 ‘영적 자서전’서 바다에서 딸을 잃었으나 뮬러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얼마나 많은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거의 모든 설교 때마다 바클레이의 주석을 참고했을 생각을 하니 바클레이의 ‘자서전’이 더욱 침울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다는 대속의 교리를 비웃었다. “나는 내가 만인구원론자라고 확신한다. 나는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 모여들 것이라고 믿는다.” 존 파이퍼는 오늘날 많은 강단이 신학적으로 약한 게 바클레이와 같은 무기력하고 비성경적인 주석 신학에 손 쉽게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54세에 천연두 예방 접종 부작용으로 아내 사라 에드워즈와 열 명의 자녀를 남겨 둔 채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라 에드워즈는 딸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검은 구름으로 우리를 덮으셨구나! 순순히 벌을 받고 입을 막자꾸나! 주님께서 하신 일이란다. 그분이 나로 하여금 그분의 선하심을 찬송하게 하셨으며, 그분이 아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찬송하게 하셨단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단다. 내 마음이 그분에게 있단다. 나의 남편이요 네 아버지가 우리에게 정말 큰 유산을 남겼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드려졌단다. 나는 하나님 품에 있고 그 곳이 좋단다."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수로의 문을 여닫는 재갈 물린 말들과 빨랫감에 파묻혀 살아가는 세탁부들 그리고 대학 총장들이다. 그들을 위해 반드시 다른 삶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삶에서 이들은 결코 디저트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방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삶이 있어야만 한다.”
(로체스터 신학교의 총장이었던 A. H. Strong의 전기에서)
살아 있는 신학. 흠이 있지만 힘을 주는 성도. 은혜의 이야기. 깊은 영감. 최고의 여흥. 형제들이여,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할만하다. 히 11장을 기억하라. 그리고 신앙인들의 전기를 읽으라.
14. 형제들이여, 하나님이 어려운 본문에 영감을 주신 이유을 말하십시오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게으름뱅이보다 지적인 게으름뱅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당신이 그리스도인 되려고 생각하고 있다면, 경고하건대 이제 자신의 전부를, 당신의 두뇌와 모든 것을 요구하는 일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반대로 작용한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지적으로 예리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어떤 특별한 교육도 필요치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자체가 교육이기 때문이다. -C. S. 루이스
절망(하나님이 힘주시길 절대적으로 의지한다는 의미에서), 간구(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 인식(성경 본문에 대해 부지런히 생각하기), 교육(양떼가 열심히 기도하고, 잘 읽고, 부지런히 생각하도록 훈련시키는 것).
“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대중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전도자와 신비주의자, 교제와 학문, 접근 가능성과 심오함, 단순함과 복잡함을 분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이 모든 것이 귀중하며, 양쪽 모두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사명을 감당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어려운 본문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이 어려운 본문을 주신 이유를 여러분의 양떼들에게 설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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