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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14장 25-35절, 제자가 되라Be the Disciple

by Message.K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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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디트리히 본회퍼 

 

1937년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The Cost of Discipleship)는 책에서  20세기 가장 유명한 신학적인 문장을 기술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 때 

그 분은 그 사람에게 와서 죽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는 히틀러에 저항하는 가운데 자신의 피로 이 글에 친히 서명했습니다. 그리고서 본회퍼는 

 

“십자가는 모든 그리스도인 개개인 위에 놓여 있다.” 

 

고 가르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종류의 순교가 있다고 가르쳐 왔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적색 순교, 금식처럼 금욕의 영적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녹색 순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는 백색 순교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도란 ‘백색 장례식’, 우리 자신의 자아(독립성)에 죽음을 고하는 장례식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분위기는 본회퍼의 이러한 모든 것들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펼침... 

 동상이몽(同床異夢

  지금 예수님은 끊임없이 자기 주위로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들,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길을 가시고 계십니다. 어쩌면 허다한 무리들과 예수님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인 상태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14장에서 무리들과 함께 있지만 자신의 모든 포커스와 관심은 23장에 나타나는 ‘십자가’에 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인류의 대속의 결정체인 십자가’이였습니다. 그는 지금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죤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어보셨나요? 

거기에서는 십자가를 다각도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꼭 한번 정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바로 그 ‘십자가’란 사형틀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인류역사에서 유일하게 한 번 깜짝 출연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형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미 자행되던 사형제도의 한 방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그 십자가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님의 마음의 중심, 마음의 센터에 자리매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시민들은 극단적인 국가 반역죄를 제외하고는, 십자가형에서 면제되었다. 웅변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가 행한 연설에서 그는 십자가를 “crudelissimum taeterrimumque supplicium,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라고 비난했었다. 조금 더 내려가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로마 시민을 결박하는 것은 범죄이고,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고, 그를 죽이는 것은 거의 살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로마 시민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도 끔찍한 행동을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지금 그 십자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자신이 죽기 위해, 오로지 죽음만을 목적으로 태어났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죽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죽음이 목적, 십자가의 죽음이 목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십자가의 중심성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그 십자가를 향해 일관성 있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리들은 어쩌면 예수님에 대한 여러 가지 환상들이나 이상들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중심성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단지 예수님으로 인한 현실적인 조건만족, 정신적인 보상이나 영적인 충족, 심리적인 위안, 물질적인 채움 등을 갈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은 ‘돌이켜(V.25)’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대의 분위기를 역행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를 벗어나는 말씀,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과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자기를 따라오기는 따라오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는데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목적으로 따라오는지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지...그래서 주님은 일종의 ‘거품빼기’의 일환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도의 대가The Cost of Discipleship 

예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먼저 예수님은 제자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여러분들 가운데 진정으로 그 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셨는가? 그 모심을 토대로 하여 그 분의 은혜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가? 만약 주저함이 있다면(주저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기질적인 이유, 성격적인 이유, 위탁의 문제, 신뢰의 문제, 아직도 남아 있는 죄된 본성Etc) 깊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럴 수 있다. 그리스도는 좋다. 구원도 좋다. 하지만 제자(되기)는 싫다!

그러한 모습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은혜를 비은혜로 만드는 행위? 철딱서니 없는 행동? 복음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 무지?... 

 

 

 

 

여러분들이여, 제자가 되라! 

제자됨에는 어떠한 대가가 따르는가? 주님은 여기서 제자도의 대가The Cost of Discipleship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제자가 되라’라는 말을 하지 않고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차원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미워하지 아니하면...’(26절), 둘째,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27절), 셋째, ‘...버리지 아니하면...’(33절) 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어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요건의 첫번째를

 

 

 

 1-미워하라(26절) 

 주님은 

 먼저, 미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개인적으로 이런 대지설교 Style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허다한 무리들에게 먼저 자기와 연관된 모든 관계들에 대한 미움과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조차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증오하다, 싫어하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소 덜 사랑하다’, ‘조금 적게 사랑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삶의 우선순위(priority)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요함보다, 이 세상의 좋은 친구보다, 나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귀한 분,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얻는, 내가 원한 삶을 사는 것보다, 어느 누구의 그 사랑 보다, 더 귀하신 분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보다 더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이 있느냐?”

