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에스겔 25장을 통해 <하나님은 열방의 하나님/열국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기독교는 선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세계와 우주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길 수 있길 바랍니다.
예전에 본 영화 가운데 유대인들의 특수한 기질과 스타일을 다룬, “뭰헨”이란 영화가 있다. 유대인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민족이다. 별 볼 일 없는 민족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성경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생각에 자신들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강력한 존재감이 그들의 자존감을 더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작음에 위축되지 않고, 이웃 나라의 전쟁이나 전투에서 절대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선민의식’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세우시고 선택하셨다는 강한 자부심!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자부심과 자존감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받은, 거룩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존감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You are Special.”특별한 존재감을 늘 가지고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세전에 택함을 입었다는, 선택받았다는 그 사실이 존재 전체에, 전인격에 미쳐야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인격적, 신앙적인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유대인들처럼 우리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라는 사상이 심각하게 우리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때때로 이러한 지나친 선민의식, 과대한 자존감이 폐해가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아직도 메시야를 갈망하고 있다. 자신들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율법과 해석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 십자가 사건의 주범으로 유대인들은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인에 의해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를 불러오기도 했다고 본다. 그들의 문제는 지나친 자존감이 불러 온 ‘국수주의, 폐쇄주의’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폐쇄주의적인, 국수주의적인 측면은 없는가? 너무 지나친 자만심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흐려 놓을 때가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25장은 유다와 인접한 4 이웃 나라에 대한 경고와 예언을 담고 있다.
1-7; 암몬
8-11; 모압
12-14; 에돔
15-17; 블레셋
이 네 나라와 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댓가로 인해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 그로 인한 하나님의 공의와 분노의 잔은 결국 그 네 민족 위에 넘칠 것이다. 에스겔은 25장에서 각 민족에 대한 심판과 파멸을 이야기하면서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들이 나를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로 끝맺고 있다. 이러한 모든 심판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4 나라가 하나님의 이름을 존재론적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의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심을 이 본문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를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일관된 방식으로 심판하고 회복시키신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땅의 모든 나라를 축복하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에서 구원의 소망은 확대되어 이스라엘 외의 나라들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지나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처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자기 나라가 아닌 나라에 대해서나 자기 가정이 아닌 경우에서나 아니면 자기 교회가 아닌 경우에 대해서는 굉장히 배타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나라, 우리 신자 등. ...정말 하나님은 우리의 우리됨의 중요한 주체성의 핵심이고, 존재감의 뿌리이지만 다른 가정, 다른 공동체나 다른 사회나 다른 국가에 대해서 너무나 배타적이고 오만한 태도는 유대인들의 국수주의적 색채나 자기들만의 선민의식과 같은 것이 아닌가? 오히려 이러한 태도가 우리를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지나친 보수성과 폐쇄성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너무 ‘우리’를 강조하게 되면 그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외를 받고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의 열방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열국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교회 안의, 밖의 사람들, 우리 가정 뿐만 아니라 다른 가정,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 우리 교회, 우리 ...'우리'란 말이 붙은 단체와 공동체와 무리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지만 그에 속하지 않는 경우에는 너무나 이질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이러한 폐쇄적인 하나님이 아니시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낸 것은 그의 가족이 복의 근원에 더 나아가서 그를 모든 열국의 아비로 불러주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 구원의 역사는 선교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교회 공동체는 끊임없이 전도하고, 선교해야 그 생명력이 신선하고 강력해지지 않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 성육신 그 자체가 바로 선교이다. 선교는 기독교 복음의 중심사상이기도 하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서 불신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여러 가지 고민들과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더 위축되고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열국, 열방의 하나님이심을 먼저 믿으라!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끊임없이 품고 얼싸안고 포용하며 역사의 주인공으로 달려 오신 하나님! 그 선교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의 모든 가족과 나의 모든 상황과 나의 모든 문제와 나의 모든 나라와 대소사를 대하자! 하나님은 열방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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