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디도서 2:11-15의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양육과 목표>란 주제로 한 설교입니다.
1 - 11절:
모든 기독교인이 어떻게 기독교인의 생활을 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남녀노소, 계급, 성, 소유, 외모, 권력, 학력, 가문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는 영적, 도덕적 어두움 가운데 침투하여 갑자기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나타난 이란 동사가 ‘강림했다’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인생에게 하 나님의 은혜가 강림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남으 로 말미암아 그 은혜가 12절에서, 무엇을 해준다고 말합니까? 바로 ‘우리를 양육하시되’라고 합니다. 헬라어의 스승이란 단어와 똑같은 어근에서 출발한 말이 바로 <양육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은혜가 우리를 양육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현명한 스승 이시라는 말입니다. 스승이 무슨 역할을 합니까? 상담, 위로, 격려, 권고, 지도, 양심의 가책, 상급, 억제 등 에 의해 양육시킵니다.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말. 스승이란 말과 유사한 좋은 단어가 또 있습니다. 바로 ‘멘토’입니다.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아 Odyssey〉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그의 친구인 멘토에게 맡긴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멘토는 왕자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이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즉,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가 다. 멘토의 상대자를 맨티(mentee) 또는 멘토리(mentoree), 프로테제(Protege)라 한다. 스승은 어린아이들을 한걸음 한걸음을 착실하게 인도하십니다. 멘토가 오디세우스의 아 들을 10년 동안 잘 돌보아주고 지혜롭게 가르친 것처럼, 은혜는 우리를 무질서에 빠뜨리 거나, 혼란을 야기시키지 않는 스승이자, 멘토입니다. 은혜가 우리를 양육하심은 먼저 부정적인 것들을 몰아냅니다. 경건치 않은 것들, 이를테면, 부도덕을 더한 우상숭배, 하나님 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버리게 하십니다. 도저히 우리가 버릴 수 없는 것을 은혜로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은혜는 이 세상의 정욕들을 다 버리게 하십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결단을 말합니다. 긍정적으로는,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게 하십니다. 신중함(자신에 대한 관계성에서 ‘근신함: 자제, 극기’self-mastery)입니다. 의로움(이웃에 대한 관계성: ‘의로움’(공명정대함, fairness)입니다.
-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 정직, 공정, 순수함. 경건함(하나님에 대한 관계성에서: ‘경건함devotion’)입니다. -오직 홀로 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참된 경건과 경외심을 갖는 것. 그러한 긍정적인 것은 13절로 이어집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은혜가 우리를 재림 신앙으로 이끌게 합니다. 이 땅의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제 우리가 같이 관람했던 영화가 기억납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서 할머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70여 평생 함께 동고 동락했던 할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산소 앞에서 서럽게 웁니다. 할머니는 영화에서 12남매를 낳았습니다. 영화 중에 시장에 가서 내의를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손자 손녀들 내의를 선물로 준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선물은 손자 손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 먼저 죽은 6명의 자녀들의 것이었습니다. 너무 일찍 죽어서 그 어린애에게 내의 하나 제대로 사 입히지 못한 것이 할머니에겐 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서 3살짜리 내의, 6살짜리 내의를 각각 3개씩 샀습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에게 애들 오면 꼭 이쁜 내의 입혀주자고 하였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어쩔 수 없습니다. 회자정리란 말이 있듯이. 사람은 언젠가 만나면 헤어 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은혜는 우리의 인생을 헛되게 하지 않 습니다. 하지만, 은혜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도록 하십니다.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더러운 죄의 물을 빠지게 합니다. 더 나아가서 헛되고 헛된 인생 가운데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그 복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영광을 고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의 목표는 바로 14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왜 우리를 양육시키고 재림의 소망을 가지게 하시는가? 바로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바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개역한글;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자기백성은 ‘별종’이란 뜻을 가집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데는 따라올 자 가 없는 사람, 특이한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시고, 우리를 속량 하시고, 깨끗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선한 일에 별종, 특이한 별종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양육 시키고 계십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를 양육시키시는 은혜, 하나님의 은혜 입니 다. 그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살 동 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길 소원합니다. 선한 일에 열심 내는, 하나님의 선한 별종으로 오늘도 서 가시길 소원합니다.
11-14절을 요약하자면, 모든 기독교인이 왜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유는?
첫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도덕적, 영적 어두움을 뚫고 들어와 모 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은혜는 우리를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에서 벗어나 거룩한 길로 인도해주는 우리의 큰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은혜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오,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실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고대케 해주는 효과적인 준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 은혜는 완전히 정결케하시는 자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모든 불순종에서 구원함을 받아, 선한 일에 대한 열심히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5절: 디도서는 목회서신입니다. 바울은 양을 치는 것, 목양에 대해서 디도에게 올바른 가르침으로 권면할 것과 누구에게서도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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