 

본문에서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라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조차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26절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우리 사람들의 가족관계 및 인간관계에 대해 파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는 비인간적인 면도 있기 때문에 더 그럴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찬송가 102장의 가사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고백처럼 ‘주님’을 가장 최고의 우선순위에 둘 때 우리는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은연중에 우리에게 밀고 들어와 또아리를 트는 돈이라는 우상, 사람(인간관계)도 재산이다. 백도 재산이다(-맞는 말이다. 한홍목사님도 그 말을 하셨다) 백background만이 살 길이다!-이런 사람 없는가?, 멋진 친구, 아니면 사귀고 있는  이성친구, 사랑하는 부모님, 자신만이 즐기고 추구하는 기호나 취미나 직업이나 특별한 일, 자동차, 카메라, 컴퓨터, 노트북, 게임돈키호테? 

 

‘이 세상의 부요함, 이 세상의 좋은 친구, 나의 꿈을 이루는 것,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얻는 것, 내가 원한 삶을 사는 것, 어느 누구의 그 사랑

 

 그렇다. 그 모든 것들은 우리 인생에 진짜 중요한 것들이고 필요한 것들이다. 없으면 안 될 것들이다. 하지만 주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주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하고, 더 많은 삶의 비중을 차지하고, 더 많은 생각 속에 여백을 차지하고 있다면 회개하여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때 순전한 것, Fullfill한 것, 꽉 찬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순전한 마인드, 순전한 영혼, 순수한 자아, 순수한 모든 것들. True Worship is Pure Worship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내 형편과 처지와 필요에 더 민감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지존자를 향한 여러분의 최선(My Utmost for His Highest)’은 무엇인가?

바로 그리스도께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중심에 두셨듯이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젊은 가슴의 중심에 놓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제자가 되십시오. 그 분만이 여러분의 모든 만족을 충만케 채우실 것입니다. 

 

(시편 103: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청춘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2-지라(27절)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둘째로,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나 이교도들에게 비웃음과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다른 것으로 십자가를 대신하는 것을 완강히 거절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십자가의 중심성이 예수님의 자신 마음속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 자신이 난폭하고, 때아닌 죽음, 그러면서도 어떤 목적에 합하는 죽음을 자신이 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서로 얽혀있는 그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셨다. 

 

   첫째, 예수께서는 유대 국가의 지도자들의 적의 때문에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둘째, 그는 자신의 죽음이 메시아에게 일어나리라고 성경에 기록된 사실의 성취이므로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셋째, 바로 자기 자신의 의도적인 선택 때문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비록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어야 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 죽음은 그를 대항하여 연합한 악한 힘들, 혹은 그에게 작정된 어떤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그가 무능한 희생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바대로 죄인을 구하려는 그의 아버지의 목적을 그가 자발적으로 맞아 들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을 지배했던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주는 것이었다. 이 최후의 자기 희생, 이것이 바로 그가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바 그 "때"였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 보다 더 귀한 이 십자가의 주님을 만났고 발견하였습니다. 그 주님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현대와 같이 고난 받기를 싫어하는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류는 늘 고난과는 친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와 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편안함과 안락함과 즐거움과 포만감과 쾌락과 자극적인 무언가를 갈구하며 사는 시대에 ‘십자가’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고 편하고 즐겁고 쿨하고 구미당기고 자극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부담스럽고 지루한 것을 싫어합니다. 마우스의 클릭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에 십자가 또한 클릭 한방으로 어찌 해 보고 싶은 심리가 우리에게 있지는 않은지? 하지만 우리 주님은 연어가 흘러내리는 물살을 역류하며, 거슬러 올라가듯이 이 시대의 타락한 죄성의 그늘을 벗어나 십자가의 그늘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십자가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주님은 당시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죄수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죄수들은 자기 십자가를 철저하게 혼자서 지고 가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짊에 대한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십자가 없이 주님을 쫓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요!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실 때, 휘황찬란한 궁정에서 태어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마굿간 구유, 그 비천한 자리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가장 낮고 낮은 자리까지 스스럼없이 나아가신 주님,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주님은 평생 동안 철저하게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자신의 가슴(심장)에 두고 사셨습니다. 그렇게 사셨고 그 후에 십자가에서 처참한 죄의 형벌을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 참되신 성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의 최고의 제자’로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십자가를 지라, 나의 제자가 되라’고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지체 여러분, 여러분의 가슴 속에 주님을 따르기 위해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까? 

