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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9장 51-62절, 관용과 결단의 균형 있는 제자

by Message.K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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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누가복음 9:51-62의 본문을 가지고 <관용과 결단의 균형 있는 제자>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51-56절/

여기서 제자도의 한 가지 축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46-50절에서는 제자들 중에 누가 큰가라는 질문과,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오늘 앞문맥에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과 그 일행, 제자들에 대해 옹졸하게 대했습니다. 자신들과 다른 예배 장소를 가졌다는 이유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제자들을 배척했다. 5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혈통적으로 순수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에 의해 배척당하던 민족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순수성을 지키지 못한 혼혈 민족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습니다. 자기 민족의 종교적인 자존심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배척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도 격분한 나머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서 심판해달라고 예수님께 아뢰자,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해 적대적인 자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같이 적대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54절의 야고보와 요한은 내부 단속을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에 대한 적개심을 고양시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데, 이러한 것은 정치인들의 추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견이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그것을 우리의 자존심과 연결하여 미워하거나 공격하거나 죽이려 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에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서 더 옹졸하고, 더 비겁하고, 더 편협하다면 그것은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복음은 편협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모든 민족과 열방을 아우르고, 모든 계층과 계급과 성별과 차이를 허무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열방을 포용하고 껴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반대편의 사람들을 포용하고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의 가슴이 더욱 넉넉해지길 소원합니다.

  

 

 

  57-62절에서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이른바 문화생활의 일부 정도로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남으면 약간 신경을 쓰는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제쳐놓고 예수의 일,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을 듯합니다. 아마 여차하다 보면 예수님처럼 들짐승이나 날것보다 못한 노숙자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57-58절에서 예수님은 머라고 하십니까? 의기양양하게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고 외쳤지만, 예수님은 네가 정말 그렇게 나의 제자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는 듯 합니다. 58절에 보십시오. 예수님은 안전하고 보장된 숙소조차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잠자리가 없다는 것은, 보장된 정착에서 오는 삶의 안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역을 위한 생활의 수단도 없을 것이라 짐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기만 하면 생활의 기본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 6:33). 하지만 생활의 보장을 위해서 제자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착오입니다. 노숙자의 처지가 되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각오로 제자의 삶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안전한 숙소조차 없는 제자의 삶을 정녕 네가 따르겠느냐?

그리고 또한 59절부터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유대인에게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치러야 할 종교적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율법 공부도 이보다는 긴급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부친을 장사하는 것은 가장 급박한 일이었습니다(창 50:5).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일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그보다는 비중이 낮은 가족과의 작별 인사조차도 시간이 없으니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62절). 뒤 돌아볼 겨를이 없으니 빨리 자신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물론 과장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부친 장례를 참석하지 못하게 하거나, 가족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작별인사하는 것까지 금지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긴급성!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여기에 있으며, 이것이 삶의 전부입니다. 제자도를 포기하는 그리스도인이 정말 그리스도인입니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긴급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제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임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제자의 삶을 온전히 사는 주의 권속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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