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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와 설교

by Message.K 2022.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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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목사와 설교>를 신학대학원 설교학 레포트로 제출한 페이퍼이다. 그때서야 읽게 되었다. 그때 받은 감동과 도전, 그리고 무엇보다 '목사는 설교자'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 paper를 공유하고자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목사와 설교 책 사진
목사와 설교

 

 

  로이드 존스의 <목사와 설교>는 신학생이라면 한 번쯤 꼭 들어본 책 제목이다. 그 내용이 어떠하던지간에 로이드 존스의 여러 책들 중에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심장전문의의 탄탄한 장래를 포기하고 강해설교자로 거듭난 그 사람, 그의 ‘목사와 설교’에 대한 이야기는 철저하고 분명하며 구체적이고 강렬하다.

  내가 교육전도사 사역을 한 시간들 가운데 설교에 대한 귀한 도전과 비전들에 대한 체험은 잊을 수가 없다. 한낱 일개 전도사에 불과한 인간이 무슨 설교에 대한 체험이 있을까? 있어봐야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솔직히 그렇게 내놓을 만한 체험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도하면서 비전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강해설교자’라는 비전을 허락하셨다.

  

 

 

  수 년 전에 ‘강해설교’가 한국에 한 때 센세이션을 일으킬때 두란노 강해설교학교 제1회 개강설교를 김남준 목사가 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우연챦게 내 수중에 들어오게 된 ‘강해설교 세미나’ 테이프를 수시로 들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테이프 레코더를 통해서 그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받고 그러다가 잠을 청하곤 했다. 아직도 첫 대목이 기억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런데 그 때 받았던 그 감동의 모든 재료들이 ‘목사와 설교’안에 다 농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독서를 통해 발견하고는 조금 놀랬다. 설교를 구상하고 본문을 묵상하고 원고를 준비하는 수십 번의 설교준비의 사이클(cycle)가운데 느꼈던 설교에 대한 모든 고민들과 갈등들과 대안들이 여기에 다 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설교의 짠밥(Know_How)을 무시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로이드 존스는 장인(匠人)답게 그의 40년 간의 목회 경험과 설교에 대한 통찰과 철학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로이드 존스라는 성경적인 인물을 통해서 이렇게 설교에 대한 귀한 통찰을 제공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과 여운을 많이 제공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오늘날 ‘설교’라는 단어는 솔직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남아 있다. 한 작자가 이야기를 장황하게, 길게 늘어놓을라치면 보통 사람들은 ‘저 사람 설교하고 있네’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오늘날 시대적인 색채와 분위기상 설교는 어울리지 않는 전달 도구인지도 모른다. PostModern시대에 좀 더 기발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청중들에게 접근해야지 구태의연한 대안인 ‘설교’로 청중들을 휘저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대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Yes’이다.

 

 

‘교회가 말씀선포를 떠나면 존재가치가 없다.

오직 교회의 사명은 복음전파(선포)에 있다.’

 

 

  교회의 교회됨은 바로 ‘설교’에 있으며, 회중의 모임의 중심에는 ‘설교’가 놓여진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과연 저자는 설교자답게 ‘설교’라는 고유한 형식의 언어매체에 대해 과거의 심장전문의다운 치밀한 분석과 세밀한 주도면밀함으로 다루고 있다.

 

 

‘설교는 기록된 글이 아니다.

설교는 입을 통해서 발포되어지는 말이다.

 설교는 말이 아니다.

설교는 성경이란 텍스트를 해석하여 산출된 글에 기초한다.‘

 

 

그러기에 모든 설교는 해석적이며, 강해적인 교향곡(Symphony)-그런데, 교향곡이란 단어는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다. 설교에 대해 이보다 더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인 셈이다.

  

 

 

  언젠가 나는 그러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내심 불만을 가진 적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신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 경험의 폭이 너무나 좁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경험을 많이 해 보아야 청중들의 삶의 정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설교자는 죄가 취하는 특별한 양태에 지나친 관심을 가져선 아니된다는 발언을 저자는 하고 있다. 20대에는 ‘경험주의’에 한껏 매료되었으나 30대가 된 지금은 말씀의 보편성, 말씀의 초월성에 대해 더 힘을 주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죄인들의 삶의 정황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설교자와 영성, 연구시간, 시간관리, 음향(효과)시설-로이드 존스가 이런 것에까지 치밀하게 신경쓰는 것을 보면서 입을 쩍 벌렸다. 솔직히!-, 기도시간, 성경읽기, 메모습관, 전도설교, 조직화, 예화.웅변.유머의 사용, 설교의 길이, 방송설교, 직업주의, 자신의 강점(strength), 호소(결심의 요청), 심지어 설교원고를 반복해서 할 수 있는 문제-이것을 그는 ‘함정’이라 했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모든 조직적인 부분들을 언급하고 나서 마지막 장에서 ‘성령의 감동’을 추가하고 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설교에 대한 철저한 준비함 위에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위해 기도, 기도, 기도해야 함을 로이드 존스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인 설교사역에 부르심(calling)을 받은 것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강한 감동과 도전과 자극을 받았다. 우리에게 로이드 존스를 믿음의 선배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설교학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목사와 설교’, 늘 옆에 놔 두고 참고해야 할 탁월한 교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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