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2장 51-52절, 웃어른 따라잡기

by Message.K 2022. 3. 8.
반응형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위의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있는가? 아니면?

 여러분이 살아오면서 가장 영향력을 많이 받은 인물은 누구인가? 연예인인가? 가수? 제가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야구이야길 잠시 하자면, 국내 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 출신의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박찬호가 한화이글스로 갔는데, 국내의 수많은 투수들이 박찬호를 자신의 우상으로 삼고 선수생활을 했다고 한다. 축구선수들은 아마 박지성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민간인이자 일반인인 학생들 출신, 청소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주는 인물은? 금주의 1위, MBLAQ? 소녀시대? 원더걸스? 내가 정말 저 사람만 생각하면 힘이 솟고 꿈이 그려지는 그런 인물, 말 그대로 나의 삶의 모델, ‘역할모델’과 같은 인물은 누구였는가? 학교 선생님? 교회 목사님? 아니면 부모님?

 

 

 

박찬호 이야길 잠깐하면,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고 있는 한화 박찬호(39)는 휴식일이었던 지난달 31일, 후배 안승민과 함께 숙소 근처에 있는 한 쇼핑몰을 방문했다. 쇼핑몰에 들어선 그는 가장 먼저 스포츠 용품점을 찾아 이것저것 둘러봤다. 박찬호는 점원에게 "오렌지 색 운동화와 오렌지 색 모자를 찾고 있다. 가장 좋은 제품으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점원이 추천해준 여러 가지 제품 중 가장 가볍고 튼튼한 용품으로 골라 쇼핑백에 예쁘게 담았다.

 

 

 

 

  박찬호는 1일 팀 훈련 직전 일본인 트레이너, 하나마쓰 코지 컨디셔닝 코치를 찾았다. 그는 어리둥절하던 하나마쓰 코치를 갑자기 넘어뜨리며 운동화를 빼앗고 운동장 밖으로 내던졌다. 박찬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하나마쓰 코치에게 준비했던 오렌지색 운동화를 직접 신겨주며

 

"코치님을 위해 하나 샀다. 운동화가 무척 낡아 보였다. 평소 잘 관리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고 말했다. 하나마쓰 코치는 "생각도 못했는데 참 고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팀 관계자는

 

"박찬호가 몸 관리를 도와주고 있는 하나마쓰 코치에게 정성을 담아 선물을 건넸다. 평소 낡은 운동화를 신고 운동을 도와주는 하나마쓰 코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한화 팀 색깔인 오렌지 색으로 구입해 정성스레 선물을 건네는 박찬호의 모습이 신선했다. 하나마쓰 코치가 무척 감동했다"

 

고 말했다

 

 

 

   프로야구선수들이지만 그래도 박찬호는 선배에 대한, 어른에 대한 예우가 바른 사람인 것 같다. 오늘은 웃어른 따라잡기, 어른에 대한 공경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눌텐데, 우리가 과연 우리 주위의 어른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음 좋겠다.

 

 

 

 

  여러분은 평소에 웃어른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번에 명절을 보내면서 어르신들한테 세뱃돈을 받기 위해선 악착같이 세배는 잘 했지만 과연 얼마만큼 존경하는 자세를 취했는지 묻고 싶다. 저도 결혼했을 때, 새 신랑일 때는 몇 만원을 세뱃돈으로 받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세뱃돈은 물 건너갔다. 우리 와이프는 세뱃돈으로 백화점상품권 10만원짜리를 받았는데, 그걸로 분명 나이키 에어 운동화를 사준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나이키 에어 운동화는 비싸서, 3만원짜리 나이키 에어 운동화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과연 그런 가격대의 운동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3만원짜리 사고 7만원을 거슬러 달라 하는 게 힘들어서 안 사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집안 어른뿐만 아니라 주위의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잘 하는 친구는 참 귀한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른들과의 예의나 격식이 너무나 없어진 지 오래라서 말이다. 어릴 때는 밥상을 차려놓으면 집안의 어른들이 숟가락을 안 들면 밥을 못 먹었는데, 요즘은 애들이 숟가락을 제일 먼저 들고 맛있는 반찬도 제일 먼저 먹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너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다. 여러분은 가장 가까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부모님께 어떤 아들, 어떤 딸로 비쳐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부모님께 인정받는 자녀들인가? 아니면 골치덩어리, 정말 아기들을 양육하다가 너무 힘들면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

 

‘다시 뱃속으로 넣고 싶다고!’