십자가는 아주 작게부터 아주 크게 여러분의 가슴과 환경과 삶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에게 십자가가 있나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환란과 고난이 있나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 때문에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납니까? 분이 나고 화가 나고 짜증과 스트레스로 허덕이십니까? 포기하고픈 것들이 많이 산재해 있습니까? 

 

 

 

우리 주님을 기억합시다. 우리 주님, 그 십자가를 부담스러워 하셔서 내팽개쳐버리셨다면, 침을 뱉고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라고 하셨다면, 인류의 구원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스스럼없이 자신을 낮추시고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친히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님으로 인해 그 십자가를 껴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시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주저앉고 싶을 때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먼저 그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8에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십시오. 우리 주님과 더 친밀한 관계 가운데 풍성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3-버리라(33절) 

 주님은 셋째로,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말씀은 소유물을 무조건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소유물의 소유주임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 위탁된 것으로 아는 청지기 정신(stewardship)으로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지체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리가 왜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합니까? 

 왜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과의 영광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친히 자신을 비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는 여러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그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모든 힘과 에너지와 피와 땀과 물을 십자가에서 모두 쏟으셨습니다. 할렐루야! 

 

 

 

  1956년 짐 엘리엇은 이 땅의 마지막 남은 살인부족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동료 선교사 네 명과 함께 그들의 손에 죽임 당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남겨둔 채 말입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결코 놓칠 수 없는 것도 있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그 무엇을 위하여,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을 바치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오, 하나님! 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주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제 삶이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대가를 치를 준비? R.U Ready?-두 가지 비유(28-32절)

  이와 같이-첫 번째 비유는 망대비유입니다.

망대를 세우는데 미리 예산을 세우지 않고 망대를 세우다가 경비가 많이 들어 기초만 쌓고 망대를 세우지 못하여 비웃는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왕은 자기 가문의 명예와 권세를 위해서 성전과 왕궁 그리고 많은 주요 건물들을 무리하게 건축하다가 예산의 부족으로 인해 건축을 중단하여 많은 사람들의 경멸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임금비유입니다.

일만의 군사를 가진 임금이 이만의 군사를 가진 임금으로부터 전쟁을 하게 될 때 미리 예견하여 화친하게 될 것이라는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갈릴리지역의 왕인 헤롯은 아랍왕이었던 아레타스의 딸을 첫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아레타스의 딸과 이혼을 하였고 헤롯은 아랍왕 아레타스와 무모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헤롯은 이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미리 계수하고 헤아리지 아니하면 낭패를 당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대학부 지체 여러분, 젊은이 여러분들이여!

그리스도를 위해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여러분의 지금은 아무것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르는 시기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 다르게 묻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여러분의 것들을 내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시간, 물질, 건강, 환경, 은사, 인간관계, 더 나아가 여러분의 생명까지도 말입니다. R.U. Ready? 준비되었다면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구하십시오. 성령님께 도움을. 주님은 여러분들이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다고 보험외판원이나 텔레마케팅의 직원처럼 억지로, 지독스런 집요함과 간청함으로 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결정할 타이밍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제단 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리셨습니다. 

 

 

 

 

34-35절: 소금 비유

그리스도 보다 더 사랑하고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 많고, 십자가를 지기를 죽기처럼 싫어하고 편안하고 안락하고 윤택하고 쉬운 삶의 라이프스타일에 젖어 살며, 움켜 잡는 것에는 따라올 자가 없는 부유함과 부요함의 황제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맛잃은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가 아닌 자, 제자가 되기를 꺼리는 자, 심지어 그들은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아닌지도 모를 정도의 부류들. 그런 사람들은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35절)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내어버림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변색되지 않고 본질을 지켜가는 참되고 순전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미워하라, 지고 쫓으라, 버리라 이 모든 동사들의 시제는 현재입니다. 이것은 단회적인 행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지속적인 동작으로 나타나야 함을 시사해 줍니다. 

 

 

 우리는 일평생동안 주님을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미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을 위해 모든 소유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무용지물의 맛 잃은 소금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Identity를 상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대학부 지체 여러분, Be the Disciple!!!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 , 제자가 되라!, 나의 제자가 되라!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미워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지며,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소유를 버리십시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그리스도를 얻는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얻어도 그리스도를 잃어버린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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