 

이와같은 사고뭉치의 아들, 딸인가? 요즘 우리 집 애 둘이 너무나 잘 놀아서 탈이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혼성으로 레슬링을 하기도 하고, 큰 애는 독감도 걸려서 서로 주고받고 있다. 과연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부모는 자녀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방치해두는 것이 최선일까?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달라는 대로, 욕심부리고 싶은대로 놔두고 방치하는 것이 최선일까? 우리 두 자녀가 몇달 전인가 거실에다 완전히 분유가루로 도배를 해 놓은 적이 있다. 아까운 식량인 분유를 말이다. 그런데, 그 분유가루를 진공청소기로 아주 깨끗하게 청소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전문가의 이야길 들어보니 그 때는 분유가 담긴 필터를 깨끗이 씻어서 말려야 되는데, 씻지 않고 청소기를 계속 돌렸는데 사고가 났다. 갑자기 청소기 모터가 타버렸다! 결국 새 걸로 하나 장만해야 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분유를 온 천지에 운반하고 수고했지만(?) 그 결과는 부모님에게 분노였고, 울화였고, 청소기의 노쇠, 노화, 파멸을 가져왔다. 아이들, 우리들이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하는 자유도 중요하지만, 때론 부모님께서 이야기하는 것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분유를 흩어놓는 장난은 꼬마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인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다. 부모님께서 여러분에게 꾸중을 하거나 부탁을 하거나 권면을 할 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제일 잘 하는 것, 최고의 습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못된 습관’에서 벗어나서 귀담아 듣는, 청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러분이 만약 어떤 이야길 자기 나름대로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데, 상대방이 딴 데를 쳐다보고 있거나 먼 산을 쳐다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딴 시늉을 한다면 여러분의 속은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울화가 치솟겠는가? 다시는 그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맘이 들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부모님은 그래도 내가 낳은 자식이니깐 봐주는 것이다.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여러분이 되었음 한다. 그게 잘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기 때문이다.

 

 

 

  잘 안 되는 시기이지만,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되길 바란다. 돈 되는 분유나 흩어버리지 말고 말이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지 종종 고민될 때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목사님은 늘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세례를 받게 되면, 제일 먼저 이행해야 할 의무는 바로 ‘주일 성수’라고 한다. 주일성수란 말은 ‘다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가는 것’을 말한다. 다른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드리지 않고, 주일에는 공적인 예배에 자신을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집에 계신 믿지 않는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를, 주일날은 보너스데이니깐 좀 쉬면서 밀린 공부를 좀 하면서 진도도 따라잡고, 실력을 쌓도록 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집에 계신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큰 자인가 이다! 하나님이 더 큰가 아니면 여러분의 부모님이 더 크신 분이신가? 부모님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모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님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인데, 누구?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순간에도, 자신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는 주저치 않았다. 분명 예수님의 부모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다. 누가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찬성하겠는가? 그것도 사형틀이자,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그것도 지하의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죽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보는 골고다 언덕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당해 죽어가는 그 십자가에서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자기가 아는 연줄이나 권력의 줄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해서 어떻게 빼낼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마치 정치인들이 자기 아들을 군대면제받기 위해서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대사로서 자신이 비록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났지만, 자기의 사명, 자기가 왜 이 땅에 태어났고, 왜 유대땅에서 33년의 인생을 사는지에 대한, 삶의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잊지 않았기에 그는 자기가 죽는 것에 대해서 죽기 전에 미리 아는 지인들에게 믿음으로 선포했다. 부모님이 말렸어도 그는 그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마리아는 믿음이 대단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길에 대해서 묵묵히 기도하면서 지켜보기만 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십자가의 길을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는 부모님의 시선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선지자라고, 예언자라고, 인기 있는 설교자라고 주가를 올릴 때뿐만 아니라 처참하게 골고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그 걸음에도 예수님의 부모님은 예수님을 인정하였다.

 

 

 

아들 예수가 미친 것이 아니냐? 라고 어디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으려고 십자가 처형을 감당한단 말인가? 어떤 이단 사이비집단에 빠졌길래 그런 쓸모없는 짓을 감행할 수 있느냐고 예수님을 방해하거나 비난을 하거나 욕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한 앞으로 어떻게 걸어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모님은 예수님은 인정했던 것이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부모님께 진짜 인정받는 아들, 딸들이 되었음 한다. 그게 쉽지 않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2:51-52 말씀을 다같이 한번 읽어보자.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때 예수님의 나이가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사랑받으면서 살아왔음을, 특별히 어린 나이에도 51절에서는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했다. 예수님이 부모님께 순종을 했기 때문에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때도 마리아와 요셉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예수님께서 늘 부모님의 말을 머같이 듣고 농땡이치고 부모님의 속에 화만 돋구었다면 과연 부모님들도 ‘네가 무슨 메시야냐? 네가 무슨 선지자라고? 아휴! 됐거든요!’라고 혀를 찼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순종하셨다. 어른을 잘 공경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윗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권면하는데,

  로마서 13:1에서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절에서는 또,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우리에게 주신 권세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가정-부모, 형제, 자매,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 모든 어르신들, 교회-목사님, 강도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선생님 등, 직장-상사, 사장님, 회장님, 부장님 등등, 학교-선생님, 교장, 교감, 선생님등, 국가-대통령, 정치인, 시장님, 구청장님, 의원님 등, 나라...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이기 때문에 그 권세에 복종할 필요가 있다. 경찰이 여러분에게 와서 복장 똑바로 하고 학교 다녀라고 훈계했다고 치자, 여러분이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러냐? 당신이나 똑바로 하세요!’ 이렇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경찰이 나한테 사생활간섭할 권리는 없지만, 그래도 경찰이기 때문에 때론 헛소리를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던지 아니면 정당한 방법과 절차를 거쳐 법적으로 대응하는 편이 낫지, 거기에 대해 사사건건 이야기하면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진다. 공권력을 지닌 경찰은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권세에 우리가 복종하지 않고 무조건 ‘배째라’, ‘너는 무어라고 하든지 나는 내 갈 길을 갈 것이다’고 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면 그만큼 손해인 것도 없다.

  요셉을 잘 알지 않는가?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는 노예신세, 그것도 피를 같이 나눈 형제들에게 팔려간 노예신세였지만, 그 보디발 장군의 가문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후에 보디발의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다는 모함과 누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옥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그가 어디에 있는 공간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착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당대에 제일 잘 나가는 이집트 왕국의 총리대신으로 불렀던 것을 기억하라! 요셉이 보디발 장군집에 가서도 자기가 노예인데도 불구하고 보디발한테 반말이 찍찍하고, 주인 볼때만 일하고, 보디발 아내와 불미스런 관계를 가졌다면 그는 쓰임받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상전이었던 주인, 보디발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건 하나님께 맡겨야 할 몫이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서 돈에 팔린 노예신세에다가, 집주인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죄수, 범죄자, 전과자로 전락했을 때도 그는 감옥에서 자기 멋대로, 자포자기하면서 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간수들을 섬기고, 전과자들을 섬겼을 때 하나님은 그를 벼랑 끝에서 하늘 높은 이집트 제국의 최고의 리더의 자리로 불렀던 것을 기억하라!

 

 

 

  어른에게 잘 하는 사람에게 성공한다. 어른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버릇없고 예의없는 사람이 만약 권력의 자리, 권세의 자리에 있으면 밑에 있는 사람이 피곤하다. 왜냐고? 밑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를 모르는데, 배려가 있을 수 있겠는가? 보이는 사람에게, 보이는 어른, 부모님, 권세자에게 잘 못하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모순인 것이다. 여러분의 웃어른에게 존경하고 감사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싸가지 없는 행동들은 예수 이름으로 떠나보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우리 중고등부가 되었음 좋겠다.

 
728x90

 

댓글